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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Jul 03. 2022

헤어질 결심_박찬욱 리뷰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친한 친구들하고 새벽까지 술을 먹는다면,  취기가 오른다 싶으면  나오는 스테디셀러 주제  나 "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 (나랑  친구들만 그런가, 그럼 우리가 낭만파 인걸로)


왜 이 주제는 항상 술 먹고 센치해지는 밤이면 언제곤 자주 튀어나올까 생각해보면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역이라 그런 건가 싶다. 인간관계에서 종류는 다르겠지만서도 사랑이 없다면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저마다의 개똥철학으로 겪어왔던 모든 경험을 총동원해서 취기를 빌려 잠깐 1분 한정 침묵이 흐르고 모두가 고뇌를 해본다. 그러게 사랑이 뭘까,


물론  먹고 하는, 그저 내일이면  기억도   실없는 헛소리  하나다. 그렇지만 이렇게 주변 사람들과 나름의 개똥철학에 근거한  먹고 막던지는 실없는 대화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술도 좋아하는  같다.  누가 물어봐도 한결같이 같은 대답을 했었던  같다.


온전히 무너질 수 있는 게 사랑이지 않을까

라고 대답하면 이미 술도 먹었겠다, 그럼 친구들은 아 또 그게 뭔 asshole 같은 소리냐고 공감은커녕 볼멘소리를 하거나 그게 뭐냐고 되물어 본다. 그럼 난 이해시키려기 보다는 '그니까 오늘 나 취해서 이상한 소리 하고 잠들어버리면, 나를 놓아버리고 온전히 무너지는 거니까 너희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라는 정말 말 같지도 않은 드립을 치며 다음 누군가에게로 대답의 턴을 넘기곤 했다.



헤어질 결심_박찬욱(4.5/5)


사실 박찬욱은 너무 어려운 사람이다. 그런데 그래서 대단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결론은? 호불호가 있다면 나는 51% 정도 극소한 차이로 호다. 나는 예술이고 뭐고 온전히 그냥 있는 그대로도 충분한 상업영화가 좋다. 그래서 별점도 4.5점밖에 주지 못하겠다. 5점을 주기엔 너무 어렵다. 근데 그래도 알고 싶고, 자꾸 생각나고 여운이 남고 자고 일어났는데도 머릿속에 잔상이 남게 하는 이걸 뭐라고 설명할 건지,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건, 내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것 역시도 또 다른 매력이라 생각해서 그래서 결론은 호다. (쓰고 나니 나도 내가 뭐라고 하는지 전혀 모르겠.. 네)


수사라는 프레임을 떼고 보면 그 과정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헤어질 결심은 해준(박해일)의 살인사건 수사로 시작된다. 탕웨이는 유력한 용의자로 그와 처음 마주한다. 살면서 한 번도 수사하는 과정이 마치 사랑하는 과정과 맥락이 비슷하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이 부분에서 박찬욱이 이래서 천재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서래(탕웨이)가 너무 예뻐서 해준이 그랬겠다마는, 수사라는 것도 결국은 계속 누군가를 지켜보고 궁금해해야 하고, 무슨 사연이나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라며 온전히 그 사람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고 사람을 탐구해야 하며, 심지어는 잠복수사를 이유로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리다 지켜보다 잠들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해준이 무너져가는 동시에 사랑에 빠져가는 과정에서 박해일의 귀여운 웃음 포인트들이 많은 것도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생각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불륜 로맨스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해준(박해일)은 최연소 경감에 오른 나름 잘 나가는 경찰이다. 살인사건 미제사건에 살아있음을 느끼며 벽 한 면을 미제사건의 사진으로 도배해서 잠 안 오는 밤에 매일 생각해보는 뼛속까지 워커홀릭에 본투비 형사인 그의 인생에 서래(탕웨이)라는 변수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는 온전히 무너진다. 내가 여자라 그런지, 무너지는 속수무책으로 그녀와 이미 사랑에 빠져버린 그를 보며,, 좀 읭?스럽기도 해서 이입이 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움직여 지금 리뷰를 쓰게까지 한 이 영화의 진짜 감동을 느낀 건 오히려 서래(탕웨이)의 사랑이 오히려 너무 비현실적으로 애틋하지만 조금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극 중에서도 중국인으로 나오는데, 해준(박해일)은 그녀를 위해 중국어 공부도 하고(초급 중국어 책을 보고 꽤나 귀엽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쉬운 한국어로 그녀와 소통하려 하며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사전적 정의를 덧붙여 설명해주곤 한다.


