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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기 Apr 30. 2024

나는 왜 도시락을 엎었던가

새벽부터 집안에 참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부모님은 연차휴가까지 쓰며 김밥말기에 열중이셨다. 갓 지은 흰 밥에 깨소금으로 밑간을 하고, 시금치며 당근이며 형형색색 채소들을 달달 볶았다. 샛노란 달걀지단도 두툼하게 부쳐냈다. 나는 옆구리가 터질 것처럼 빵빵하게 말린 김밥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온 가족이 들떠있었다. 첫아이의 첫 운동회니 그럴 만도 했다. 겨우 여덟 살짜리가 먹는 점심 도시락에 5단 찬합까지 동원될 정도였다. 정성스러운 도시락의 힘이었을까. 내가 참여하는 경기마다 승전보였다. 줄다리기도, 제기차기도, 박 터뜨리기도 모두 우승 상품을 받았다. 가족들에게 상품으로 받은 색연필과 공책을 자랑하고 있자니 제법 우쭐해졌다. ‘나는 뭐든 다 잘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경기도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 될 거라 여겼다.


마지막 경기는 단거리 달리기 시합이었다. 6명씩 조를 나누어 50m 트랙을 달리는 경기였다. 이기면 학용품만 나눠주던 다른 경기와 달리, 단거리 달리기에는 특별한 세리머니가 있었다. 결승선에 가장 먼저 도착한 3명에게 손등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다. 1등은 월계수 왕관이 그려진 도장, 2등은 선물상자가 그려진 도장, 3등은 손뼉 치는 손 모양이 그려진 도장이었다. 그 도장을 본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보라색 인주가 묻은 손등이 진정한 승리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월계수관 도장이 찍히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선에 섰다.


‘타앙-!’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단거리였던 만큼 경기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결승선에 들어와 잠시 숨을 고르고 손등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그려져있지 않았다. 화려한 월계수 왕관도, 예쁜 선물도, 박수갈채도 없었다. 나는 6명 중 5등으로 들어온 것이다. 응원하러 와준 가족들 앞에서 초라한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났다. 뭐든 다 잘한다고 착각했던 아이에게 꽤나 큰 시련이었다. 끝까지 잘 달렸다며 칭찬해 주시던 부모님 앞에서 찬합 통을 뒤집어엎을 정도였다. 뛰는 모습 보여주기 싫으니까 두 번 다시 운동회를 보러 오지 말라며 악을 썼다. 결국 온 가족이 함께한 처음이자 마지막 운동회가 되었다. 고작 달리기 하나 때문에 말이다. 물론 그 후로도 나는 학창 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손등에 도장을 받지 못했다. 내가 남들보다 느리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을 뿐이었다.


학교 운동장을 벗어나도 나는 늘 한 발씩 뒤처진 사람이었다. 친구들이 신입생 환영회에서 부어라 마시는 동안 나는 재수학원 구석에 앉아 모의고사를 풀었다. 기껏 들어간 대학에서도 동기들이 모두 떠난 후에야 겨우 졸업했다. 오죽하면 우연히 마주친 교수님이 “너 아직도 취업 못하고 학교 다니냐?” 물을 정도였다. 그 흔한 연애조차 이십 대 중반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해봤다. 아득바득 숨차게 달려왔는데도 내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먼저 결승선에 도착한 이들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자리. 나를 위한 월계수관은 없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오랜 취업 준비 생활을 청산하고 입사하게 된 어느 날. 신입사원을 위한 체육대회 소식이 전해졌다. 체육대회 종목 안내와 함께, 모든 신입사원은 오래 달리기 시합에 참여한다는 공지가 적혀있었다. 5km 정도의 둘레길을 달리는 코스였다. ‘달리기’라는 세 글자에 치가 떨렸지만 어언간 내 두 발은 출발선 앞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운동회의 악몽을 되새김질해야 한다니. 뛰기 싫다고 소리를 꽥 지르고 싶었다. 가족들에게 악을 썼던 그날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못 한 채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5~6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우르르 내 앞을 지나쳐갔다. 단거리 달리기는 금방 끝나기라도 했지, 이건 뒤처진 자의 굴욕감을 더 오래 맛봐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시작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발바닥도 욱신거렸다. 어차피 끄트머리 순서로 도착하게 될 텐데 전력으로 달린 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둘레길 경치나 구경하며 여유로이 달려도 상관없을 터였다. 그러자 호숫가에 핀 아카시아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상수리나무 사이를 노니는 청설모도 보였다. 앞질러 달리던 사람들 대신 나를 둘러싼 풍경에 오감을 집중했다. 헐떡이던 숨이 점차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발바닥의 통증도 무뎌졌다. 그저 나의 호흡과 나의 속도로, 온전히 나만의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선 끝에 결승선이 보였다.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걸로 봐서 또 한참 늦게 도착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즐겁게 달려왔으니 괜찮았다. 다른 이보다 늦었다는 패배의식이나 굴욕감 없이 어느 때보다 후련한 달리기였다. 경기를 끝내고 잠시 목을 축이던 찰나, 누군가 내 손목에 종이 팔찌를 채워줬다. ‘3등’이라 적힌 팔찌였다. 전체 참가자 중 3등으로 입상했다는 증표였다. 이게 정말 나에게 주는 것이 맞는지, 등수를 제대로 헤아린 것이 맞는지 몇 번을 되물었다. 팔찌를 채워준 스태프는 어리둥절한 내 표정이 재밌다는 듯 웃더니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어린 시절 꿈꿔왔던 손등 도장이 드디어 내게도 주어진 듯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트랙 위에 서있다. 같은 목표를 갖고 출발해도 달리는 궤적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시원하게 달려 나간다. 반면 누군가는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두른 것처럼 한 걸음 내딛기도 벅차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나가는 이의 꽁무니만 좇다가는 넘어지고 상처 입기 십상이다. 내가 그랬듯이. 나는 그저 한숨에 빨리 달리기보다 여러 번 숨을 고르며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맞는 사람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나만의 호흡을 찾는 일이었다. 타인을 부러워하며 스스로 자책하는 대신,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도록 내게 맞는 속도를 찾는 시간이 필요했다. 늦게 도착했다고 해서 자신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뒤처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순간의 소중함이 있었다. 아카시아꽃향기를 만끽하고, 청설모의 보슬보슬한 꼬리짓은 마주한 것처럼 말이다.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나는 늘 한 발씩 뒤처진 사람이었다. 삶에 있어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게 맞는 속도와 호흡을 깨닫기 위해, 나는 조금 천천히 돌아왔다. 운동회날 점심 도시락을 뒤엎고 서럽게 울던 아이는 그렇게 성장했다. 오래 달려온 만큼 단단한 굳은살도 얻었다. 아무리 험한 길이 펼쳐진다 한들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멋진 보상이 아닌가. 더 이상 손등 도장이 부럽지 않을 만큼, 시간을 달려 어린 날의 나에게 선사하고 싶을 만큼.


초등학교 1학년, 엄마 아빠와 둘러앉아 먹던 그날의 도시락, 다시 못 올 도시락, 내가 엎어버린 도시락, 요즘도 김밥을 보면 내가 지나쳐버린 그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젊은 부모님과 학교 운동장의 큰 느티나무와 친구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때도 열심히 뛰었을 어린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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