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기 위한 선택들

13화.

by 김우연


내가 느끼는 감정과 별개로

일상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전화 한 통으로 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앞으로 닥칠 일들을 감내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포 자체보다 더 위험한 건,

공포에 반응하는 나였다.




예전부터 나는 위기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정리하는 쪽에 가까웠다.


울고 싶을 때 울기보다는,

울 필요가 없도록 상황을 계산하는 사람.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면

그다음은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걸,

나는 이미 수없이 배워왔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도

본능처럼 같은 선택을 했다.


흔들리지 않는 척,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하루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지경까지 오고 나니,

내가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해 왔다.

‘그렇게까진 안 하겠지.’


그 말은 기대이자 자기암시였고,

동시에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였다.


하지만 회사로 걸려온 그 전화는,

내가 어렵게 유지해 온 그 선을

단번에 넘어왔다.


잠정조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우회적인 통로를 택했다는 사실.


그건 실수도, 우연도 아니었다.


여전히 접근할 수 있다는 확인이었고,

법의 선은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는 과시였다.


그날 이후로 질문이 달라졌다.
‘이 사람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답이 없었고,

그래서 더 위험했다.


구체적인 위협은 대비할 수 있지만,

범위를 알 수 없는 가능성은

대비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상식 바깥의 행동을 상상하게 만드는 순간,

공포는 현실보다 먼저 몸에 스며든다.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그 공포를

혼자서 처리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무너지고 싶지 않았고,

무너져선 안 됐다.


이유는 분명했다.


내가 불안해지면,

그 불안은 반드시 주변으로 번져 나간다.


불안한 상태의 나는

주변 사람들을 과도하게 살피고,

동시에 더 깊이 숨는다.


그 모순적인 태도가

내가 생존해 온 방식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쏟아내는 대신,

일상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스마트워치와 자택 CCTV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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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워치를 수령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내 사진을 찍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정보를 기재하고,

사건의 경위를 문장으로 정리하는 절차들.


나는 내가 겪은 일을

가능한 한 상세하게 설명했다.


통화 녹취, 모친과의 관계,

그 관계가 왜 단순한 가족 갈등이 아닌지.


새로운 담당 경찰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지만,

이 복잡한 관계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해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기록되고, 절차로 남는 것이 필요했다.

그게 지금의 나를 붙잡아 줄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담당 경찰의 말투에는

이전 담당에게서 느꼈던

무례함이나 성급함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사건이 해결을 향해

나아가고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게 한 번 더

반복된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유지되는 사건이 아니라,

계속해서 호출되는 사건이라는 감각.




스마트워치는 생각보다 작았다.


경찰서에서 건네받은 그것은,

위급할 때 누르면 바로 신호가 간다는 설명과

함께 손목에 채워졌다.


스마트워치는 내가 평소에 착용하던

갤럭시 워치와 거의 같은 모습이었다.

손목에 찼다고 해서 마음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담당 경찰은 상세하게 설명하고,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시연했다.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되는지,

몇 초 안에 연결되는지,

어디까지 위치가 공유되는지.


버튼을 누르면 출동이 시작되고,

그 사이에는 분명한 시간차가 존재한다.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가해자는 충분히 피해자를

해칠 수 있다는 걸.


평생 이어져 온 모친의 집착이

어느 지점에서 어떤 형태로 폭발할지

나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완전히 숨을 수 없는 한,

이 일은 형태만 바꿔가며

반복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마트워치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잘 작동하는지, 배터리는 충분한지.


손목에 채워진 이 작은 기계는

나를 지켜주는 방패라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불안한 상태인지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장치 같았다.


보호를 받는다는 안도감과,

보호가 필요할 만큼 망가졌다는 자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생각은 점점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사람이 만약 죽는다면,

그때는 끝날까.


아니면 영혼이 되어서도

나를 붙들려고 하지 않을까.


예전에는 누군가가 죽어야

끝난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사라져야 끝나는 건

아닐까라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죽어도, 이 사람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평생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집착과 통제였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때

얼마나 무한히 이어질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됐다.


끝이 없다는 감각은,

물리적인 위협보다

훨씬 깊숙이 파고들었다.




집 CCTV는 며칠 후에 설치된다고 했다.


‘며칠’이라는 단어가 길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날짜가 정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숨이 조금은 트였다.


나는 더 이상 혼자서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상상했다.


문 소리, 발자국, 전화벨.

그 모든 것을 나 혼자

해석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며칠 후 설치된 CCTV 역시

스마트워치와 다르지 않았다.


전문가가 방문해 설치했고,

피해자 전담 경찰이 직접 확인하고 돌아갔다.


실내에는 강아지를 촬영하던 홈 CCTV가 있었고,

외부에는 경찰이 제공한 CCTV가 설치됐다.


실외 CCTV는 움직임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입실과 퇴실 알림이 실시간으로 왔다.


매주 경찰에게서 전화도 걸려왔다.


괜찮은지,

그 사람이 나타나지는 않았는지,

화면에 남은 흔적은 없는지.


하지만 이 모든 장치가

나를 완전히 안심시키지는 못했다.


다른 입주민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생긴 사각지대가 있었고,

그 사람은 언제든 비상계단이든 복도든,

어디에서든 나타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경찰의 CCTV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마음까지 보호받는 건 아니었다.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마음속에 난 고름이

한 번에 터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였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숨이 막혔다.


며칠 밤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야 인정하게 됐다.

이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걸.


정신과 상담을 알아봤지만 비용은 부담스러웠고,

관할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알게 됐다.


인터넷 상담으로 현재 상태를 설문하고,

견디기 힘든 심정을 남겼다.


경찰은 센터에 협조 요청을 해 주겠다고 했다.

덕분에 상담 예약은 빠르게 잡혔다.


막상 예약이 잡혔지만,

또 썩 내키지 않았다.


피해자인 내가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설명할수록 사건을 반복 시키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말 하지 않으면 머물러 있겠지.


나는 상담을 ‘치료’라기보다는

‘정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부서진 감정을 고치는 일이라기보다는,

흩어진 파편을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작업.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이고,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 지 확인하는 상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계속해서 두려움에 휩쓸린 채

반응만 하며 살게 될 것 같았다.


그날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버텨야 했다.




법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았다.


모친이 나에게 가한 심리적 침입은 명확했지만,

그것을 법의 언어로 옮기면 늘 어딘가에서 빠져나갔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

처벌과 경고 사이의 틈.

그 틈에서 나는 계속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법을 더 믿어보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법이 아니라 ‘절차’를 믿기로 했다.


누군가가 내 말을 기록하고,

날짜와 시간으로 남기고,

그 과정이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를.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도,

나는 아주 작은 선택들을 하고 있었다.


스마트워치를 찬 것,

CCTV 설치를 결정한 것,

상담을 예약한 것.


또 무너진 내가,

흩어진 나를 주워 담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들.


아직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 공포를 나 혼자만의 것으로

두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다시 살아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었다.

이전 12화선 넘지 않은 침입, 위반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