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고백

14화.

by 김우연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금방 상담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가장 빠른 날로 예약을 잡았고,

그날은 꼬박 일주일 뒤였다.


멀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 약속 하나를 붙잡고 버텼다.


상담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딘가 기댈 곳이 생긴 기분이었다.


접근금지, 연락금지,

스마트워치에 CCTV까지.

거기에 상담 일정이 더해지니

나름대로는 방탄 조끼를

껴입은 느낌도 들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나를 방치하지 않는다는 증거 같았다.




상담 당일, 구청에 딸린 센터에 도착했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이 아니라

잘못 들어온 사람처럼 서 있었다.


안내를 받고 용건을 말했을 때

돌아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잘못 찾아오셨어요. 여기가 아니에요.”


순간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상담사랑 분명히 약속을 다 잡았는데?

분명 주소와 연락처를 문자로 보내주겠다고 했었다.


상담을 잡은 날 문자는 오지 않았다.

당일에 보내려나 보다 하고 넘겼다.

그런데 당일이 되어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통화했던 번호를 찾으려 했지만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한창 근무 중에 받았던 전화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그 자리에 서서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문자함을 내리고, 통화 기록을 다시 보고,

혹시 내가 지웠나 싶어 휴지통까지 뒤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맥이 탁 풀렸다.


그날의 나는 이미 오래 버틴 상태였다.

전문가라면, 적어도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는

실수가 없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 알만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허탈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아주 잠깐 억울함이 스쳤다.


그러나 곧 스스로를 눌렀다.

고의는 아니었을 거라고.

일부러 이랬을 리는 없다고.


아무리 바빴어도, 담당자의 연락처 메모를

따로 해두지 않은 내 탓도 있었다.


사실 화를 낼 기운이 없었다.

그냥 기운이 빠졌다.


결국 상담을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담당자와 연락이 된 덕분에,

다시 정해진 상담일까지 일주일을 더 살아야 했다.


그 일주일은 처음보다 더 길었다.

긴장은 조금도 낮아지지 않았다.


스마트워치가 손목에 있고,

CCTV가 돌아가고 있고,

매주 경찰의 확인 전화도 오는데도,

마음은 전혀 안심하지 못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 발소리,

휴대폰 진동 하나에도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매일을 버티고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부터 더 힘들어졌다.


‘나는 또 버티고 있는 거구나.’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온 세상에 지진이 일어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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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 시내 상담소로 향했다.


건물은 조용했고, 공기는 지나치게 고요했다.


어딘가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평온함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세상은 이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가고 있는데,

나만 다른 시간대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복도 의자에 털썩 앉아버렸다.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무섭거나 두려운 건 아니었다.

그냥 너무 지쳐 있었다.


‘또, 설명하려니 지긋지긋하네.'


딱, 이 마음이었다.


우연히 다른 상담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가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나는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상담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창문이 없는 작은 방이었다.

닫힌 공간에서 초면인 사람과

마주 앉으니 현실감이 흐릿해졌다.


내가 상담을 받으러 온 건지,

또 다른 진술을 하러 온 건지 순간 헷갈렸다.


“편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해보세요.”


선뜻 어떤 단어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편하지 않았다.


신고하던 날, 경찰서에서 느꼈던 감각이 스쳤다.

설명해야 했던 나, 증명해야 했던 나.


이번에도 잘 정리해서 말해야 한다는 강박이 올라왔다.

횡설수설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


“어...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됐어요.

그게 사랑이 아니라 학대라는 걸 안 건,

너무 어른이 된 후였어요.”


이 말을 꺼내는 데 생각보다 많은 힘이 들었다.


나는 ‘나르시시스트 엄마’라는 단어로

내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친도 같은 부류라고 덧붙였다.


상담사는 메모를 하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놀라지도 않았고, 섣불리 공감하지도 않았다.

그 태도가 오히려 안심이 됐다.


동정받고 싶지 않고,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덤덤하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감정이 폭발한 건 아니었다.

금이 간 틈으로 새어 나온 물처럼, 조용히 흘렀다.


이야기가 절반쯤 흘렀을 때

상담사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겪으신 일들이 심각한 아동학대이자,

가정 폭력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나는 그 시간을 ‘힘들었던 과거’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심각한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이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무게였다.


그 말이 내 안에 닿자 오래 고여 있던 것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독처럼 응어리진 무언가가 빠지는 동시에,

텅 비는 감각도 함께 따라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제가… 예민한 건 아닐까요?

솔직히 경찰에 신고한 게 너무 과민한 반응인가

싶을 때가 있거든요.”


상담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잘 버티셨어요.

신고하신 것도, 정말 잘하신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어릴 때 받았던 ‘참 잘했어요’ 도장이

마음에 쿵 찍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한 문장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솔직히 모친의 보복이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그 사람이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상담사는 모친이 보이면 즉시 신고하라고 했다.

그리고 오히려 찾아왔을 때, 상대방이 쌓는 벌점을

철저하게 법으로 재단해서 되돌려주라고 말했다.


그 명분은 내 잘못이 아니라,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현실적인 말이었다.

어쩌면 조금은 이상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막을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내담자분은 그 누구보다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분 같아요.

그 의지를 잘 지켜오셨어요. 그건 진짜 대단한 거에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릿속이 잠시 하얘졌다.


아, 나는 살고 싶었구나.

죽고 싶다고 수없이 말해왔지만,

사실은 너무 살고 싶어서 그렇게 외친 거였구나.




나는 살기 위해 신고했고,

장비를 설치했고,

이 방에 앉아 있었다.


상담이 끝날 무렵,

몇 차례 더 상담을 이어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아니라고 답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꼈다.


더 파고들면, 내 안에 남아 있는 무언가가

완전히 소진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온몸이 노곤했다.


더 이상 잘했나, 못했나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늘 스스로를 채점해왔으니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이건 내가 나에게 처음으로 하는 고백이었다.

나는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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