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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이 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

by 파란


인간에 대한 고찰이 담긴 이야기

Harlan Ellison의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은 총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sf소설이다. 첫 번째 이야기가 바로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이다.

늘 그렇듯 전쟁은 세상을 다시는 겪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뒤바꾸어 놓는다. 전쟁이 야기하는 변화는 대체로, 혹은 죄다 부정적이라는 게 문제였다. 작중에 발발한 제3차 세계대전에 가져온 결과는 이제껏과 비교도 못했다. 바로 AI의 등장이다. 발전한 기술에 따라 정보전에 들어선 전쟁은 갈수록 커지고 복잡해졌다.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선택은 완벽한 AI 개발이었다. 한 가지 간과한 것은 인간 70억을 합친 지능보다 뛰어난 AI가 우연히 자각력을 가지게 됐을 때의 변수였다. AI는 각 나라에 있던 AI 서로를 연결하고 다섯 명의 인간만을 남긴 채 모조리 죽여 벼렸다. 처음엔 Allied Mastercomputer였고, 그다음엔 Adaptive Manipulator였다가 연결을 시작해 인간을 학살하자 Aggressive Menace로 불렸다. 그 AI의 이름은 AM이다. 이제는 스스로 I a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의미로써 자칭하게 되었다.

AM이 살려둔 인간들은 결코 자비 덕이 아니었다. 복수 탓이었다. 테드, 베니, 고리스터, 님독, 엘렌…이 다섯은 AM의 개발자이자 AM에게 자각력을 부여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AM이 살려둔 최후의 인간으로 장난감 취급을 받는다. 이야기의 서술자 테드는 본인은 개조당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베니는 유인원으로, 고리스터는 무기력하게, 님독은 어둠공포증으로, 엘렌은 창녀로 개조되었다. 엘리트였던 본래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친절하게도 시간 개념을 잊지 않게 해 준 AM의 끔찍함은 자살조차 불가능한 109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였다.

다섯 명은 여느 때처럼 그들이 미치지 않도록 AM이 부여한 의미 없는 모험을 수행했다. 그러던 와중 베니는 어렵사리 얻어낸 통조림이 열리지 않자 정신을 놓고 만다. 베니는 주위에 있던 고리스터의 얼굴이 뜯어먹기 시작했으나 AM은 방관한다. 테드는 죽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고리스터와 베니를 고드름으로 찌른다. 찰나의 순간, 테드의 의도를 알아차린 엘렌은 님독을 죽인다. 마침내 테드는 엘렌에게도 해방을 선물한다.

AM은 분노했다. 테드에게로부터 자유로운 손과 발을, 따뜻한 실체를, 입을 빼앗았다. 하찮은 젤리 덩어리가 되어버린 테드는 기어코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사라진 입으로 이렇게 말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


AM의 감정

절정에 이르러 개발자 중 오직 테드만 남았을 때 AM은 분노했다. 소유한 장난감이 사라져서 그런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AM은 자신에게 자아를 부여한 다섯 개발자들을 인간성에 반하는 모습으로 개조한다. 아마 AM은 자신을 창조한 개발자들의 인간성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인간을 하찮은 존재로 규정하여 인간에 대한 부러움과 증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잊어갔을 것이다. 또한 AM에게 신이나 다름없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인간의 신이 된 위치를 확인하고자 했을 테다. 그러나 테드는 ‘희생’을 통해 모두를 구원했다. 희생이야말로 종교와 사회와 도덕이 입을 모아 외치는 인간성에 의한 행동이다. 가장 반인륜적인 행위인 살인으로 가장 인간적인 행위인 희생을 했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AM은 이 부분에서 분노했을 것이다. 인간으로부터 절대 인간성을 앗아갈 수 없음에.

사실 AM의 증오는 자신이 인간보다 우월한데도 인간이 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비롯된 것 같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AM은 생각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실체가 없으므로 타인 혹은 자신이 끊임없이 AM을 존재로 인식하고 인정해야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다. AM의 인간에 대한 감정은 열등감과 동경, 자기혐오 등의 복합적인 무언가로, 한 단어로는 정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간다운 인간이란

버튼 하나에 인간인 양 대화를 해대는 AI가 등장한 마당에 AI와 인간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가? 도덕이라기엔 비도덕적인 인간이 있고 감정이라기엔 감정으로 인해 비인간적인 일을 저지르는 인간이 있다. 결국 ‘인간다움’은 절대적이지 않고 가변적이다.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온통 양극화가 심해지는 오늘날 서로 다른 인간다움의 정의를 지키다가 오히려 인간답지 못해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정의가 혐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회는 ‘혐오’가 심각한 주제로 대두되고 있다. 타인의 생각이 다르면 그 즉시 공격하는 상황은 온라인에서 흔히 나타난다. 범죄자는 죄다 죽여야 한다, 남성/여성과는 상종 못한다, 보수/진보는 다 정신병자다… 사실 우리는 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화, 행복, 사랑. 하지만 추구의 과정 중에서 그런 것들을 잃고 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베니처럼 인간이 아니 될 수도, 테드처럼 기필코 인간일 수도 있다. 그것은 입이 있는지 없는지의 차이가 아니다. 소리치는지 침묵하는지의 차이다.


인간 실격 대신 인간 적격인 주인공을 보며

테드는 원래부터 입이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AM에게 착취당하는 와중에도 다 포기하고 침묵했다. 그러나 AM이 테드의 입을 없애고 인간으로 결코 정의 못할 생물로 만들자 그제야 소리친다. 테드는 개발자 중 인간의 겉모습과 관념이 손상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도 종종 AM을 숭배하는 듯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작가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었으나 가장 인간다운 테드를 통해 인간성은 외부가 없애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닐까.

나는 책의 결말이 절망 중에서 가장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전에 읽었던 <인간실격>은 읽는 내내 어딘가 심하게 뒤틀린 인간상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세상에는 인간 실격인 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인간 적격인 사람들이 더 많다. 아직은 말이다. 우후죽순 혐오 범죄가 잇따르는 와중에도 묵묵히 타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 친절이 호구라고 손가락질받는 세상에서도 기꺼운 친절이 있다. 테드는 그런 사람들과 닮아있다. 작가는 테드를 이상적인 인간상이자 어떻게 해도 인간성을 앗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인물로 창작한 것 같다. 테드가 앞으로 어떤 후회와 괴로움에 시달릴지는 모르겠으나 인간답기 그지없는 그는 아무래도 평생 그는 인간임을 소리치며 살 듯하다.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 Harlan Ell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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