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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자까 Dec 06. 2020

대리사회, 대리인간

 (이 책은 증말... 꼭 읽어주세요! 최근 읽은 업세이(직업+에세이)에서 단연 1위로 등극한!!! 대학교 시간강사로 일하던 작가가 돌연 대리기사로 일하며 쓴 책입니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작가는 건강보험과 4대보험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그러다 4대보험을 보장한다는 문구에 홀려 맥도날드 물류 하차 알바를 시작했다.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더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는 문장은 작가가 맥도날드에서 일을 하고서 내린 결론이었다.

 작가는 이후 대학에서 나와 글을 쓰며 밤에는 대리기사로 일했다. 이 책은 작가가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좁은 공간에 앉아 대리운전에서 나아가 대리 인간으로 세상을 응시한 책이다. 대리기사는 '대리'이기에 마음대로 창문을 열지 않고 음악 볼륨을 높이지 않는다. 에어컨을 틀지도 않으며 마음대로 좌석을 조절하지도 않는다. 운전석은 차 주인에게 맞춰진 공간이니까. 그렇게 타인의 운전석에 앉으면 모든 행위 자체가 철저히 통제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책을 읽다가 곧 깨닫고 만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대리인간임을. 사장을 위해 대신 일하고, 내가 사장 대신 일하러 나가느라 할머니가 된 엄마가 육아를 나 대신해 주길 바라며,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바쁘고 힘드니까 누군가가 대신 청소해 주고 밥해주고 빨래해 주길 바란다. 그 대리라는 직함 너머에는 사람만이 있는데, 우리는 이를 너무 쉽게 간과한다.

 작가는 보란 듯이 이 '대리인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정겹고도 재미나게 풀어낸다. 지독한 방귀를 몇 번씩이나 뀌어대는 차 주인이 거참, 지독하다고 말만 하고 창문을 내리지 않는 장면에서 "타인의 운전석에서 나는 내 코의 주인이 아니다"라며 선언하며 쓴웃음을 자아낸다. 반사적으로 수락 버튼을 눌러 손님이 있는 곳으로 뛰다가 택시까지 잡아타고 갔는데, 경주마 게임처럼 두 개 이상의 대리운전 회사에 전화를 해 먼저 온 기사와 손님이 떠난 자리에서 허망하게 두리번거리는 장면은 마음을 뜨끔하게 만든다.

 핸드폰에서 클릭 몇 번으로 나의 일을 대리 시키지만, 거기에는 나를 위해 뛰어오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도 대리사회에서 대리를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이들도 있으니, 담배를 피우거나 전화 통화를 하기 전에 "죄송하지만 제가 무엇을 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이들이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그 공간의 한 주체로서 존중한다는 의미다. 그 자체로 나는 '함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37p)."
 대리인간인 나 역시 나를 위한 또 다른 대리인간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정말 정말 정말x100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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