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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우연 Jul 03. 2022

탑건:매버릭 리뷰

It's time to let go, 나도 매버릭이 될 수 있길

나만의 루틴 중 하나는, 열심히 하던 걸 끝내면 혼자 영화관 가는거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영화관을 혼자가면 좋은 점은 함께 보러간 누군가가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라는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영화보다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자유롭게 볼 수 있는것도 좋고, 사실 제일 좋은 이유는 그냥 영화관이라는 "장소"가 내게 주는 안정감 같은걸 좋아해서다.

말도 안되는 혼자만의 최면이지만, 문하나로 컴컴한 영화관에 들어서면 지금 세상이 낮인지 밤인지 어떻게 흘러가는지 잠시 뭐가 그렇게 바쁜지 모를 군중들 속에서 벗어나 시간을 멈춰두고 나만의 어두컴컴한 보호막 속에 잠깐 쉬러 가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하나, 취준생시절에 원서 합격 여부가 나오는 날 저녁에 혼자 생각없이 웃긴거 보고싶어서 브릿지존스의 일기를 보러 영화관에 갔던거 같고, 최종 면접 단계들에 가서도 받은 면접비로는 라라랜드 보다가 영화관에 가서 쿨쿨잤다.

회사원이 되고나서는 이제는 뭐때문인지 잘 기억도 안나지만 뭔가가 매우 화가나서 반차를 쓰고 나서 영화관가서 위플래시 보다 잠든 기억도 있고, 딱히 약속 없는 금요일 퇴근길에 충동적으로 갑자기 예매해서 너의 결혼식을 보고 펑펑 운 적도 있다. 우연의 연속인건지 아니면 혼자가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건지 몰라도, 맨날 가서 영화보다가 혼자만의 평화로움과 안정감에 잠도 잘들곤 하지만 그때 봤던 영화들은 다 내게 오래 잊지 못할 영화였던 경우가 많았던 거 같다.

사내벤처 2차 경영진 보고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오늘 밤은 뭔가 그동안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홀로 고되고 힘들었던 나에게 선물을 좀 주고싶은데 오늘만큼은 사람을 만나고 싶진 않았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려고 애썼으니까 그리고 사람들 때문에 골치를 이만큼 썩었는데 또 누군가를 만나서 무언갈 하고싶진 않은 그런날이였다.

탑건:매버릭(5/5) : 오랜만에 별 다섯개, 내 기준엔 정말 명작

영화를 논하기전에 톰크루즈에 대한 코멘트를 뺄 순없다. 이 영화는 톰크루즈로 시작해서 톰크루즈로 끝난다. 나에게 헐리웃 스타를 한명만 꼽으라 묻는다면 요새 젊은 잘생긴 배우들도 워낙 많지만 난 그냥 톰크루즈지 않을까 싶다. 의도치 않게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내 취향은 절대 아니지만 아빠 때문인가 그의 영화는 많이 봤다. 어릴적에 내겐 제일 잘생긴 미국아저씨였던 그가, 내 나이또래였던 딸을 구하던 영화 우주전쟁에서 멋있는 아빠였던 기억도 있고, 통유리창을 뛰어댕기던 미션임파서블의 액션맨 기억도 아직 선명한데,

어느덧 톰크루즈는 61세가 되었고, 그치만 멋있게 늙는건 이런거구나를 보여줬다. 그때와는 또 다른 멋이 났다. 게다가 혼자 반차쓰고 졸면서 봤던 영화 위플래시 리뷰에서 완전 너드라고 언급했던 마일스 텔러가 갑자기 극강의 피지컬에 훈남이 되어 나타난다. 이 포인트에서 다시한번 내 세월 역시도 지났음을 체감한다..(그들이 멋있어질동안 난 늙은거 같지만..)

