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 Nov 16. 2024

적당한 거리

뭐든 적당한 관계가 편하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생각보다 더 이기적이다. 기대와 욕심이 관계를 망친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기준이 다를까 싶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처음부터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은 아예 나의 관계 구조에 들여놓지 않는다.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관계의 출발이다.


너와 내가 만나서 시간을 공유한다. 자꾸만 욕심이 고개를 든다. 네가 보인 선명한 관심에 욕심이란 싹이 자라난다. 공과 사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문제의 본질은 비껴가며 사소한 어긋남이 쌓인다.


일은 일, 감정은 감정.


딱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지만 과정과 결과를 모두 공유한다 하더라도 결과의 책임은 누구에게나 있다. 가능한 선에서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 너와 나의 관계를 공과 사의 '사'가 지배한다. 감정이 개입된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유리하게 해석하고 편집한다. 박 터지게 싸워도 진심 대 진심으로 밀고 나가야 통하는 거다. 아무리 가슴이 너덜너덜해지더라도 말이다.


가끔은 타인의 냉정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함께 공유하는 공기는 같지만 마음의 시간이 다른 사람들이다. 냉정한 뒷모습에 서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겪은 일이 위로받을 만큼 그리 대단히 어렵고 억울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넌 위로 같은 것 없이 냉담했지만 내가 받은 건 대단한 위로였다.


감정적으로 서로 얽히지 않은 관계란 없다. 너와 나를 스스로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감정이 가장 쓸모없는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아주 작은 콤플렉스 한 조각도 보탠다.


조급한 사람일수록 타인을 향한 냉소가 쉽게 드러난다. 머릿속의 생각은 차고 넘치는데 문장으로 토해내질 못한다. 머릿속은 팽팽하게 당겨진 끈의 양끝을 잡고 있는 기분이다. 어느 한쪽이 놓지 않으면 언제 끊어질지 몰라 숨을 참게 되는 그런 기분. 꼭꼭 숨겨 또다시 오만한 평정을 덧씌운다. 이건 그저 적당한 거리에서 생긴 일이 아니다. 너와 나의 거리가 적당한 평행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너무 기울었기 때문에 빚어졌다. 솔직하게 인정해버리거나 내 것이 아니라고 아예 포기하면 쉬웠을 텐데.


적당한 것은 이렇게나 어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