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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Sep 10. 2023

1차 Gate 평가

내가 처음으로 하는 회사에서의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보니 사내벤처로 쓴 마지막 글이 플랫폼 오픈 하루 전이였다. 그러니까 무려 사내벤처 글을 안 쓴 지 4개월이나 지났다. 작년 9월부터는 토요일에도 학교 다닌다는 핑계로, 잃어버린 토요일에 대한 보상으로 일요일을 활용해 최대한 약속을 가거나 쉬면서 보낸 날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주기적으로 쓰지 못했다.


벌써 사내벤처 사업화 승인을 받고도 반년이 지났다. 반년 간 플랫폼을 구축하고 오픈하고 수많은 일을 해냈다. 진짜 원래 팀 소속이었다면 여기까지 했어도 벌써 일 년 kpi다 채웠을 거 같지만, 사내벤처 소속인 나는 이제야 시작이었다. 이걸 내가 운영도 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해야 하며, 그리고 우리에게 투자해 준 투자자들(=경영진들)에게 6개월간의 성과도 공유해야 했다.


종강하고 근속휴가로 주어지는 2주를 유럽을 다녀오는 바람에, 원래 내가 맡아야 하는 경영진 커미티 진행을 동료에게 넘겼다. 또 나름 책임감 빼면 시체인 사람이라 굉장히 미안했지만 만약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난 아마 번아웃이 왔을 거 같다. 그래서 내심 다음 어떤 중대사가 있을 땐, 기꺼이 내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있었다.


회사에서는 모든 비용 요소를 1차 게이트 평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으로 제어했다. 고용한 인턴 재계약도 그 이후, 예를 들어 본인인증 문자 서비스조차도 8월까지만 사용하게 설정해 뒀다. 연 초에 미리 정해뒀던 1차 게이트 원래 발표를 맡기로 했던 멤버 분의 자녀 출산 예정일이 1차 게이트 평가일과 공교롭게도 겹쳐버렸다. 대신해야 할 사람이 필요했다. 아 역시 하늘은 공평하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MBA 학기가 시작하면 또다시 바빠졌을 때 뭘 하는 거보다 방학인 8월에 에너지를 쏟아서 한번 어르신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해보는 것도 내 인생에 좋은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맨날 자료만 만들었지 내가 무대에 서진 않았으니까 나름 첫 번째 무대였다.


장표 만드는 건 이제 회사원이 되고 계속 해왔으니 수년간 해봤기도 하고 이제 좀 자신도 있었고 순조롭게 진행했다. 일단은 전략기획 담당 산하 팀장님들과 담당임원 분 앞에서 1차 리허설을 진행했다. 내 전략은 매부터 먼저 맞고 희망차고 아름다운 지표들을 보여주자였는데, 두괄식으로 전부 바꾸라고 해서 대규모 공사를 진행했다. 이제 자료 빠꾸는 내 사전에 없다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오만했다가 꿀밤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는 바뀐 장표들을 가지고 광복절에도, 혼자서는 주말에도 실제 발표를 할 회의실에 와서 남몰래 열심히 PT 리허설을 해봤다. 타고나게 무대체질이라 말할 때 긴장 않고  잘하는 그런 부류도 있겠다마는 나는 그런 편이 되지 못하므로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밤이고 낮이고 긴장이 되지 않을 만큼 몇 번씩 읊다 보니 당일에는 사실 하나도 떨리지도 않았다. 사람을 쫄리면 다 하게 돼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발표 날이 되었다. 다가와서는 이제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가 오늘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하나도 안 떨고 또랑또랑하게 여한이 없이 말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두괄식으로 말해 보자면 1차 게이트는 통과되었다. 덕분에 휴학한 인턴 시간 붕 뜨지 않게 재계약도 무사히 해줬다. 식구가 늘면 어깨가 무거워진다는데, 간접적으로나마 아주 조금 무슨 말인지 알 거 같기도 했다. (아 그런데 8월 만료였던 본인인증 서비스는 차마 만료됨을 잠시 잊고 있다가 회원가입이 잠깐 멈추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0^)


항상 나름 아름다운 이야기만 기록했지만 오늘은 1차 게이트 PT를 좋은 결과로 마친 기념으로, 그 이면도 적어보고자 한다. 플랫폼을 구축하는데 까지도 그 과정이 힘들어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 예산으로 서울 골목 어디 좋은 자리 잡아다가 돈까스 집 차렸어도 지금보다 나았겠다는 푸념까지 늘어놨었는데, 시작하니 더더욱이나 보통일이 아니었다. 세상에 그 많은 플랫폼 중에 우리를 알리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 과정 속에서 개인적인 사고의 전환이 정말 많았다. 맨날 내가 맡은 역할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같은 현상들이 다르게 보였다. 멋들어진 장표와 기획안 페이퍼와 실제로 구현하여 가동하는 일은 하늘과 땅 차이다. 소위 쪼들리는 일도 정말 많이 필요하다.


이전에는 재밌게 냈던 이벤트 서비스 기획이나 아이디어 하나조차도 그걸 과연 지금 실제로 행할 여력이 있는지 그걸 내가 온전하게 한 바퀴 오퍼레이션 할 수 있는지까지 생각하다 보니 아이디어 마저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모든 사이드에서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원래 스타트업은 열정과 품이 유일한 자원이며 이렇게 성장해야 한다. 이렇게 열정을 다해 하나하나 내 품을 들이고, 내가 품을 들인 만큼 시장의 반응이 오고 플랫폼이 성장하면 내 가치도 폭발적으로 상승할 수도 있게 된다.


내 회사니까, 그런데 사내벤처인 우리는 다르다. 이렇게 잘 되기 위한 내 노력과 품을 들여도 이 월급이고 저래도 저 월급이다. 물론 인사고과라는 보상이 있겠다마는 이미, 스타트업이 가져올 수 있는 보상과 비전과는 그 스케일이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엄청난 모순이 생겨 버린다. 내 회사라는 내가 들인 품과 열정과 노력만큼 보상받는, 시장의 원리를 기대하고 스타트업 정신으로 사업을 해도 될까 말까 한 세상이지만 사내벤처에겐 그럴만한 동력은 없는 그런 모순이 생긴다. 회사원 신분 으로써의 성과의 행복은 사업화 승인까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사내벤처를 잘 운영하기 위한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인 마련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체감한다. 그러나 제도나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뚜벅뚜벅 열심히 그다음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도 너무나도 잘 안다. 그저 아직도 갈 길은 멀디 멀었지만 주춤할 때가 더 많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조금씩 아주 조금씩 미약하게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어느덧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은 9월이고 개강을 했다. 수업시간에 무슨 일 하냐고 해서 사내벤처로 플랫폼 만드냐고 하면 누구든 잘되냐고 묻는다. 글쎄다. 잘된다는 건 어떤 걸까? 그걸 증명하는 게 연말 2차 게이트 아닐까, 사람들에게 잘되고 있다고 말하려면 이 플랫폼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요새 많은 번뇌와 고민의 연속이다.


늘 그랬듯 우리는 이 시간을 돌이켜 봤을 때도 아쉽지 않을 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이랑 일하고 있는 지금이 아마 내 회사원으로서의 영광의 시대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나마 고마운 마음을 전해본다! 조금만 힘내봐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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