영화는 그 무엇보다도 속도감과 몰입감 있게 전개된다. 내겐 두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였다. 그렇다고 무언가 막 신선하거나 새로운 전개는 전혀 아니다. 전형적인 클래식 그 자체, 한 인물의 영웅 서사고 무슨 고난이나 위기가 닥쳐도 죽지않고 무적처럼 계속 살아나는 그런 이야기, 근데 다 알고 봐도 감동이 있다.

매버릭은 톰크루즈의 콜네임이다. 난 탑건을 보진 않았지만 탑건에서는 그의 훈련생 시절의 에피소드였다면 매버릭에서는 예전의 자기처럼 최정예 파일럿들을 교육시키는 지도자가 되어, 굉장히 중요한 어떤 작전의 팀을 선발하고 교육하기 위해 탑건에 호출된다. 그는 원치 않지만, 아이스맨이라는 자신의 옛동료이자 현재는 참모 총장(?)정도 되는 상관의 명령 때문에 강제로 돌아가게 된다.

전편과 매버릭편의 주된 에피소드 소재의 변화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어찌보면 너무나도 우리 모두가 겪는 과정이다. 24살에 말도 안되게 잘생겼는데 액션까지 되는 떠오르는 스타 톰크루즈가 아직도 건재하지만, 젊은날의 전성기때와는 분명히 다르다. 지금도 현역이긴 하지만,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레전드로 불리우며 아마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주는 게 존재의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연예대상과 공로상은 다르듯이, 영화 속 매버릭에게도 본인은 부정하고 싶어하지만 이제 조직은 그런 역할을 부여해버린다.

꼭 배우뿐만 아니라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심지어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조직생활을 하는 우리네 인생에서도 매버릭이 겪는 이런 과정들은 영락없이 찾아온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인이 원하든 원치않든 역할을 부여받고 전과는 다른 나의 위상의 변화 역시 피할 수 없다. 언제까지 내가 국가대표 플레이어 일 수 없고, 감독이 되어야만 경기장에 설 수 있을 때가 찾아온다. 더 이상 실무자가 아닌 팀장이나 관리자 직책이 되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매버릭은 탑건 훈련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파일럿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그 외 해군에서의 권력이나 책임에는 관심과 욕심 없이, 그저 만년대령으로 계속 비행하길 원하고 갈망한다. 그저 진정으로 비행을 사랑하고 파일럿이라는 직업인으로의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이런 캐릭터들은 조직생활에서 선호받지 못하듯이 영화속에서도 그렇다. 그렇지만 신기하게 나는 영화속에서도 현실속에서도 이런 캐릭터들에게 마음을 뺏기고 만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인 구스의 죽음이 있다. 1편의 구스를 오마주해서 그의 아들인 루스터의 피아노 연주장면은 전편을 안보고 봐도 너무 멋있었다.

"It's time to let go"

그와는 다르게 최고 명예의 자리에 오른 아이스맨이 매버릭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타이핑한 문장이다. 이제는 잊을 시간이라는 말을 남기고 아이스맨은 결국 죽는다. 영화 내내 매버릭은 딱 그의 장례식에서만 눈물을 보인다. 그들의 기나긴 멋진 우정을 그려내기에 충분했다. 아이스맨의 마지막 한마디로 매버릭도 마음을 고쳐먹고 지난날의 구스의 죽음은 잠시 뒤로하고 그의 아들인 루스터와 작전을 말도 안되게 멋지게 성공시키며 영화는 끝난다.

It's time to let go, 친구 이제는 잊을 시간이야, 이 문장이 화면에 적히는 순간에 나도 너무 뭉클했다. 나에게도 이제는 잊고 묻고 지나 가야하는 무언가가 있었나, 그리고 매버릭처럼 나도 이제서야 비로소 괜찮아 졌다고 생각될 시점인건가, 그렇담 탑건:메버릭 에게는 아낌없이 별을 다섯개나 주도록 하겠다.

정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하게 되는 서른이다. 아, 서른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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