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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Nov 18. 2024

엄마의 모습

이제야 내가 조금이나마 안다

"엄마, 딸기를 한 박스 샀는데 어떻게 보관해?"

"씻어서 글라스락 같은 곳에 넣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꺼내먹어."

"꼭지는 씻기 전에 따야 돼?"

"씻은 후에 따, 꼭지 따고 씻으면 수용성 비타민이 다 씻겨나가는 거야."


스피커 폰으로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 좁디좁은 싱크대에서 딸기를 씻고, 꼭지를 따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딸기를 너무 쉽게 먹어왔구나.'


결혼 후 간단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복잡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개는 것 하나에 이렇게나 손이 많이 가는지 몰랐다. 집에서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꽤나 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하지 않았으면 집안일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는 것을 아마 몰랐을 것이다. 열심히 해도 제자리걸음인데 안 하면 바로 티가 나는 일. 집안 살림의 무게를 알아가는 중이다.


내가 사는 집에는 엄마가 없다. 딸기를 씻어주고 꼭지를 따주는, 그리고 과일 좀 챙겨 먹으라고 잔뜩 깎아서 내 입에 밀어 넣는 우리 엄마가 집에 없다. 그래서 요즘 나는 과일이 낯설다. 어제 먹은 사과도 그랬다.


결혼 후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 마신 생수통이 라면 물을 재는 계량컵으로, 다 먹은 요거트 통에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넣으면 음식물 쓰레기통 완성이다. 도무지 버릴 생각을 안 하던 우리 엄마 모습을, 내가 그렇게나 나무랐던 우리 엄마 모습을 내가 닮아가고 있다. 한 푼 더 아껴 딸에게 사주려던 엄마 마음을 이제야 조금이나마 안다. 보잘것없는 사물 하나에서도 둘 이상의 쓰임새를 찾던 우리 엄마 모습을 딸기 하나에서 발견한다.


우리 엄마는 허리도 아프고, 혈압도 높다. 설거지를 하는 나도 이렇게나 허리가 아프고 목이 아픈데, 일하면서 집안일까지 하던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


철 없이 묵묵히 앉아 편한 자세로 입만 벌려 받아먹던 내가 말 그대로 철이 없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귀한 것은 없어봐야 귀한 것인 줄 안다던 말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딸기 하나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엄마한테 가면 잘 익은 딸기 한 팩을 사서 정성스레 씻고, 꼭지를 따서 엄마 입에 넣어줘야겠다.


이제야 내가 조금이나마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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