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놀러 온 오라버니 친구들에게 엄마가 물었다. "너네 술은 어디서 마시니?" 딱히 숨길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한 놈이 바로 대답한다. "집 비면 그 집에서 모이고요. 한강에서도 잘 먹어요." 엄마도 놀라지 않고 다시 묻는다. "안주는?" 이번엔 다른 놈이 대답한다. "라면에 새우깡이면 최고죠." 엄마는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그렇게 마시면 몸 상한다. 이제 집에서 무라"
오라버니랑 나는 다섯 살 차이니까 내가 중학교 1학년, 오라버니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이다.
오라버니는 나에 비해 공부도 곧잘 했다. 고3 때 학원 몇 달 다니고 수학 과외를 좀 받더니 인서울로 쉽게 진학했다. 고교 3년 내내 종합반에 과목 별 학원까지 다니고도 경기도 소재 대학을 간 내 기준엔 잘한 거다. 오라버니는 술도 곧잘 마셨다. 나는 명절에 얻어먹은 술 한 모금으로도 얼굴이 시뻘게져 어른들이 깔깔 놀려대는데, 오라버니는 빈 잔을 슥 앞으로 내밀며 입맛을 다셨다. 오라버니는 담배까지 잘 태웠다. 새벽에 방문을 열어둔 채로 개똥폼을 잡으며 창문 밖으로 담배 연기 내뿜는 모습이 꼴사나워 나도 엄마도 아부지도 못 본척했다. 종합하자면 오라버니는 고등학생 때부터 술도 담배도 공부도 골고루 한 셈이다. 그렇다고 딱히 불량 학생은 아니었고 동네 친구들끼리 도서관이나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하다가 엉성하게 폼 잡고 싶을 때나 술이나 담배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이라면 우리 엄마도 일가견이 있는 분야인 만큼 당신 아들이 어설프게 하는 꼴을 보지 못할 만했다. 집에서 술을 마시라는 엄마의 말에 오라버니와 친구들은 환호했고 그 뒤로 몇 번이나 우리 집에서 술판이 벌어졌는지는 미처 셀 수도 없다. 냉장고는 늘 소주와 맥주로 가득했고 오라버니 친구들이 털고 가야지만 공간이 널찍해졌다. 그럼에도 한창인 청년도 아닌 한창인 미성년자들에게 술은 잘도 들어갔으니 냉장고에 구비된 술이 다 떨어지면 사러 나가야 했다. 엄마는 혼자 들고 오기에는 무거울 거라 생각했는지 개중 노안인 놈을 하나 골라 같이 술장을 보러 가기도 했다.
안주로는 김치 부침개가 압도적 인기였다. 엄마는 김치 부침개를 몇 판이고 부쳐댔다. 부침개를 큰 프라이팬에 부쳐도 놈들에게 한 입씩 집히면 사라졌다. 그 부침개는 다시 고스란히 화장실 변기 옆에 놓이기도 했다. "아니 왜 변기 앞까지 다 와서 변기통에 게워내질 않고 여따가 쏟아내고 지랄이여!"라고 말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토사물을 치우던 엄마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그 난리통에도 나는 속으로 제일 괜찮은 오빠를 물색하며 새침하게 앉아 문제집을 푸는 척했다. 친구 여동생에게 모르는 문제를 가르쳐주며 싹트는 사랑이 생길 수도 있었으나 단 한 명도 "오빠가 가르쳐줄까" 수작 부리며 다가온 놈이 없었다. 모두 마시고 토해대기 바빴으므로 나는 언제부턴가 방문을 닫고 크레이지 아케이드나 카트라이더를 했다.
