야구를 못하는 건 참을 수 있어. 근데

코칭스태프에 이입하는 나...

by 마할로

진짜로 까꿍이가 생기고 난 다음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자꾸 양육자의 입장에 이입하게 된다. 큰일이다. 가끔은 눈물 버튼이 이상하게 작동을 해서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야구 선수들을 바라보는 태도도 비슷하게 바뀌어 간다. 어린시절엔 선수들을 우러러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느낌이 좀 다르다. 물론 아직 그렇게까지 늙지는 않아서... 그렇게 건장한 성인 선수들을 자식처럼 여기지는 않는다. 아직 미숙하고 어린 친구들의 모습이 좀 더 보이고, 성장을 지켜보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 조카 정도로 보인달까? 아니면 예전 과외 알바할 때 만난 학생 정도...? 물론 팬과 선수들의 사이엔 거리가 있어서 실제로는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생활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냥 드러난 것들로만 판단한 것이다 보니, 선수들 입장에서는 이런 시선이 불쾌할 수도 있을 것도 같다. '나를 감히 조카 취급?' 하면서... 하지만 2000년대생 친구들이 앳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뭐... 귀여울 따름이다.


예전에는 더 혹독하게 야구를 봤던 것 같다. 선수들이란 나보다 더 산 성인이고, 프로라는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걸맞은 활약을 하는 대가로 연봉을 받고 있으니까. 마땅히 올바른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완전한 존재여야 했던 것이다. '그냥 학생인 나도 알겠는데! 프로가 저딴 플레이를 하다니!' 비판 아닌 비난도 서슴지 않았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다. 모든 존재는 미숙하다는 것을... 서른이 되어도, 마흔이 가까워 와도, 미숙한 것은 너무나 많았다. 선수들을 나에 비추어 보니 '그 정도면 나보다 훨씬 낫네' 하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어느덧 내 나이가 너무 들었다. 우상처럼 쳐다봤던 선수들은 이미 예능 프로그램이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옛날의 아우라를 잃은 지 오래고, 또래인 선수들도 하나둘 은퇴를 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나보다 어린 선수들만이 남아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또래 중 일찍 은퇴한 선수들 중에는 코칭스태프로 선수들을 지도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선수 하나하나의 나이를 따지고 들어 살피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그냥 다 동생이고 조카이고 뭐, 그렇다. 실제로 제일 큰 조카는 올해에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에... 올해 드래프트로 뽑힌 친구들은 조카보다도 동생인 그런 상황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선수들에 대한 비난이 조심스러워진다. 비판도 조심스러워진다. 그렇다고 해도 야구를 보면서 화를 안 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화도 나고 성질도 나고 미움도 쌓인다. 그럴 때는 자꾸 코칭스태프나 프런트를 찾게 되는 경향이 생겼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부모를 찾듯이, 응대가 엉망일 경우에 책임자를 찾듯이 말이다. 원래 다 그런 것 아닌가? 책임을 지라고 높은 자리에 앉혀 놓았으니 잘못의 책임은 책임자가 응당 져야 하는 것이다! 내가 회사에서 잘못하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건 모두가 우리 국장(님)이나, 사장(님) 탓이다! 아무튼 내 탓은 아닌 것이다!


경기에서의 잘못은 이렇게 그냥... 윗사람 탓을 하면 된다.(?) 다음 기회나 다음 경기에서, 혹은 다음 시즌에 만회라도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일희일비하는 팬의 마음은 원래 물에 씻은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리고 만다. 올해 다이노스는 시즌 말미 열몇 경기를 제외하고는 정말 열불 나는 시즌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또 한 해 동안 책임자에 대한 비난을 가열하게 펼쳐 왔고 말이다. 그러다 정말 마지막 불꽃을 하얗게 불태웠다. 기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마무리였다. 물론 나는 좀 옹졸한 편이어서, 감독에 대한 전면적 지지와 칭찬까지는 태세를 전환시키지는 못했다. 그냥 박수와 응원, 그동안의 비난에 대한 사과와 후회를 전하는 정도로 입장을 변화시켰다. 아무튼 경기를 못한 것, 야구를 못한 것에 대한 분노는 그정도면 된다.


그런데, 가끔 야구장 밖에서의 사건사고를 일으킬 때가 있다. 당연히. 그들은 야구장 밖에서도 지내는 사람들이니까. 음주 운전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른다. 그럴 때가 진짜 환장한다. 책임자 탓을 할 수도 없다. 어떻게 다 큰 성인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관리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명확하게 야구장 바깥으로 잘라낼 수 있는 경우라면 차라리 나은지도 모르겠다. 부도덕한 행동으로 도마에 오르는 경우는 더 미친다. 불륜, 팬과의 다툼, 코칭스태프 비하발언, 불량 커뮤니티 활동 등... 잘라내기도 애매한, '야구로 사죄'한다고 하면 더 열받는, 부도덕한 행동들을 한 선수들을 보면 참... 어찌할 수 없이 착잡해 진다.


그럴 때 코칭스태프는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 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쉽지 않은 일일 테다. 팬들은 어차피 남이니 '손절'이라도 할 수 있지, 같이 생활하며 지도해 온 코치, 감독, 프런트 직원들이 '동료'를 무 자르듯 잘라낼 수 있으랴. 법적인 문제가 없는데, 임의로 한 사람의 밥줄을 자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마음과 사정은 알겠지만, 팬 입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선수를 마음 놓고 응원하는 것은 아무래도 마뜩잖다.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장을 찾는 입장에선 더 그렇다. 특정 선수를 애정하고, '최고'라 추켜세우는 일을 어떻게 그냥 보고 넘어가겠는가...? 결론은 그냥 제각기 갈 길을 가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살아라. 감내하면서. 나는 나의 야구를 볼 테니....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야구로 속죄한다는 소리는 듣기 불편하다. 양육자의 입장에서 비추어보아도 마찬가지다. 내 아이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는 상상을 해 본다. 정말 끔찍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상상이다.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피해자나 사회에 용서를 강요할 수 있을까? 그것도 그냥 본인의 본업에 충실하겠다는 말 하나로 말이다. 어떤 실수는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럼에도 인생은 그런 실수들을 감수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잘못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종과 성별, 시대를 감수하고 살아가는데, 본인이 저지른 실수를 감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때의 실수이든 뭐든 그것은 삶으로, 행동으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구로 갚는 게 아니라...


모르겠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 아이가 정말 큰일을 저지른다면? 나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별의별 수를 다 쓸 수도 있다. 모든 비난을 되받아치면서, 아이를 옹호할 수도 있다. 내 아이를 비난하지 말라고 악을 쓰면서, 내 아이는 잘못이 없다고, 혹은 잘못에 비해 처벌이나 여론이 과도하다며 항변할 수도 있다. 용서해 달라고, 씻어 달라고, 너희들이 더 문제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설 수도 있다. 고소, 고발, 소송전으로 피해자에게 더 큰 가해 행위를 할 수도 있다. 여론을 모아 내 아이를 위해 말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끔찍하다. 아이가 한 잘못보다 일이 더 끔찍해진다. 내가 더 큰 가해에 가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 제발 그런 일이 없도록, 우리 아이가 가해자가 되는 일이 없도록, 부디 안녕히 잘 성장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어떡하지? 잔소리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양육자로서의 삶을 감수하는 것이다.


비시즌이다. 야구에 정신이 팔려 있던 선수들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내 가족처럼 응원했던 내 선수들, 내 친구들이 제발 올가을, 겨울은 무탈히 지냈으면 하고 바란다. 제발 이상한 것 좀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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