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에서 엄마의 가슴은 공공재였다. 수유실에서는 목욕탕처럼 모두가 젖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조리원 실장은 수시로 내 가슴을 만지며 가슴 울혈 등으로 인한 젖몸살은 없는지 확인했다. 나 역시 당연하게 가슴을 드러냈고, 만져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 출산 후 나의 가슴은 아기의 밥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모유 수유는 아기와 엄마의 합이 굉장히 중요하다. 처음에 잘 빨지 못하던 아기도 조금씩 커가면서 빠는 힘이 생기며 빠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에 맞춰 엄마의 양도 늘어난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새벽 유축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보충 수유를 분유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의 모유량도 많이 늘어나 있었다. (알고 보니 내 가슴은 모유 수유하기에 최적화된 가슴이었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양도 많은 가슴이었다.)
모유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아기가 먹을 수 있는 양도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늘어난 양만큼 아기가 먹어주지 못하면 탈이 난다. 차오른 만큼 비워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탈이 나는 것이다. 그것이 젖몸살이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1차 젖몸살이 왔다. 왜 1차냐고? 양이 많아 집에서도 수시로 젖몸살이 왔으니, 조리원에서 온 젖몸살은 1차 젖몸살이다. 가슴이 무거워지고, 돌로 된 불덩이처럼 딱딱하고 뜨거워졌다. 젖몸살이 있을 때는 가슴을 풀어줘야 아프지 않은데, 풀어준다는 건 곧 수유를 의미했다. 젖꼭지가 쓰라렸지만 이를 악물고 다리를 배배 꼬며 젖을 물렸다.
젖이 차는 만큼 아기가 먹어주지 못해 지속적인 젖몸살이 오자 남편은 기저부 마사지를 유튜브로 배웠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가슴을 남편이 풀어주는데 사방팔방 튀는 사출에 현타가 오면서도 너무 아파 엉엉 울며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던 남편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게 됐다. 1시간이 넘도록 남편이 가슴을 풀어줬고, 가슴에 무언가가 닿는 것이 너무 아파서 아이스팩을 올려둔 채 진이 다 빠져 그대로 널브러졌다.
'젖몸살이 오면 젖양이 훅 줄어든다는데, 양이 줄어들어 아기가 배고프면 어떡하지.'
'젖몸살이 오면 모유에서 쓴맛이 난다던데 아기가 써서 못 먹으면 어떡하지.'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상황에서도 아기에게 밥을 주지 못할까 봐 걱정했지만, 걱정과 무색하게 양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후에도 아기는 물다 잠들기를 반복했고, 아기가 먹는 속도보다 젖이 차오르는 속도가 빨랐다. 이 때문에 젖몸살은 여러 차례 계속됐다. 남편이 2시간 가까이 풀어줘도 풀리지 않는 딱딱한 가슴이 되자 입에서 비명이 절로 나왔지만, 비명을 지르면 잠든 아기가 깰까 봐 비명과 함께 울음을 삼키며 통증을 참아냈다.
새벽 수유할 때도 딱딱해진 가슴을 아기에게 물리면서 비명을 삼켰다. 아기가 빨 때 온몸이 비틀어지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아기의 입에서 젖이 빠질까 봐 온몸을 비틀 수도 없다. 한쪽 손은 가슴을 붙잡고, 한쪽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으며 고통스러운 수유를 반복했다. 마사지를 백번 받는 것보다 아기가 10분 빨아주는 것이 가장 시원하다고 하지만, 얼마나 뭉쳐있는지 아기가 빨아도 풀리지 않았다.
가슴 마사지를 전문적으로 하는 관리사를 찾아가 1시간에 10만 원을 지불하고 마사지를 받았다. 내게 쓰는 돈은 인색하던 나인데, 그런 내가 1시간에 10만 원을 지불했다는 것은 대단히 아팠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을 지불한 전문 마사지였으니 마사지 직후에는 당연히 가슴이 풀려서 시원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 아기가 먹어주지 않으면 금세 또 뭉치고 마는 가슴이었다.
흔히 젖몸살을 출산보다 더한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처음 젖몸살을 겪기 전에는 ‘얼마나 아프길래 그런 표현을 할까.’ 생각했지만 겪어보니 끝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참아냈던 진통과 다르게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과 한번 뭉치면 잘 풀리지 않는 젖몸살이 왜 출산보다 더한 고통이라고 표현하는지 알게 됐다. 출산 하면서도 울지 않았지만, 젖몸살이 올 때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엉엉 울던 나였다.
젖몸살이 와도 수유는 멈출 수 없다. 아기 밥을 먹여야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