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대수롭지 않음

by 우자까

밤 늦게 씻고 나온 엄마가 반창고 좀 떼 달라고 거실로 불렀다. 노트북을 닫고 나가보니 엄마가 쪼그려 앉은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씻는 동안 물에 불었는지 반창고가 새끼손가락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힘을 주어 떼어내려고 하자 아픈지 엄마가 몸을 움찔거렸다.


"다쳤어?"

"응, 아까 칼질하다가."


칼질이라고 하면... 저녁 해먹기 전 엄마는 내게 칼 좀 갈으라고 식칼 세 개와 칼갈이를 주었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더 갈 것도 없어 보였는데, 0.1mm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날카로운 칼날이 슥-하니 갈리는 소리가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나는 팟캐스트나 들으며 슥-슥- 칼을 대충 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 썼던 글을 수정하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엄마가 하는 말.


"니 뭔 칼을 이렇게 잘 들게 갈았노"

"뭐?"

"칼이 잘 든다꼬"

"그냥 간 거지 뭘. 잘 들게 갈긴 잘 들게 갈아."


칼갈이에 끼워 넣고 대충 몇 번 왔다 갔다 했을 뿐인데 뜻하지 않은 칭찬에 할 말이 없었다. 재료 손질이 잘 되는가 보다 했다. 그 잘 드는 칼이 요리 재료가 아닌 엄마의 새끼손가락을 베어버린 줄도 모르고. 나는 엄마에게 왜 아까 말 안 했냐고 물었다. 요리하면서 칼에 베는 걸 가지고 뭘 굳이...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그 대수롭지 않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가 나를 진짜 화나게 하는 줄도 모르고.

작은 가위로 반창고를 찢어 보니 대수로운 상처였다. 칼에 깊게 베인 흔적이 역력했다. 하필이면 쪼매난 새끼손가락이라 더 아파 보였다.


"아씨, 아프겠잖아"

"응, 아까 피가 많이 나더라고..."


참내, 이 아줌니. 아까는 대수롭지 않다면서 왜 또 갑자기 살살 엄살인지.


한 번 나는 요리하다가 발가락에 식칼을 떨어트린 적이 있는데, 떨어진 충격에 발가락도 아팠거니와 피가 철철 흐르자 놀라고 서러운 마음에 그 와중에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한 손으로는 엄마와 전화하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흐르는 피를 지혈하면서. 혼자서 요리하다 다치니까 뭐 이렇게 서럽냐고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요리하다 보면 다 그래~ 베이기만 할 뿐이냐. 양배추 갈다가 살점도 떨어져 나가고, 펄펄 끓는 냄비에 손목이나 데이고. 손이 성할 날이 없지~"라며 역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렇게 가볍게, 오늘도 깊게 베인 엄마의 새끼손가락이다. 그마저도 제 몸 주인에게 같잖은 취급을 받는.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끼니를 차리면서 다쳐봐야 그 대수롭지 않음을 걸칠 수 있을까.


말없이 엄마 손가락에 후시딘을 치덕치덕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새끼손가락은 한동안 씻을 때 좀 쓰라릴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될 때까지, 얼마나 서러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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