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니 알게 된 것...
어릴 적, 무조건적 사랑에 대해서 배우기로는, 부모의 사랑이나 혹은 종교적인 사랑 같은 것이라 했다. 아무래도 무조건적인 사랑은 너그럽고 충만해서 흘러넘치는 사랑이라, 커다랗고 엄청난 사람이 아래로 베풀어주는 사랑인 것처럼 느껴졌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그런 커다란 존재여서 부모님의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이구나 납득하며 끄덕거렸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덧, 불현듯, 부모가 되었다. 아니, 불현듯 부모가 된 것은 아빠인 나뿐이고, 배우자는 물론 지난한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겪었다. 그래서 배우자는 조금더 준비된 상태로 부모됨을 겪었을까? 그것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연예인 모친의 말씀대로 '재미만 보고' 아빠라는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처음 느낀 깨달음은, 내 사랑이 절대로 무조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이가 내게 주는 사랑 쪽이 무조건적이지. 오륙개월 만에 아빠의 존재를 온 몸으로 깨닫게 된 아이는, 퇴근한 나를 온 마음을 다해 반겨 주었다. 아저씨의 재롱에 깔깔 웃어주기도 하고, 살짝만 까불어줘도 신나서 넘어갔다. 아이는 여섯살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향해서 절대적인 사랑을 보내 준다. 반면에, 아이가 일찍 자면 더 예뻐하고, 조용히 내가 보고 있는 TV 채널을 건드리지 않아 주면 평소보다 더 사랑스러워하는 내 사랑은, 아이의 것에 비하면 1억원 한도 무이자 대출 특례만큼이나 조건이 많고 까다롭다.
아빠를 배려하는 마음도 나보다는 아이가 앞선다. 하루는 퇴근길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는데, 아이가 물었다.
"야구장이다. 아빠, 야구장 갈래?"
마침 응원하는 팀이 잠실 원정 경기를 하는 날이었기에 그 이야기가 못내 반가웠다. 잠시 고민도 있었지만 겨경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기에, 못이기는 척 아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 그럴까? 엄마한테 저녁 먹고 간다고 할까?"
부랴부랴 차를 돌려 신나게 주차를 했다. 평일 저녁 경기장은 선선하고 참 좋았다. 티켓을 사 가지고 출입구를 향하는데, 아이가 고개를 숙여 내 얼굴의 표정을 살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빠, 야구장 잘 왔지? 야구 보는 거 아빠 좋아하잖아."
내 표정에서 즐거움을 읽고, 그 얼굴을 만들어낸 것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듯했다. 아이는 순전히 즐거워하는 나를 보기 위해서 야구장에 가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아이는 야구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야구는 아무래도 지루하고, 단조로우니까. 그럼에도 아이는 아빠가 좋다는 것을 시켜주고 싶어 한다.
아이들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는 아마도 나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부모들이 겪으리라. 그래서 자꾸 스스로를 좋은 아빠라고 착각하는 순간이 생긴다. 아이에게는 내가 그의 세계를 구성하는 큰 부분이기에, 내가 어떻든 아이는 나를 사랑하고 지지할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어느 순간 아이의 세계가 성장하고 커진다면, 나의 실체를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충격받지 않으려면 미리 조금이라도 가꿔야 할 것 같다. 나 스스로를, 아이의 세계를....
나는 아이가 나를 위해 야구장을 억지로 찾아준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더 이상 야구장에 가자는 요청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어제도 또 그 다짐을 잊고야 말았다. '까꿍아, 야구장 혹시 안 갈래?' 질문에, '그래! 오랜만이니까 가도 되지 뭐!'라는 쿨한 대답으로 야구장에 동행해 준 친구. 고맙다... 미안하다. 이런 아빠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