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검찰에서 걸려온 통화는 짧았다.
수사관은 먼저 내게 잠정조치를
연장해야 하는지 물었다.
"필요합니다"라고 답했다.
확고한 마음만큼, 대답은 간결했다.
사실 잠정조치 연장도 중요하지만,
더 궁금한 건 사건의 결말이었다.
벌금이든, 처벌이든
결론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나만큼이나,
검찰 쪽 답변도 간결했다.
"검사님이 사건 검토 중이십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사건인가.
궁금했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수사관이 바빠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후 1시, 다급하게 건 전화로 그녀는
내게 긴급히 당장 3시까지 서류 제출을 요청했다.
필요하다는 서류는 '잠정조치 연장 신청서'.
내가 대략적으로 왜 연장이 필요한지를 기재하고,
서명이든 날인이든 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
수사관의 다급함과 반대로 나는 차분했다.
모친이 우회적으로 회사에 전화를 걸었던 얘길 하며,
수사에 해당 내용을 추가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도통 부산스럽게 말을 하는 탓에
'이 사람, 믿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경찰서에 방문했을 때처럼,
현재 내가 근무하는 곳에 대한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흘릴 것만 같았다.
제발, 내가 근무하는 곳에 대한 정보를
피의자 측인 모친에게 흘리지 말아 달라고
거듭 부탁을 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곧장 '잠정조치 연장 신청서'를 작성하고,
모친이 내 직장 동료와 통화 한 음성 파일을 첨부해서
수사관이 말한 메일 주소로 보냈다.
2시 반쯤 연락이 와서,
메일이 안 들어왔단다.
다시 보내고, 한참 뒤에야
음성 파일이 열리지 않는다는 답이 왔다.
파일의 확장자를 변경하고 다시 보냈다.
어쩐지, 쏟아지는 사건들 속에서
한낱 티끌 같은 사건의 당사자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서 맥이 빠졌다.
그 뒤로 검찰 측에서 연락은 없다.
여전히 형사사법정보시스템 상에서
내 사건은 어떤 결말 없이 진행형이다.
진행형.
이상하게도 그 단어가
더 이상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언제 끝나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잠식했을 것이다.
결론이 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결론이 나지 않아도
나는 하루를 살 수 있다.
사건은 진행형이지만, 내 삶까지 진행형으로
묶어둘 필요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평생을 따라붙어왔던 문제가
단 몇 달 만에 정리되는 게 더 허무했을 것이다.
잠정조치가 연장되면서
나는 하나를 더 정리하기로 했다.
관계의 거리.
누가 가까이에 있고,
누가 조금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
그동안 나는 관계를 ‘끊거나’
‘버티거나’ 둘 중 하나로만 다뤘다.
견디다 못해 끊거나,
불편해도 참고 이어가거나.
중간은 없었다.
어느 시점에는 내가 유난인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과거가 어땠든,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였다.
가깝지도, 완전히 멀지도 않은 거리.
필요 이상으로 설명하지 않고,
괜히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는 자리.
나는 나보다 타인을 위해
나를 소모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는 나를 고통스럽지 않게 할 것.
그래서 사회에서 만났던
'나르시시스트'들을 떠올렸다.
그때는 사랑인 줄 알았지만,
지나고 보니 전부 착취였던 관계들 말이다.
나는 겉으로 강한 사람보다
유난히 연약해 보이는 사람에게 더 약했다.
그들은 중심보다는
외곽에 선 사람들이었다.
처연하고 측은한 사람.
사연 있어 보이는 사람.
작지만 조금이라도 나와
유사한 결핍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들에게 공감했다.
하지만 그들은 타인의 감정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다만 필요해했다.
위로가 필요할 때는 위로를,
존경이 필요할 때는 존경을,
지지가 필요할 때는 지지를.
바깥으로 향하던 측은지심을
내 안으로 끌어오기로 했다.
내가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언제인지.
내가 존중이 필요한 때가 언제인지.
나는 내게 어떤 지지를 할 수 있는지.
나의 내면 아이와의 관계에서
어떤 걸 주고받아야 할지 생각했다.
내가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생각지도 못하게 큰 위로가 된다는 걸
나는 요즘 실감한다.
내면 아이와 나의 거리를 좁히는 대신,
나는 타인과의 거리를 넓히기로 했다.
이미 자연스럽게 달라진 부분도 있었지만,
좀 더 면밀하고 확실하게 기준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의 거리감을 만들기로 했다.
늘 가까운 건,
내게도 상대에게도
정답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 사실을 알려준 건 뜻밖에도,
내게 꽤 많이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겪은 사람들이었다.
나처럼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서 벗어났지만,
급격한 감정 변화를 겪던 그 친구는
자연스럽게 나와 멀어졌다.
내어준 적도 없는 숙제 검사를 받는 아이처럼
내게 자신이 느낀 점과 혼란을 세세하게 얘기하던 친구.
한 번씩 그 신뢰가 버거워도, '연대'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 서로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답도 없이 반복되는 주제의 이야기'는
앞으로 제외하고 대화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연락이 없어졌다.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연락을 하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던 것 같다.
그 친구가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나의 인정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 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했다.
더 이상 그 버거움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 친구도 자기 방식의 독립기를 써나가겠지.
예전엔 버티다 지쳐서 "보지 말자."라고
관계를 끊어냈다면, 이젠 그냥 둘 수 있다.
사람은 억지로 붙든다고, 붙들리지 않는다.
역시 내몰아세운다고 해서, 나가지도 않는 법이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순수하게,
그 친구의 홀로서기를 응원 중이다.
*
하지만, 애틋한 존재도 있다.
인생을 전부 갈아서
부양의 책임을 다하는 친구.
하루하루가 위태로워 보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뭐라고.
서로 가까이 있다면 각기 다른 감정으로
서로를 갉아먹을 만큼 이 친구와 나는 닮았다.
벗어나겠다고 마음먹기 이전의 나처럼,
이 친구는 죽을힘을 다해 매일을 버텼다.
나는 그때의 나를 붙잡아줄 수 없었던 것처럼,
그 친구도 지금은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서로 많이 닮아 거리가 필요했다.
나와 친구의 선택은 달랐기 때문이었다.
셋 다, 다른 선택을 했다.
누구의 선택이 정답이랄 게 없다.
이 또한 모두 과정 중에 하나일 테니.
분명한 것은,
내가 세운 몇 가지 기준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중심이 되기 위해
타인을 밀어내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
내가 겪은 것을 이유로
타인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
상처를 무기로 쓰지 않겠다.
이해받고 싶어서
상대를 시험하지 않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움 때문에
타인에게 매달리지 않겠다.
요즘 나는 연습을 한다.
답장을 바로 하지 않는 연습.
불편한 부탁에 “어렵다”라고 말하는 연습.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설명하지 않는 연습.
누군가 서운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서운함을
내 책임으로 끌어안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제 모든 관계의 책임자가 아니다.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사건과 별개로
나를 다시 쌓아 올리고 있다.
기초부터 다시.
인정받기 위해 올린 벽돌이 아니라,
내가 오래 살고 싶은 구조로.
이번에는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구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