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부친 편지

딸이 아빠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

by 우자까


차창 밖으로 드라마 속에서 보던 호화 저택들이 이어졌어. 담이 너무 높아 담 너머 얼마나 으리으리한 집이 있는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뭐 겁나 좋은 집이려니 생각했어. 아부지는 차를 천천히 몰았어. 내게 저택가를 보여주려는 건지 아니면 아부지가 보고 싶은 건지는 몰라도 나는 잠자코 있었지. 서행하는 차 안에서 햇살을 받으며 있자니 노곤해지는 기분이 좋았거든.


아부지는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잖아. "이런 곳에서 살게 해주겠다"란 말은 중 2병에 걸린 내가 들으면 비웃었을 테고, "집 참 크고 좋다"란 말도 아부지가 딸에게 말로 하기엔 체면이 서질 않잖아. 그저 부드럽고 조용하게 차를 몰던 아부지의 옆모습이 기억나. 잔잔했던 표정까지도.


그 저택가가 역삼동이었는지 한남동이었는지, 아부지는 어쩌다 그날 나를 저택가로 데려가 드라이브를 시켜줬는지, 말없이 운전하던 아부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은 모르겠어. 지금에서야 이렇게 생각해. 훗날 나도 나의 아이를 데리고 똑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 그러면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겠지 싶어서.


자식이 태어나면 부모는 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걸까. 혹은 자식을 이 세상에 데리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찰까. 아부지를 후자의 부모로 만들기 위해서 나는 잘 좀 살아보려고 부단히도 애쓰는 중인데, 왜 아부지는 내 앞에서 번번이 죄인이 되고 마는 걸까.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아부지는 기꺼이 죄인을 자처하고. 그럼에도 내게 아부지는 은인임을, 어리숙한 내가 그건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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