여름방학이면 우리 집은 포항에 있는 외할머니 댁으로 피서를 갔는데, 한 번은 오빠 친구들 여덟 명까지 함께 갔다. 외할머니 댁은 칠포 해수욕장에서 차로 10분 거리여서 바닷가로 놀러 가기에도 좋았다. 마당은 넓어 저녁이면 평상에 누워 시골에서 유독 잘 보이는 별을 볼 수 있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외삼촌이 살았다. 엄마는 외삼촌을 외할머니 집으로 불렀고, 오라버니와 친구들을 외삼촌 집에서 묵게 했다. 그리고 김치찌개를 한 냄비 끓여 나를 통해 외삼촌 집으로 배달 시켰다. 끙끙대며 냄비를 들고 가자 집에서 보던 모습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더 많은 양의 맥주병과 소주병이 줄 서 있었는데 놈들은 도박장처럼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어리고 여린 내게 도박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매서운 집중과 살벌한 눈빛은 영화에서나 보던 모습이었으므로 나는 문 앞에 김치찌개를 살며시 내려놓고 나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은 외할머니 댁으로 도도도 달려가 엄마에게 "놈들이 미쳤어!"하고 외치는 것으로 해소했다.
다음날에는 여러 겹 쌓인 김치전을 배달했고 다다음 날에는 다 같이 외삼촌 트럭을 타고 칠포 해수욕장으로 놀러 갔다. 그날 저녁에는 외할머니 집에 모두가 모여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소주를 생수처럼 벌컥벌컥 마시던 외삼촌은 새로운 술친구들에게 술은 어른에게 배우는 것이라며 주거니 받거니 신나게 먹고 마셨다. 내년이면 고3인 놈들이었다.
고3이 되니 우리 집으로 놀러 오는 놈들의 모임은 뜸해졌고 대학생이 되어 술집에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게 되자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한 상 차려주면서 "이놈들~ 이거 먹고 내일부터는 공부해라!"라고 말하며 한껏 유세를 부리던 엄마는 오히려 서운한 눈치였다. 바깥으로 나다니느라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대학생 오라버니가 또 집을 나설 때, 놈들의 안부를 물어보며 한 번 집으로 놀러 오라고 말하는 표정이 그랬다.
술 마시러 집에 오진 않았지만 오라버니 친구들은 종종 우리를 보러 왔다. 놈들은 나의 중학교 졸업식에 조폭을 연상케 하는 검은 정장을 빼입고 와서 내가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후에도 일진들에게 시달리지 않게끔 해주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포항에 있는 장례식장까지 왔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대구로 내려와 발인까지 함께 했다. 우리 집이 이사하던 날 무려 아홉 명이나 와서 도와주었고 저녁에는 엄마와 아부지를 모시고 고기를 대접했다. 그걸로도 아쉬워 2차로 노래방까지 가서 엄마와 아부지의 노래에 대차게 손뼉 치며 호응했다. 그날 노래를 부르며 웃어 젖히던 엄마의 얼굴은 싸이키 조명보다 밝고 환했다. 놈들은 내 결혼식에도 일찍부터 등장해 축의금을 받아 주었다. 대구에서부터 버스 대절로 급하게 자리를 뜬 친척들의 빈자리를 대신해 폐백 때 사촌 오빠 내지는 오촌 아지야로 자리를 지켜 주었다. 요즘엔 시골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엄마네로 삼삼오오 모여 놀러 간다. 결혼한 또는 결혼할 사람과 내려가서 하룻밤 묵고 오기도 하며, 아이까지 데리고 간 놈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모인 자리에서 매번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역시 놈들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엄마가 차려주던 술상이다. 한 놈은 그때 엄마가 부쳐준 김치 부침개 맛을 잊을 수 없다며 말하고, 한 놈은 빈속에 내리 몇 시간 고스톱을 치다가 먹은 얼큰한 김치찌개야말로 속 풀어주던 맛이 일품이었다 외치고, 또 다른 한 놈은 그 귀한 음식들을 도로 토해낸 것에 사죄한다. 왜인지 그때 기억들은 곱씹을만했고, 지금 마시는 술맛을 더 맛있게 만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옆에서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내가 보아도 참 달아 보이는 술이었다.
엄마는 놈들에게 술상을 차려주며 유세 부리던 게 그렇게 또 재밌었대요. 사실 엄마가 좋아서 한 일이라고요(꼽사리로 껴서 자기도 술 먹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