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왜요?' 시작했을 때 대처법

어쩌다가 왜? 라는 말이 기분나빠졌을까?

by 마할로

어린이들이 언젠가 한 번은 겪고 지나간다는 증상이 있다. '왜요 증후군' 이다. 어떤 이야기든 꼬리 질문에 '왜?'를 붙이는 증상인데, 나는 조카들을 통해서 그 시기를 미리 경험했고, 또 나름의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가 이런 시기를 맞이했을 때 스스로 꽤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응이 쉽진 않았고, 여러 변칙적인 질문을 파훼해 나가면서 이론을 수정해야만 했다. 아, 일단 그럼 그 방법에 대해서, 나의 이론적인 토대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 드리겠다. 두둥.


'왜?' 라는 질문의 소용돌이에 빠졌을 때, 그 난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첫 번째, 단답형으로 대답하면 안 된다. 단답형의 대답은 더 깊은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도록 만든다.


"미안~ 아빠 좀 늦었어~"

"아빠, 왜 늦었어?"

"아 일이 많았어."

"무슨 일?"

"회사 일이지."

"회사일 뭔데?"

"녹음하고 편집하고..."

"녹음이 뭔데?"

"소리를 이렇게 찍어서 다시 들을 수 있게 만드는 거야."

"왜?"

"방송을 해야 하니까."

"왜?"

(후략)


이렇듯 여지를 줄 수록 아이의 질문은 점점 더 세부적이고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곳으로 향해 간다. 그래서 절대 단답형으로 말을 끝내려 하지 말고, 미리 최대한 세부적이고 디테일하게, 그러면서도 아이가 잘 알아듣게끔 주저리주저리 수다스럽게 말을 해야 한다.


"미안~ 아빠 좀 늦었어~"

"아빠, 왜 늦었어?"

"아빠가 딱 퇴근을 하려고 했거든? 아니지 참, 아침부터 이야기를 해야겠지? 아침에 까꿍이 어린이집 데려다주면서부터 아빠가 오늘 바쁘다고 하면서 엄청 급하게 출근했잖아. 사실 다다음주가 추석이잖아. 추석 알지? 까꿍이 추석날 되기 전에 다음주쯤인가에 한복 입고 오라는 날 있지 않았어? 선생님이 알림장에 그날 한복 입고 등원하라고 써 주셨던데.... 아 수요일이야? 수요일이구나. 목요일부터는 친구들이 많이 안 나올 것 같아서 수요일로 하셨나 보다. 한복? 한복 있지 집에 작년 추석에 산 거. 올해 설날에도 입었을 걸? 아닐걸? 그거 말고 까꿍이가 보고 골랐어. 빨간 색으로. 기억 나? 안 나? 오늘 집에 간 김에 입어 보자. 그거 아마 큰 거로 사서 아직은 맞을 거야. 늘리는 게 아마 있을 걸? 그래? 한번 봐 봐. 가봐야 알지. 엄마한테 물어보자. 잘 놔뒀을 거야."

(후략)


이 정도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면, 이미 처음 아이의 머릿속에 켜졌던 물음표는 꺼지고 없다. 아이와의 대화를 단답형으로 마무리하려는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수다스럽게 마우스 건전지를 갈면서 손톱에 스크래치가 난 일화까지를 설명해 주려는 마음이 있어야 아이는 '왜?'라는 질문을 멈출 것이다. 대충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아이는 애처롭게 그 끊긴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질 것이다. 당신을 붙들기 위해서 말이다.


자, 그다음 두 번째 꿀팁! 역질문을 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나도 정확히 어떤 것인지 기억 나지 않은 TV 교양프로그램에서 주워들은 방법이다. '하늘은 왜 파래?'라는 질문에 '글쎄? 까꿍이 생각은 어떤데?' 하고 역질문을 하면, 어린이가 나름의 대답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럼 '그렇구나, 정말 재미있는 생각이다!' 하고 넘어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 방법은 쉽게 실패한다. 나 역시 실패의 경험이 있다.


