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때문에 야구도 못 보겠다

점점 더 못 살 것 같아지는 날씨

by 마할로

시즌 말미가 되면 야구장의 잔디는 한 해 동안의 고된 일정을 그대로 보여 주기 시작한다. 패이고, 뜯긴 흔적들. 내야와 외야를 가리지 않고 누더기처럼 때운 흔적들이 가득하다. 개막전에 푸릇푸릇 카펫처럼 반지르르하게 예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올 시즌은 유난히 더했던 것 같다. 울퉁불퉁한 잔디는 돌발 상황과 실책을 만들어내기도 하니, 일부러 관리를 소홀히 했을 리는 없다. 기사들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날씨 탓이라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정말 더웠다. 그리고 갑자기 쏟아붓는 국지성 호우도 무섭게 내리기도 했고. 내가 잔디라도 살기 힘들다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을 것 같다.


직장에서 '재난 안전 특집'을 기획하면서 자료들을 보고,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다 보니 이게 다 기후 변화 때문인 것 같다. 요즘 막연히 느끼고 있던, '요새 정말 날씨 이상하네' 하는 감각이 실제로 기후 변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제한속도를 넘어서 달리기 시작하면, 어느 시점 이후에는 시속 1~2km를 더 가속하는 것만으로도 위험을 크게 높인다. 지구 온난화 역시 제한속도를 넘어섰고, 지금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은 0.1도의 작은 변화도 극단적인 기상 현상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대기 과학자인 조천호 선생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다.


실제로 점차 극단적인 날씨가 잦아진다. 가을장마로 매일같이 찾아오는 비 덕분에 가을 야구도 자꾸 멈췄다. 비가 가을 야구의 변수가 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뭐 중요한 건 아니고.…… 아무튼 올해도 가을에 비가 많이 와서 명절 분위기는커녕 가을 분위기도 잘 안 났다. 가을만 그런가? 여름에 덥기는 또 얼마나 더웠는지, 야구장에 갈 엄두도 잘 안 나는 날씨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팬들은 가혹한 날씨에 얼마나 더웠을까? 팬들도 더운데 선수들은 또 얼마나 힘겨웠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안타까운 경기력도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아니지, 다른 팀은 무슨 다른 날씨에 경기하나? 잘하는 팀은 잘하는데!!!


이야기가 잠깐 딴 데로 샜지만, 걱정이 크다. 양육자의 마음이란 애들이 우리 때보다는 잘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좋은 데에 가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부모님 생각은 가끔 나고, 배우자 생각은 자주 나는데, 아이들 생각은 항상 난다. 아이들이 즐겁고 재미난 것들을 나보다 많이 경험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야구, 책, 영화, 게임……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던 것들을 전해주고, 그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좀 살 만해야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먹고사는 것들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들. 먹고사는 것이 좀 어느 정도는 채워지고 난 이후에 찾게 되는 것들이다. 아름답고 즐겁고 좋은 것들은 거의 그런 것들인데, 참.


다행인 것은 이 세상이 재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세상이 갑자기 얼어붙거나 물에 잠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지구가 천천히, 다만 확실히 나빠질 것이라고 한다. 근데 다행인 게 맞나? 어떻게든 인류는 지금처럼 극단적인 폭염, 폭우, 가뭄, 혹한 같은 것들을 조금씩 더 경험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이다음 세대부터는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날씨마저 혹독하다니. 미안하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그런데 참, 기후 변화 같은 이야기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 무기력에 빠지기도 한다. 사회 변혁이나 혁명처럼. 한 인간의 손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능한 변화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또 전문가들의 조언을 생각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긍정적인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한숨이 나오더라도 조금이라도 노력할 수밖에는 없다.


야구는 분위기 싸움이라서 찬스가 왔을 때 조금이라도 점수를 내면서 분위기를 이어가야 한다. 찬스를 잡지 못하면, 상대팀에게 기회가 홀딱 넘어가곤 한다. 한 이닝에도 열몇 점을 낼 수 있는 것이 야구이지만,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한 점 내기도 어려운 게 야구라는 스포츠다. 찬스가 찾아올 때 한 점, 두 점씩을 낼 수 있는 팀이 분위기를 이어서 큰 점수 차도 역전하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나중에 하자고 미루다가는 아웃카운트가 금방 쌓일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오늘, 오늘만큼의 타격을(혹은 투구를) 하자! 그런 것이다. 타격이 안 되면 번트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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