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 Feb 05. 2023

데이미언 셔젤의 바빌론

그의 영화엔 언제나 꿈꾸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데이미언 셔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매번 꿈꾸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서,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저 동화 속 여느 평범한 이야기들처럼 ‘그렇게 그 둘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나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를 구했습니다’가 아닌 항상 꿈을 좇는 것의 현실적인 이면을 보여주기에 그의 영화를 사랑해 마지않는다.


라라랜드에선 사랑이, 위플래시에서는 광기 어린 혹독함을 성공의 이면으로 그려낸다.  항상 보고 나오면 이게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모를 오로지 관객의 주관적인 해석하기 나름이라 그의 영화가 개봉하면 영화관에 가서 보곤 한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코끼리를 옮기는 멕시코 출신 대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코끼리의 용도는 놀랍게도 초기 영화산업의 환락의 파티용이었다. 주인공인 매니(마누엘)와 사람들이 코끼리 똥에 공격당하는 장면은 조금 메스꺼울 정도였다. 이 영화는 계속 이렇게 나이브하게 모든 것들을 자극적으로 그리는 영화다. 그렇게 매니와 넬리는 미치도록 자극적인 환락의 세계에서 최하층민으로 코끼리 운반인과 배우를 사칭한 배우지망생(?)으로 처음 만난다. 나중에 알았지만 매니는 그날부터 아마 넬리를 사랑했지 않나 싶다.


현대사에서 환락으로 일컫어지는 모든 행위를 화려하게 버무려 낸다. 바빌론에서는 '영화'라는 세계에 대해 처절하고도 날것 그대로의 모습, 이를 자극적으로 초기 영화산업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30여분 그런 파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세상이 있다고?  싶다. 그렇지만 황홀한 음악이 불쾌함을 조금 상쇄시켜 준다. 그리고 마약을 하다 죽어버린 여배우를 대신하여 약에 취해 춤추던 넬리가 우연하게 대타로 선점된다. 그렇게 영화 세계에 발을 디딘다


매니 역시 그 시대에 가장 잘 나가는 배우이자 제작자인 브래드피트 눈에 매니가 들어오게 되고, 매니는 브래드피트의 조수로 영화제작 현장에 처음으로 들어가 온갖 잡다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심부름꾼이 된다. 그렇게 최하층민인 넬리와 매니는 각각 다른 위치지만 비슷한 시기에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러면서 동경하던 영화라는 세계에 대한 큰 꿈을 점차 이뤄나간다. 그 과정에서 초기 영화 노동현장의 파업이나 실제로 열악한 환경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도 여실히 보여준다. 화려함의 대명사인 할리우드도 초기에는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 그러면서도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지금의 영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빌론은 영화사의 큰 패러다임의 변화를 그린 이야기가 주 맥락을 이룬다. 사운드가 없던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 그리고 영화라는 것이 애초에 군중예술, 대중예술로 분류되어 폄하되던 시절도 그려낸다. 두 가지가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는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 스타가 탄생하기도 나락으로 가기도 하지만 누가 스타인지는 바뀔지언정 스타라는 개념은 영원하다는 메시지였다.


유성영화 시대가 도래하여지는 스타인 브래드피트와 그는 이제 한물갔다고 평가한 영화평론가의 대사로 보여준다. “당신의 시대는 갔지만 당신이 빚은 영화는 영원하며 이후에도 수많은 당신과 나, 그리고 이 대화가 반복되겠지” 이 대사처럼 내가 주인공일 수 있는 시대는 유한하다. 그러나 내가 있는 힘껏 걸어온 행적 속에서의 나는 영원히 기억됨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이다. 넬리는 마약과 도박에 빠져 타락해 버리지만 그런 그녀를 도약시켜주려고 하고 재기시켜주려고 하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의 시대가 끝나버림을 안다. 모든 걸 말해버리고 처음으로 넬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매니를 보며 눈물이 날 뻔도 했고, 라라랜드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넬리는 싸늘한 부검이 되었다는 기사로 인생을 마감한다. 내게는 이런 매니의 넬리에 대한 사랑이 데이미언 셔젤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듯 보였다. 네가 스타든 아니든 더럽고 추악하든 약에 취했든 난 너를 사랑한다. 영화라는 것이 그리 아름답고 멋진 것만은 아니지만 나는 영화를 사랑한 다처럼 들렸다.


그리고 매니는 희대의 영화제작사의 임원인 시절을 끝내고 고국인 멕시코로 돌아갔고 20년이 흐른 장면으로 연결된다. 그는 다시 꿈이었던 LA에 오게 되고 그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들어간 영화관에서 그는 싱잉더레인을 보다가 라라랜드 후반부에 봤던 연출처럼 그만의 꿈속에서 나같이 씨네필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터미네이터 2 빼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 영화들이 줄지어 오버랩되고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영화가 끝난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매니의 연기는 압도적이었다.


이동진 평론가의 리뷰처럼 영화라는 것이 그리 고귀하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는 존재 자체를 데이미언 셔젤이 얼마나 처절히 도 사랑하며 꿈꾸는지 느껴져서, 나는 이 나름대로 또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에게 이러한 적나라함이 불쾌하지 않다고 말할 순 없을 거 같다. 러닝타임도 3시간이 넘어가니 그가 영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대중성이라는 요소는 잠시 잊은 듯 하나, 원래 진짜 사랑하는 것 앞에선 속수무책이니, 그 마저도 이해할 수 있었던 그런 영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을 꾸는 사람과 꿈을 실현하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