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이잉- 지이이잉- “여보세요.”, “아, 다경이 어머님이시죠? 여기 S 어린이집이에요. 어쩌죠,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어린이집의 폐원이 결정되었습니다. 2월에 운영을 종료해요. 다른 기관을 알아보셔야 하겠어요.” 그야말로 황당한 연락이었습니다. 어린이집에 입소한 지 채 석 달이 되지 않았고, 이미 1월이 지나서 신학기 입소가 마무리된 곳이 많다고 들었으니까요.
어버버 하는 사이에 원감님의 하소연이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만 3세부터는 대부분 영어 유치원으로 옮겨서 정원의 절반도 채워지지 않은 지 몇 년이나 지났다더라고요. 시대에 발맞춰 유명한 어학원의 원어민 선생님이 매일 상주하고, 발레나 사고력 수학 등 다양한 활동을 추가해도 어린이집이 끝나고 또 다른 학원을 보내야 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붙잡지는 못하셨답니다. 원어민 선생님도 발레 수업도 들어본 적 없는 유아반 학부모인 저는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통화가 마무리되었지요.
그리고 얼마 뒤, 오랜만에 찾은 미용실에서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자주 오시는 손님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영유 보내는 게 돈 버는 거래요. 영유에서 파닉스랑 리딩 먼저 다 배우고 가면 초등학교 때 수능 영어 끝낸다면서요? 그러면 중학교부터는 내신 관리하면서 다른 과목 잡아나가는 거죠. 그때 가서 영어 공부하려면 수준 차이 나서 학원도 못 다녀요. 개인 과외 해야지. 큰애들 과외비는 부르는 게 값인데. 유명한 D 학원 의대 준비 방학 특강반만 해도 한 달에 600만 원이라고."
‘아, 교육비 때문에 아이 못 낳는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마치 외국에서 오래 지내다 온 사람처럼 멍하게 앉아 한국의 교육 문화를 듣는 저를 애송이처럼 쳐다보는 미용사분의 시선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멋쩍은 미소와 씁쓸한 마음이 교차했지요.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전 세계가 손꼽는 교육 강국입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한국 학부모의 교육열은 아무리 가난해도 차이가 없다’라며 한국 엄마의 교육열을 추켜세웠지요. 네, 맞습니다. 2023년 기준 초중고 학생 수는 521만 명으로 한 해 전보다 7만 명이 줄었지만, 사교육비 총액은 4.5% 증가한 27조 천억 원입니다. 물가 상승률 3.6%를 훨씬 웃돌았지요. 비단 학생들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영유아의 10명 중 7명 (65.6%)은 사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있고, 만 5세 때 받은 사교육의 수는 절반(49.2%)이 3개 이상을 꼽았습니다.
왜 이렇게 대한민국이 펄펄 끓고 있을까요? 당연히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경우에는 킬러 문항이 배제되면서 입시의 불확실성이 커져서, 또 문·이과 통합으로 갖춰야 할 것이 너무 많아져서. 물론 ‘정답’을 맞춰야 하는 교육 방법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맞습니다. 많이 외우고 더 많은 문제를 풀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대는 변했습니다. 문·이과 통합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더 어려운 문제를 풀어 정답을 맞히는 암기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미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키우자는 겁니다. 대입 제도가 개편되면서, 서울대를 시작으로 역량 중심 평가 체제의 심층 면접을 강화한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그동안의 면접이 정답을 맞혔는지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평가하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열린 문항에서 학생이 공부한 경험을 활용해 답하는 과정을 평가하는 시간이라는 거죠.
또 하나의 교육 이슈인 국제 바칼로레아(IB) 프로그램 도입도 알아볼까요? IB 프로그램은 외교관이나 해외 주재원같이 국가 이동이 잦은 직업을 가진 부모의 자녀가 대학 입학 자격을 갖추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196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이 되었고요. IB에서는 국제적 소양을 갖추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타인과의 상호 연결, 탐구심과 배려심을 중요시합니다. 토론과 발표 위주의 수업을 기반으로 비판적인 사고와 창의성을 강조하고, 최대 4천 단어 분량의 에세이를 제출해야 하며, 논술과 서술 평가가 대부분이죠.
여러분의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자기소개서를 술술 채워나셨나요? 저는 한부모 가족이나 저소득층 자녀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주는 재능기부를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대부분이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로 시작하는 짧은 문장을 적어왔죠. 기억에 남는 여행지, 힘든 일을 극복했던 사례, 다른 사람을 도와줬던 이야기를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았어요.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노란 버스가 참 많이 지나다닙니다. 또래의 친구들은 유리창 너머의 우리를 무표정한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지요. 그렇게 버스에 앉아 학원 다니는 시간이 더 길어진 우리 아이들은 하얀 백지에 4천 단어를 적어나갈 수 있을까요? 가족과의 추억도 논술 학원 선생님이 만들어줄 수 있나요?
토론과 에세이, 면접의 공통점은 ‘내 생각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을 말과 글로 엮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교육의 방향이에요.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야 할까요? 할 말이 많은 아이, 쓸 것이 많은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그렇게 같이 놀 친구들이 많으면 아이 맡길 곳 없어서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맞벌이 부모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