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정작 귀를 기울여야 할 사람에게

by 우자까


몇 달 만에 엄마를 보러 시골로 내려갔다. 일주일 정도 있을 작정이었는데 제일 큰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엄마네 집이 배달이 전혀 안 되는 곳에 있다는 점이었다. 배달의 민족 앱에서 집 위치를 설정하고 메뉴를 클릭하면 큰 글씨로 '텅'이라 떴고 '근처에 주문할 수 있는 가게가 없어요' 문구만이 나타났다. 분식 양식 따질 필요도 없이 어느 매장 단 한 군데서도 배달을 오겠단 곳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이 위치한 지역은 동네 가구 수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엄마네 집 한 채와 앞쪽에 홀로 살고 있는 할머니 집이 다였기 때문이다. 슈퍼를 가려면 걸어서 족히 20분은 더 가야 했는데, 그 길도 차도나 다름없어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배달 음식이 불가하기에 첫날부터 나는 엄마에게 외식 좀 하러 나가자고 보챘다. 내가 있는 동안만이라도 매 끼니를 차려야 하는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는 집에 먹을 게 이렇게 많은데 무슨 외식이냐며 한사코 싫다 했다.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 집에 있는 음식으로 상을 차렸다. 먹을 게 많기도 했거니와 오랜만에 먹는 엄마표 밥은 맛이 있었다. 나는 어느새 집에 있을 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엄마가 해주는 밥을 기다렸다가 먹었다. 미혼 시절엔 잘 챙겨 먹지 않는 나도 내 살림을 차리고 나니 집에선 맨날 저녁엔 뭘 먹고, 내일은 또 뭘 해 먹을지를 생각하는 게 숙제였다. 그런데 여기선 이미 잘 차려진 밥을 먹고 나면 엄마가 깎은 사과가 옆에 놓였고 그럼 그걸 또 집어먹다가 역시 엄마가 아침 일찍 내린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만화를 그렸다. 덕분에 집에 있을 때보다 많은 양의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웹툰 대부분을 그곳에서 그렸다.


하루는 아침 늦게 일어나니 엄마가 밤새 뽀얗게 우린 곰탕을 내주었다. 냄새부터 고소했다. 엄마는 내가 자는 동안 먼저 밥을 먹었다며 혼자 TV나 보면서 먹으라 했다. 나는 밀린 펜트하우스나 보려고 TV를 켰다. 한 숟갈, 두 숟갈 뜨는데 분명히 TV 보면서 편하게 밥 먹으라던 엄마가 한 번씩 옆에서 구시렁구시렁 말을 걸었다. 엄마 특유의, 혼잣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기에도 애매한 말들이었다. 그 모호함을 살피기에는 내 앞에 놓인 뜨끈한 국밥과 흥미진진한 펜트하우스가 단연 우선이었기에 나는 모른 척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하은별이 속을 뒤집어 놓을 때 엄마는 옆에서 무어라 한 마디를 던졌고, 천서진이 분노할 때는 엄마도 한 톤 더 높은 목소리로 두 마디를 던졌다. 집중 좀 하려고 하면 옆에서 한두 마디씩 던지니 도저히 몰입해서 볼 수가 없었다. 속에서 짜증이 울컥울컥 밀려왔다. 엄마 쫌!!! 이것 쫌!!! 보자고 얘기하려 고개를 돌리니 언제부터 그렇게 앉아있었는지 쪼그리고 앉아 걸레로 닦은 자리만 계속 닦으며 내 뒤통수를 보고 있던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아차 싶었다.


순식간에 느껴졌다. 배달도 안 되는 이 외딴곳에서 이따금 고양이들한테나 말 걸었을 엄마가 얼마나 대화에 목말랐을지. 그래도 그렇지, 왜 하필 쪼그리고 앉아서는. 사람 미안하게.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곤 10분도 채 보지 않은 드라마를 끈 다음 엄마의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엄마는 '욕심'과 '원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내가 그곳에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책을 인용해 그린 웹툰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네가 그 이야길 더 알리고 싶다 했잖아. 그거 참 좋은 거다? 불교에서 말하길~ '욕심'은 오로지 나를 위한 마음에서 비롯되지만 '원력'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또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위해서 가지는 마음인데, 사람은 '원력'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하는 거야."


그냥 한두 마디 아무 말이나 던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리도 심오한 내용을 얘기하고 있었다니 피식 웃음이 났다. 이왕 들어주는 거 제대로 들어주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펜슬을 꺼내들고 노트 앱을 켰다. 그리고 조금 오버하며 말했다.

"엄마, 그 말 너무 좋다. 나 메모해야지. 다시 한번 말해줘 봐."

그리고 보았다. 씰룩거리는 엄마의 입꼬리를. 엄마는 신이 나서 무슨 무슨(기억 안 남) 스님이 하신 말씀인데, 너랑 네 오빠가 꼭 이 법문을 들어야 하는데~ 그게 내 죽기 전 소원인데도~ 도통 들으려 하질 않으니 걱정이라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이렇게 말해주면 되잖아."

내가 곰탕을 다 먹을 때까지, 먹고 나서 남은 국물이 차게 식을 때까지 엄마가 공부했다는 법문은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엄마의 말이 길어지면 항상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기 일쑤였는데 말이다. 아마도, 밤낮으로 공부했다는 법문을 내게 전하는 엄마의 얼굴이 한층 밝아진 게 너무 잘 보였기 때문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왜 나는 유튜브에서 세바시 명강의며 유명 저자가 한다는 특강은 돈까지 내고 들으러 다니면서도, 왜 엄마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요즘 세상에 뒤처진 엄마가 하는 말은 우습다고,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만 생각했을까. 때로는 나를 나보다 잘 아는 엄마의 말에 답이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저 엄마는 나보다 무지한 사람이라 여겼다. 무지한 사람. 내가 생각하는 엄마가 그러했으니 엄마는 그렇게만 존재했다.


무서운 건 자식이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을 알면서도 말하고 또 말해야 했던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자식이 들어주길 바란, 자식을 위한 말들.

비껴가고 비껴가는 걸 알면서도.


우리 엄마가 펜트하우스의 부모들처럼 나만 잘 되자고 미친 듯 달려드는 사람도 아니고, 아마 그간 엄마가 해온 말들 대부분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되새길만한 말임을 나도 알고는 있다. 지금 당장 듣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언제든 들으려고 하면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엄마가 하는 말은 너무 쉬우니까. 아니, 엄마는 내게 너무 쉬운 사람이니까.


하지만 몇 달 만에 본 엄마는,

이제 곧 노령 연금을 받는다며 넌지시 말하던 엄마가 하는 말은,

더이상 쉬운 게 아님을 나는 알아야 한다.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을 때가 올 거다.

'그때 엄마가 나한테 했던 말이 뭐더라...' 그때가 되어서야 흐릿하게 떠올리고 싶지 않다.


명강사 앞에서 펜과 노트를 꺼내드는 나의 모습과 내 부모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나의 모습. 아무래도 요즘의 난 후자의 모습에 마음이 더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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