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상담 이후, 나는 조금 달라졌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불안이 나를 집어삼키지는 않았다.
상담사가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내담자분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분이에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그 말은 시간이 갈수록 더 단단해졌다.
뭐가 되었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 사람이 법을 어기며 다가온다면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나는 ‘내가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놓기로 했다.
그 단순한 기준 하나가 생기자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부모라는 존재를 두려워하는 걸까.
'공포' '두려움'이라는 키워드에
연결되는 장면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수학익힘책에 있던
곱셈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이유로
5살 유치원생이었던 나는 맞았다.
그 뒤로 유치원에 가질 못했다.
배워 본 적이 없어 풀지 못했는데,
배울 자격이 없다며 유치원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 내게 유일했던 친구는
마당에서 키우던 집토끼 둘이었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던 날,
토끼들은 나와 함께 잘 수 없었다.
아무리 울어도, 안 되는 거였다.
토끼들은 빗물에 빠져죽었다.
아무리 울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모친이 새빨간 무언가를 먹었다.
우스갯소리로 '토끼간'이라고 했다.
엄마 말을 듣지 않으면, 잡아먹는다고 했다.
무서웠다.
나는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먹힐 수도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1-2년인가 지났을 때쯤,
서랍장에서 보드라운 무언가를 발견했다.
애써 지웠던 토끼들의 털이었다.
공포 그 자체였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는
진짜 잡아먹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의 농담을
농담으로 듣지 못했다.
비는 참 지독하다.
소리, 습도, 냄새, 감촉까지
원하지 않아도 많은 걸 각인 시킨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다니던 비탈길.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오후에
모친과 할머니는 그 비탈길에서 싸웠다.
새하얗게 새어버린 할머니의 머리채를 잡고,
모친은 그 비탈길에서 구르며 몸으로 싸웠다.
작은 동네에 일어난 소란에 모두가 놀랐다.
슈퍼 아저씨도, 옆집 채소 가게도.
이웃들은 창문을 열고 아연실색했다.
도무지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아
얼어붙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울었다.
그 날, 할머니는 나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싸움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걸 알고 있었다.
*
부친은 이 날의 일을 직접 보지도 못했으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듣고 매번 나에게 말했다.
화풀이인 듯, 잔소리인 듯, 예언인 듯.
개연성없이 날아왔다.
"딱 보니 니도 똑같다.
분명히 니도 크면
네 엄마 머리채 잡을거다."
부친의 예언은 틀렸다.
나는 아무리 화가 나도,
모친의 머리채를 잡지 않았다.
30년은 훌쩍 지나버린 일이건만,
이다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그만큼 충격이었고 상처란 얘기겠지.
이 두 사건 외에
직접적으로 내게 행해진 폭행도,
셀 수 없는 폭언도 있었다.
모든 공포의 기억이
‘부모’라는 단어에 달라붙어 있었다.
내게 그들은 부모이기 전에 공포였다.
나는 그들이 필요하다면 살과 장기를 내어주고,
언제든 소비되고 가죽을 벗겨
전리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다.
부모는 나에게 귀신 같은 존재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고,
예측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존재.
공포의 근원을 안다고 해서
금세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이름은 붙였다.
이건 막연함이 아니라, 기억이다.
상담 이후, 별걸 다 해봤다.
사주를 보고, 심리 분석 글을 찾아보고,
비슷한 사례를 읽으며 답을 찾으려 했다.
예전엔 '나'에 대한 것들을 공부했다면,
이번엔 '부모의 심리'에 대해 공부했다.
왜, 언제까지, 내게 이럴까 싶어서.
결국 내가 원하는 답은 없었다.
대신 반복해서 들여다보는 동안
마음에 굳은살이 생겼다.
이해도, 공감도, 납득도 불가능한 걸
거듭 확인하는 과정 덕분이었다.
조금 지내다보니,
막연한 불안을 잠재우는 데에는
예방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외출 전에는 CCTV 실시간 화면을 확인한다.
집 앞에 누군가 서 있으면 바로 알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작은 움직임에 알람이 온다.
손목엔 스마트워치가 있다.
특정 버튼을 꾹 누르기만 해도,
경찰은 출동해줄 것이다.
밖에 나갈 땐,
나는 내 강아지들을 믿는다.
물론 출퇴근을 제외하면,
강아지때문에 외출하는 거긴 하다.
우리 강아지들은 내향형이다.
함부로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경계할 줄 알고, 필요하면 짖는다.
숏다리에 귀엽기만 하지만,
나만의 보디가드들이다.
친구들도 내 상황을 알고 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도와줄 것이다.
여전히 그들은 나의 불행을 나눠가지지도,
짊어지지도 않고 중심을 잘 유지해주고 있었다.
다만, 걱정했던 건 남자친구였다.
언제나 내가 아닌,
내가 가진 환경때문에 다들 내 손을 놓았다.
시작할 때 얘기하지만, 결국 다들 버티지 못했다.
상황을 정리해가는 과정인지라,
확실히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물었다.
“혹시 모친이 갑자기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는 단순하게 답했다.
“경찰 부르면 되지.”
그 대답이 이상하게도 충분했다.
그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알고,
자기가 선택한 관계를 가볍게 두지 않는 사람이다.
우선순위가 분명했다.
주변은 이미 충분히 단단했다.
그동안 내가 혼자 모든 가능성을 상상하며
앞서 무너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결국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상황은 그 자체로 지나갈 일들이었다.
알면서도 쉽지는 않았다.
늘 다짐하고, 무너지고를 반복했다.
다시 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버티는 게 아니라,
천천히 호흡을 고르듯이.
마음이 매일 조금씩 조금 편해졌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 편안함이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상에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두려움 속에 있지 않다.
기억은 남아 있지만,
기억이 현재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 과정을 글로 쓰고 있다.
에세이를 쓰는 일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글로 정리하면
감정이 밖으로 나와 앉는다.
문장 속에 놓인 감정은 나를 물지 못한다.
머릿속에서 뒤엉켜 있던 것들이
문장으로 나열되는 순간
조금 덜 위협적으로 보인다.
처음엔 단순하게 이 과정을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쓰다보니, 치유의 과정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
잠정조치가 끝나기 하루 전,
검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예전처럼 심장이
먼저 내려앉지는 않았다.
나는 수사관에게 물었다.
가장 궁금했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