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참 낯설었습니다. 변해버린 체형, 푸석하고 붉은 얼굴, 깊게 파인 목주름.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요.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둘째의 출산까지. ‘만 2년 동안 숨 쉴 틈 없이 살아온 결과가 이건가.’ 허탈함이 느껴지더군요.
첫 아이의 출산은 그야말로 생존이었습니다. 임신 4개월 차부터 갑자기 이명을 시작으로 어지럼증과 구토, 졸도의 증상이 나타났거든요. 여러 과의 진료를 받았습니다. 누군가는 메니에르를, 누군가는 간질을, 또 다른 뇌 질환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혼자서는 씻을 수도 없던 시간. 가만히 누워서 날이 차기만을 기다려야 했지요. 임신 9개월 차에 들어서면서 자궁이 혈관을 눌러서 생긴 증상임을 알았습니다. 양쪽 목 뒤로 지나가는 혈액의 속도가 두 배 이상 차이 난다더군요. 혈액 속도를 늦추기 위해 오른쪽 귀 뒤에 종일 얼음팩을 갖다 대고, 자다가도 일어나 2시간에 한 번씩 집안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가진통이라도 오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기에 37주 이틀째 날 대학병원에서 부분 마취를 하고 아이를 낳았지요.
아이를 낳기만 하면 모든 것이 돌아갈 거라는 희망에 가득 찼을 때, 코로나 19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치과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코로나 19는 타액을 매개체로 비말 전파되는 질환입니다. 신생아를 키우며 치과에서 근무하는 저의 상황을 집과 회사 모두 부담스러워했어요. 저는 전업맘이 되었습니다.
외출이 자유롭지 않던 시대. 말 못 하는 아기와 시간을 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책 읽기였습니다.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동화 구연에 꽤 소질이 있었던 제게는 참 편했거든요. 아이 역시 책을 좋아해 돌이 되기 전부터 매일 수십 권의 책을 읽고 노래를 부르며 지냈어요. 아이도 저도 책을 외울 지경이 되었을 때, 책 정보를 알기 위해 SNS를 가입했습니다. ‘책육아’라는 신세계를 만났지요.
아이를 재운 밤이면 코팅기를 돌리고 가위질을 하고, 날이 밝으면 또 아이와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점점 우울한 날이 많아졌습니다. 왜 나는 매일 발바닥에 굳은살이 배기도록 뛰어다니는데도 SNS 세계의 완벽한 엄마들과 이다지도 차이가 나는지 속상했어요. 인지가 빠른 아이를 내 부족함으로 채워주지 못할까 봐 불안했고요.
그러던 어느 날, 환청까지 들리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아직 혼자서 앉지도 못하는 둘째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처절할 만큼 인생을 되돌리고 싶었어요. 그때, 시인이 되고 싶었던 제가 떠올랐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서 시를 필사하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쓸만한 종이를 찾는 것도 어려워 영수증 뒷면에 적었어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난 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차피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다른 사람의 글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적어보자.’ 내가 좋아하는 것, 감사한 일, 나를 힘들게 하는 일, 내 인생의 목표…. 그 글은 저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다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힘, 숨이 가쁠 만큼 힘든 지하철 타기를 연습하는 힘, 다시 꿈을 꾸는 힘.
제 인생을 다시 바꾼 두 가지를 꼽는다면 하나는 글쓰기이고, 다른 하나는 하브루타입니다. 하브루타를 하며 기존의 육아관이 모두 바뀌었으니까요. 아이에게 자꾸 채워주려는 노력을 멈췄습니다. 제가 아무리 채운다 한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의 속도를 따라갈 순 없으니까요. 또, 채우려는 마음으로 보면 아이의 부족한 점만 눈에 띄었습니다. ‘아직 10까지 수양일치가 덜 되었구나. 10의 보수를 다시 알려줘야겠구나’처럼요. 제가 할 일도 그만큼 늘어났지요.
하지만 아이와 세상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하브루타를 하면서 우리는 하루를 더 알차게 보냈습니다. ‘늘 도로 표지판을 보면서 다니고 있었구나. 딴청 피우는 줄 알았는데.’ 아이의 성향을 알기도 하고, 손을 잡고 걸으며 좋아하는 요일과 계절을 이야기했지요.
그러는 동안, 저도 나무를 보았습니다. 사르륵- 나뭇잎이 바람에 서로 비비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죽은 것만 같았던 겨울나무에 새순이 돋은 것처럼 저 역시 다시 싹을 틔웠어요. 웃고 떠들고 생각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유대인들의 시끄러운 하브루타가 저의 삶을 소란스럽게 바꾸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조용한 걸 좋아하는 저이지만 그 소란이 조금도 거슬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새처럼 지저귀는 아이들의 말소리가 ‘엄마, 살아줘서 고마워.’ 응원과 격려처럼 들렸습니다. 네, 살아있길 참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