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한 달이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점심을 먹이느라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였죠. 설거지를 마치고 방안에 앉았습니다. 아직 혼자 앉지 못하는 둘째를 무릎 위에 앉히고, 벽에 붙은 모네의 그림을 요술봉으로 탁탁 치며 선생님 놀이하는 2살 첫째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때, 누군가 제 귓가에 말했습니다.
“뛰어내려.”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무릎 위에 앉아있던 둘째의 뒤통수가 보였습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지금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르려던 거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어린아이 키우는 일은 다 힘들다고들 하잖아. 남들도 똑같겠거니 싶어서 꾹 참고만 있었던 건데.’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애써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을 재운 밤, 현관 앞에 서서 거울을 바라보았습니다. 변해버린 체형, 푸석해진 머릿결, 표정 없는 얼굴. 일부러 피했던 나를 마주한 순간, 기분이 오묘했습니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지금까지 3년. 이렇게 변한 내가 낯선 건지, 이전의 내 모습이 낯설어진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분명한 건 ‘살아야 한다. 행복을 찾아야 한다.’라는 사실. 어렴풋하게 해결책은 내 안에 있다는 생각이 찾아왔고 점차 확신이 들었어요. 이윽고 거울 속의 나에게 어색한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 넌 누구니?”
젖병을 삶고 바닥을 치우면서 계속 내가 누구인지 고민했지만, 도통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방사선사로 환자분들께 살가웠던 나, 장애인·기업의 대표·대학생 등과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던 나는 까마득한 옛날 같았습니다. 첫아이를 임신한 후 자주 쓰러지던 나, 온종일 귀 뒤에 아이스팩을 하고 누워서만 지내던 나, 코로나로 집안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나 역시 낯설고 갑갑했습니다.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8년 동안 550명을 만나 인터뷰하며 다양한 질문을 해왔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어떠한 것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요. 하루의 가장 고단한 시간과 자유로운 시간은 언제인지, 가장 좋아하는 바람의 온도, 나뭇잎의 색은 무엇인지, 지금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에 있고 싶은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했습니다. 힘이 들 때 듣고 싶은 음악이나 울고 싶을 때 나를 구해 줄 음식이 없다는 게 말이죠.
그날부터 매일 하루 10분씩 나에게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써 내려갔습니다. 어떤 날은 종이가 뚫릴 만큼 박박 휘갈겨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잠든 아이들 옆에서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으며 눈물을 줄줄 흘렸어요. 그 시간이 제게 숨구멍을 열어주었습니다. 하루 또 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구멍이 넓어져, 그 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손을 내밀거나 밖으로 나갈 수도 있었지요.
당신은 어떠신가요? 내 나이에는 이런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혹은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나씩 쳐내기도 벅차서. 이런 이유로 그저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가고만 있지는 않으신가요? 안타깝게도, 열심히 산다고 해서 잘살게 되지도 행복해지지도 않습니다. 그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지, 지금은 그 과정 중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이 도움이 되지요.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을 해보세요.
돈과 시간의 제약이 없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1년 후,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 아이의 결혼식 전날 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5년 후 내 삶이 끝난다면, 가장 후회할 것 같은 일 3가지는 무엇인가?
분명한 건, 하나씩 질문에 답할 때마다 생각이 또렷해질 거라는 겁니다. ‘노랗다’라고 뭉뚱그렸던 것들을 ‘노르스름하다, 샛노랗다, 누렇다, 노리끼리하다, 연노랗다’로 구분하면 해상도가 확연히 높아지겠지요? 내 삶의 해상도가 높아지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고 내게 중요한 것들을 잘 챙기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질문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삶의 원칙을 세울 수 있도록 돕습니다. 내 몸을 지탱하는 코어 근육 처럼요. 발걸음은 자신감 있겠지요. 그렇게 당신만의 행복을 찾아 담대하게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저의 응원이 당신의 마음에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