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분만은 2박 3일 입원 후 조리원으로 넘어간다. 나의 경우에는 병원과 조리원이 한 건물에 있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아이도 산모도 출산 후 보름 가까이 바깥바람을 쐬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조리원 투어도 별도로 하지 않고 그냥 예약했던 조리원이다.
흔히 조리원을 천국이라고 표현한다.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조리원에 있을 때이니 이때 최대한 쉬어야 한다고 많은 육아 선배가 내게 조언했다. 단유를 한 엄마라면 조리원이 천국일 수 있겠으나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에게 조리원은 정말 천국인지 의문이 든다.
수유콜은 새벽에 받지 않았지만, 2~3시간 간격으로 유축을 해야 하므로 새벽에도 알람을 맞춰 계속 일어나야 한다. 두 눈을 채 뜨지도 못한 채 비몽사몽으로 각각 15분씩 30분 유축을 하고 신생아실 냉장고에 넣어놔야 한다. 새벽에 두세 번 유축을 하고 나면 아침이 밝아오고, 그때부터는 2~3시간 간격으로 울리는 수유콜을 받아 신생아실로 향한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트림까지 시키고 나면 1시간이 훌쩍 지나있고, 모유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모유 수유 직후 유축을 해야 하므로 내 방으로 올라와서 또 30분간 유축을 한다.
수유콜을 한번 받으면 유축까지 1시간 30분~2시간이 흘러버리는 상황. 조금 쉬려고 하면 1시간 뒤에 다시 수유콜이 온다. 사이사이 산모의 회복을 위한 요가와 마사지 등을 하고 나면 정작 나를 위해 쉬는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잠을 많이 자야 붓기도 빠지고, 회복이 빠르다는데 조리원에서는 잠을 잘 틈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조리원을 젖리원이라고 표현하는 글을 봤는데, 진짜였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조리원에서 찬물로 샤워하는 상황까지 있었다. 조리원 입소한 지 이틀 차, 출산 후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출산하면서 흘린 땀과 피범벅이었던 아랫도리를 씻지 못했던 터라 조리원에 입소 후 씻고 싶었으나 감염의 문제 때문에 하루만 더 있다가 씻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찝찝함을 참고 조리원 입소 이틀 차에 샤워기 물을 틀었다.
수도꼭지를 뜨거운 쪽으로 돌려도 뜨겁지 않은 물이 나오길래 '사용하다 보면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머리를 먼저 감았다. 머리를 다 감아도 따뜻해지지 않는 물, 샤워를 중단하기에는 이미 젖어버린 머리와 몸이었기에 재빠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후다닥 몸을 씻었다. 몸을 씻고 나오니 당연하게도 한기가 몰려왔고, 조리원 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일요일이라 받지 않았다.
3교대로 일하고 있던 병동에 전화를 걸어 일요일에는 원래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거냐며 물었다. 간호사는 그렇지 않은데 혹시 찬물로 씻은 거냐며 헐레벌떡 내 방으로 달려왔고, 축축하게 젖은 내 머리카락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찬물로 씻은 내 모습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간호사실에서 쓰던 히터와 물주머니를 갖다 줬고, 남편은 내 얘길 듣고 놀라서 핫팩을 잔뜩 가져온 뒤 간호사에게 연신 화를 냈다.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미친 호르몬 때문인지 갑자기 서러움에 눈물이 폭발했다.
'혹시 산후풍이 오는 건 아닐까.'
'왜 내가 출산하고 찬물로 샤워해야 하지.'
'그냥 하루 더 참고 씻을 걸 그랬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미 나는 찬물로 샤워를 했기에 돌이킬 수 없다. 이불 속에 들어가 오들오들 떨며 추위가 가시기를 바라며 산후풍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산모 찬물 샤워'는 조리원에서 빅이슈였고, 조리원 실장은 연신 미안하다며 조리원에서 받는 고주파 열 관리와 건식 스파를 서비스로 추가해 준 뒤 방을 바꿔줬다.
찬물 샤워 이슈 때문인지 조리원 담당자들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나의 안부를 물어봐줬고, 그런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싫진 않았다. 수유콜과 유축으로 2주 간 하루도 잠을 편히 자지 못하고, 찬물로 샤워해서 몸까지 오들오들 떨었던 조리원 라이프. 집에서의 현실 육아는 더 힘들기 때문에 이런 조리원 생활도 천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 조리원은 천국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