"아빠, 하늘은 왜 파란 색이야?"

"글쎄? 까꿍이 생각은 어떤데?"

"내 생각이 아니고, 왜 파란지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 아냐. 왜 파란데? 아빠 몰라?"

"아, 파란 건... 그게, 아빠가 모르지는 않는데..."

"근데 왜 말을 안 해줘?"

(후략)


휴... 이런 여러번의 실패를 겪은 후, 역질문에는 스킬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최대한 원하는 답변을 던진 뒤(모르는 것은 대충 입사 면접 볼 때처럼 거짓말로 있어 보이는 답을 덧붙인다.) 거기에 살짝 부가의문문을 던지면서 질문자의 지위를 빼앗아 오는 것이다. 성공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다.


"아빠, 하늘은 왜 파란 색이라고 했지?"

"그거 아빠가 알아왔는데, 공기방울들이 하늘에 많이 있대. 거기에 햇빛이 부딪치면 한 가지 색깔만 나오는데, 낮에는 해가 높고 따가워서 파란색만 나온대. 그러다가 노을이 질 때, 지금 봐봐 빨갛지? 보여? 지금은 해가 저 멀리로 가고 있잖아. 거의 누운 것처럼. 그럴 때는 공기방울이 빨간색만 보내준대."

"공기방울이 왜?"

"몰라! 나도 공기방울이 왜 그러는지 궁금하다. 파란색이랑 빨간색을 좋아하는 거 아닐까? 까꿍이는 하늘이 어떤 색인 게 좋아?"

"어... 나는 핑크색!"

"핑크색? 하늘 핑크색이면 예쁘겠다. 하늘 핑크색인 거 본 적 있어?"

(후략)


하하하! 이 두 가지 스킬을 연마한다면 얼마든지 아이의 질문 공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어린이와의 대화를 즐겁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수많은 실패와 고통과 피곤과 말문 막힘을 겪고 난 뒤에 깨닫는 점은, 아이와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그 순간이 의미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아이와의 추억을 '꿀팁'인 척 기록해 놓고 싶을 정도로... 지나고 나면 그 순간이 엄청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온다. 불과 몇 달, 불과 일이 년 전의 기억인 데도 말이다. 여섯 살인 아이는 벌써 몰랐던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나름 깨달은 '왜요?' 대처법을 더 이상 써먹을 데가 없어지고 있다.


지나고 나면 '왜요?' '왜요?' 하고 묻는 어린이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근데 왜 그 시기는 그걸 곤란해했을까? 언제부턴가 스스로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도 않고, 호기심이나 궁금증은 가지지도 않기 시작했다. 그게 이유일까?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진짜 팩트 체크는 관심이 없이... 그냥 그런 거. 원래 그런 거로 세상에 많은 일을 대충 넘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왜 그런지' 묻는 사람들한테는 벌컥 화만 내고 면박만 주고 그랬던 것 같다. 아이의 마음으로 모든 것에 호기심과 관심을 가져야겠다. 괜히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을 '물음표 살인마'라고 몰아붙이지 말아야겠다. 상냥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도 공격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할 때도 많다!

"아니, 무사 2루에 왜! 번트를 대냐?!"

"투수가 저렇게 터지면 바꿔야지! 왜! 가만히 있냐!!"

"야잇! 왜! 가운데 오는 공을 그냥 보고만 있냐!!!!"

어쩌다... '왜'를 비난으로 사용하게 된 걸까...? 나의 용례가 이렇기 때문에, 아이의 '왜요?'에 두려워하고 초조해했던 걸까...? 나부터도 '왜'라는 말을 착하게 사용하는 법을 익혀야겠다. 아니 지금 근데 무슨 글을 쓰다가, 왜 이렇게 두서없이 흘러왔지?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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