이런 외국인이라는 설정을 살려서 극 중반부에, 해준은 서래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가 범인임을 깨닫지만 자신이 그녀에게 빠져서 자신의 전부였던 형사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직감을 놓아버리고 범인을 놓쳐버린 사실에 너 때문에 내가 붕괴되었다고 표현한다. 그러니 증거가 될, 그 핸드폰을 깊은 바닷속에 아무도 찾지 못하게 묻어달라고 하고 그녀를 떠난다. 서래는 이제야 비로소 해준을 사랑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떠난다. 그리곤 서래는 해준이 말한 붕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싶어 검색해본다.


붕괴 : 무너지고 깨어짐

(사실 한국인 30년 차인 나조차도 붕괴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음)


둘은 1여 년의 시간이 흘러 이포라는 바닷가 마을 어느 시장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한다. 사실 이때 나는 해준과 서래 두 부부가 마주하고 아련해하며 어련히 우연한 재회를 엔딩으로 끝이 날 줄 알았다. 그랬다면 아마 나는 이영화에 별점을 두 개 반 정도 줬을 거 같다. 그래서 깜깜한 영화관에서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 시계를 살짝 봤는데 러닝타임이 아직도 40분이나 남아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움직인 시작도 후반부 이포 마을에서였다.


서래는 다시 남편 살해사건을 겪고 용의자 신분으로 다시 한번 해준을 만난다. 당신같이 믿을만한 한국 사람과 말이라도 하려면 이런 시간밖에 없다던 그녀의 대사처럼 정말 해준을 다시 보고 싶어서 저지른 건지, 극 중 대사처럼 '담배처럼 살인도 처음이 어렵지 그 뒤론 쉽다'던 해준의 말처럼 정말 살인이었는진 잘 모르겠다만 둘은 다시 수사관계로 만난다. 그리곤 어느 설산에서 단둘이 사적인 공간에서 마주한 서래는 해준에게


"붕괴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요" 라며 증거였던 핸드폰을 건넨다. 해준이 무너지고 깨어지지 않기를, 자기 자신보다 해준을 더 위하는 그 마음, 이 대목에서 내 마음도 같이 무너졌다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진 순간이 있다면 나에게는 여기였다..) 후반부에 나오지만 서래는 그 마지막 대화를 녹음해두고 그를 그리워하며 몇 년을 반복해서 듣는다. 그 음성 녹음 파일명은 무너지고 깨어짐이었다. 서툰 외국어지만 곱씹으며 그를 이해하려고 몇 번이고 들었겠지 싶어서 한번 더 미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 음성 녹음파일 그 어디에도 사랑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녀에게 해준이 고백한 "너 때문에 붕괴했다"는 말이 너 때문에 무너지고 깨어졌다는 게 그녀에게는 곧 '사랑한다'였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약간 마음으로 울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을 박찬욱이 공감해줬달까, 게임 오버다. 나도 박해일처럼 이제 이 영화를 논하기엔 안개가 자욱하고 눈이 뻑뻑해 인공눈물을 넣어도 판단 불가능이다.


나같이 눈치코치 영화에 대한 지식이나 뭣도 없이 보는 영화 문외한 관점에서는 한 번에 보이는 것이 얼마 없지만, 사실 이 영화 속에 감독이 숨겨 둔 장면 장면마다 이건 뭐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텐데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영화가 막 끝나고도, 자기 전에도 영화 해석을 많이도 검색해봤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께 추천하기엔 지루해하실 수도 있겠다 싶고 모두에게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살면서 언제고, 사랑이 무엇일까 물음표가 그려질 때 다시 보고 싶은 그런 영화였다.


+ 내가 리뷰했던 왕가위, 데미언셔젤, 피트 닥터처럼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이 나온다면 이제는 무조건 영화관에 달려가서 보겠노라 다짐하게 해 준 영화가 있다면 헤어진 결심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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