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내가 받았어야 할 등기는 부재로 우체국에 보관되었다.
그 등기가 어떤 등기인지, 어렴풋하게 짐작이 갔다.
처음 저지른 일이자 겪는 일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흘러갔다.
초행길이라 꽤 버거운 운전으로 우체국에 도착했다.
주차도 겨우 하고, 입구가 어딘지 몰라 헤맸다.
여긴가? 싶어 올라간 곳은 많은 우체국 직원들이
우편물을 분리하는 곳이었기에 굉장한 시선을 받았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시선에 허둥대다,
무심한 안내를 받고 겨우 등기 수령 접수처 앞에 섰다.
분명히 고요한 어느 하루였던 것 같은데,
몸은 속 시끄러움을 부산스러움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발끝이 동동거리고, 손가락들은 제각기 서로를 더듬었다.
신분증을 드리고, 하얀 봉투를 되받았을 때.
나는 그걸 당장 뜯고 싶기도 했지만,
영영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평소에 익숙하게 보던 등기였고,
두툼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봉투였다.
손에 쥐었을 때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 안에 내가 살아오는 내내 옥죄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한 결심이 들어있다는 게 이상했다.
너무 가볍고, 너무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서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수도 없었다.
차에 앉아서 등기봉투를 뜯었다.
‘잠정조치 결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문장이 잘 읽히지 않았다.
눈으로는 따라가는데 의미가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접근 금지.
연락 금지.
거리 제한.
내가 요청했던 것들.
아니, 요청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것들.
그냥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말해버린 것들.
그게 법으로 결정이 되어 돌아와 있었다.
그 순간 기쁘다기보다는 뭔가 실감 나지 않았다.
이게 정말 나한테 온 건지.
이런 게 실제로 되는 일이었는지.
불과 며칠 전에 수사 결과 통지서를
받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XX지검으로 송치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메시지로 담당 주임검사가 배정되었다는 안내도 왔다.
문자로도, 종이로도 받았지만
그때는 모친을 신고했다는 죄책감이 먼저였다.
내가 너무 나간 건 아닐까.
이 정도까지 할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그 생각이 문장들보다 앞섰다.
그런데 법원에서 온 결정문은 달랐다.
누군가가 내 말을 듣고, 정리했고, 판단했고
선까지 그어놓은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이건 네가 예민해서가 아니다’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법이 인정한 문서로 받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금세 나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
결정문 내용에는 날짜가 있었기 때문이다.
잠정조치의 유효기간이었다.
2026년 2월 3일까지..
머리가 갑자기 바빠졌다.
아, 기한이 있는 거구나.
영원하지 않구나.
대충 3개월 정도였다.
생각보다 짧았다.
아니, 너무 짧았다.
성인이 되고서도 꼬박 20년 가까이를 쫓겼는데,
법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기한은 고작 3개월이다.
물론, 연장은 가능했다.
최대 3개월씩, 2회 연장.
모든 연장을 다 써도, 5월 3일.
그다음은, 2026년 8월 3일.
그게 최선이라는 소리였다.
잠정조치 역시, 가만히 보면 대단한 건 아니었다.
피해자에 대한 스토킹 범죄 중단에 관한 서면 경고.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와 전기 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물론 이걸 어길 경우엔,
피의자인 모친은 법을 어겼으니
곤란을 겪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모친이 겪을 곤욕은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두 번 다시 그 사람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유효기간이 있는 보호 속에서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 사는 곳에서 이사를 갈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도, 마음으로도.
화가 났다.
이 정도까지 하면
오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이 정도면 안 와야 하는 거잖아.
근데 오겠지.
분명히 올 거다.
모친은 늘 내 삶을 자신의 소유처럼 다뤘다.
내가 통제에서 벗어난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파고들었다.
대화를 거부하면
학교로, 회사로,
언제든 ‘등장’했다.
그래서 나는 안다.
이번에도 오지 말아야 할 이유가
오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걸.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끝나자마자 오면 어쩌지?
그전에는 멀리서 보고만 있으면?
비가 많이 내리던 어떤 날이 떠올랐다.
모친의 초인종 소리에 내가 집에 없는 척
불을 끄고 숨죽이고 있었던 그날.
모친은 집 밖 거리에서 우리 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을 알아보라는 듯, 화려한 우산을 쓰고 한참을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지 않았는데도
그 시선이, 그 압박이 느껴졌다.
그날의 공포가 잊히지 않는다.
그만. 이제 그만.
생각을 멈춰야만 했다.
결정문을 다시 접었다.
봉투에 넣고 가방에 넣었다.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밖은 여전히 평범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차는 지나가고,
사람들은 각자 갈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만 다른 시간대에 있는 기분이었다.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과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
싸우기로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할 수 있어. 진짜, 괜찮아.
스스로에게 말해봤다.
하지만 머리 한쪽에서는
계속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도무지 스위치가 꺼지질 않았다.
2026년 2월 3일.
그다음엔 5월 3일.
마지막은 8월 3일.
정말, 이사를 해야 하나?
어디로? 어떻게?
기분이 널뛰어 어쩔 줄을 몰랐다.
안전해진 것도 같고,
더 위험해진 것도 같았다.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나의 '본심', 그거 하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마주하고 싶지 않다.
엮이고 싶지 않다.
이제 문제는
그 마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였다.
그리고 이 마음을
혼자서만 버티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처음으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