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잔소리는 돌아온다...
A: "우리 회식비 기한 이번 주까지야. 저녁 가능한 날 있어?"
나른한 월요일 오전, 톡방의 메시지가 울렸다. 동기들 다섯이 모여 있는 채팅방이었다. 회사에서는 정기적으로 '자율 연구회'라는 이름의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연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팀을 구성해서 '팀플'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팀플 기간 동안 소정의 활동비가 주어지고, 최종 발표 과제가 수상을 할 경우에는 상금도 받을 수 있다. 우리 팀의 과제는 사소한 아이디어를 콘텐츠로 간편하게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워크플로우 개선에 대한 발표였다. 이런 워크플로우가 확립되면 직원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결과물을 후딱 만들어낼 수 있고, 그럴 수 있으면 전 직원이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팀은 수상에는 실패했다. 그래도 너댓달 간의 고생이 고생이 아닌 것은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꼭 회식을 해야 했다. 등하원에 매여 있는 몸이지만, 나도 오랜만에 꼭 저녁 회식을 하고 싶었다!
"혹시, 애 데리고 가도 됨?"
A: "완전 좋지!"
B: "까꿍이 오는 거야?"
C: "대박이다! 연수 받을 때 완전 애기 때만 봤잖아."
"어? 진짜? 근데 일단... 까꿍이한테 물어볼게."
불편해할 것 같았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날 저녁 하원하는 길에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이는 어떨 때는 도전적이고 활기가 넘치는데,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겁도 많고 보수적이기도 하다. 아빠 친구들과의 저녁식사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다. 단칼에 싫다고 거부할 수 있으니 둥글둥글하게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하원하는 길에 살짝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꺼냈다.
"까꿍아, 혹시 내일 저녁먹고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해?"
"언제? 지금?"
"아니, 오늘은 집에 가고, 내일 말이야 어린이집 끝나고... 아빠 저녁 약속이 있는데, 같이 갈까 하고."
"그래. 알았어!"
의외로 쿨하고 새침하게 알겠다고 하는 표정이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떨 때는 한없이 배려심이 깊은 아이라, 원치 않으면서도 알겠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일정을 확정짓기 전에 진짜 마음을 더 확인해 봐야 했다. 차에서 내릴 때, 집에 가서 밥 먹은 뒤에도 한 번씩 더 물어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근데, 누구랑 가?"
"어? 어디를 누구랑 가?"
"내일, 저녁 누구랑 가냐고."
"아! 내일 아빠 회사 친구들하고 저녁 먹을까 얘기하고 있었어."
"누구? 선배님이야?"
"아니 선배님은 아니고, 친구야. 동기. 까꿍이는 만난 적 없을 걸?"
"그래? 몇 명인데?"
"네 명? 아빠랑 까꿍이까지 하면 여섯 명 될 것 같아"
"그래?"
"까꿍이, 진짜 내일 갈 거야? 같이 가도 괜찮아?"
"가지!"
시크하게 디테일을 묻는 것이 정말로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톡방에다 일정 확정 메시지를 날렸다. 오랜만의 이벤트라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너무 보채거나 힘들게 하진 않을지 걱정도 됐다. 그런 걱정은 대개 '에이, 아무렴 어때?'라는 말로 결론이 난다. 집에 와서 배우자에게 아이와의 이야기를 전했더니 '와~ 까꿍이 신나겠네~' 하면서 이야기를 받아줬다. 그 리액션에 밝게 웃으면서 기대감을 뽐내는 아이. 아무래도 아빠 친구와의 저녁식사는 아이에게도 기대되는 이벤트였나 보다.
다음날, 하원 시간이 되어 아이를 데리러 갔다. 문앞에 나와 있던 저녁반 선생님께서 반겨주시면서 말씀하시길...
"아버님, 까꿍이랑 저녁 모임에 가신다면서요? 오늘 친구들한테도 계속 얘기해 줬어요."
생각보다 아이의 기대가 컸나 보다. 이렇게 떠벌떠벌 자랑할 정도면서 그렇게 시크하게 대답하고 말았다니.... 너란 아이는 정말 속을 알 수 없구나. 아이는 도착한 식사자리에서는 또 새침데기로 변하고 말았다. 그렇게 어린이집에는 자랑을 해 놓고는 부끄럽다니... 친구들은 적절히 말도 맞춰주고 기분도 띄워주면서 저녁 시간을 즐겁게 채워 주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아이가 불편을 끼치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을 조금 덜 겁내도 되겠다 싶었다. 식탁에 음식들이 채워졌다. 아이를 배려한 음식 메뉴도 미리 시켜 놓아 주고, 참 고마운 친구들이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점점 떠들썩해지는 와중에...
"어허, 얘기만 하지 말고 밥 먹어야지~!"
아이의 외침이 식탁을 일순 모두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다들 웃음을 터뜨렸고, 나만이 홀로 머쓱했다. 집에서 하던 잔소리를 고스란히 돌려받는 순간이었다. 아휴. 못말려. 그 이후로 나도 반성하며 아이에게 밥상에서 말이 많다는 잔소리를 줄이고 있다. 밥상이 원래 대화하는 자리지 뭐... 근데 너 평소에 너무 밥을 오래 먹긴 해...
어둑어둑한 식당 분위기 탓인지, 일주일간의 피로 탓인지 아이는 금세 졸린 기색이 역력해졌다. 그런데도 짜증을 내지 않고 견디는 모습이 고맙고, 귀여웠다. 어쩜 집에 가자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하고, 차에 타자 이내 잠에 곯아 떨어지는 아이. 아이에게 이 하루 저녁은 좋은 기억이었을까? 여느 기억처럼 금방 사라져 버릴 테지만, 그냥 잠깐 좋았다면 다행이니까, 부디 좋은 기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른에겐 소소하지만 아이에게는 그 순간, '빅 이벤트'였기를 바랐다.
차에서 잠에 취한 아이는 집에 돌아와서도 잠에 취해 있었다. 울면서 옷을 갈아 입고, 엉엉 울면서 세수를 했다. 아, 역시 약속에 데리고 다니는 것은 무리인가 싶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아이는 아직 잠에서 채 깨지 못한 채 어린이집으로 들어섰다. 아이구. 괜한 고생을 시켰구나 하고 생각하려는 순간!
"아버님, 모임 잘 다녀오셨어요? 까꿍이 모임 재밌었어?"
"네! (격하게 끄덕끄덕)"
"어떻게 아세요? (담임도 아니신데)"
"까꿍이가 어제 얘기해 줬어요. 아버님 회사 친구 동기 모임에 같이 간다고요."
"아...."
정말이지 너한테는 빅 이벤트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