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비행에서 만난 여행 가이드
2015. 07. 09
오랜만의 베트남 하노이 비행. 도착하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동기 언니가 추천한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비행 후에도 일본인 승무원과 일본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얘기하느라 피곤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 혼자서 나갔다. 쌀국수와 반 쎄오, 볶음밥까지 시켰다(맥주는 물론). 흐뭇한 마음으로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한국인 관광객 무리가 들어왔다. 주로 사오십대의 아주머니들로 이루어진 관광팀이었다. 그들은 바로 내 옆 테이블에 앉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아주머니들은 일제히 내 앞 테이블에 놓인 메뉴들을 흘끗거리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저건 뭐지? 파전 같다, 꼭."
"양이 꽤 많은데, 저 아가씨 혼자서 다 먹을 건가 봐."
"아니 근데, 요즘엔 젊은 아가씨들이 혼자서도 여행을 참 잘 다니더라고."
내가 한국인인 걸 아시는 건지 모르시는 건지... 대답을 해야 하나 못 들은 척해야 하나 고민됐다. 대한민국 중년 여성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혼잣말을 하는 것인지 말을 거는 것인지 헷갈리게 얘기한다는 점이다. 며칠 전에도 전철 문이 닫히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탑승한 아주머니가 내 옆에 앉으며 "하마터면 못 탈 뻔했잖아~!"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주저했다.
가이드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아주머니들에게 메뉴는 좀 보셨냐고 물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내가 한국인임을 단박에 알아보고 말했다. "한국 분이시죠? 혼자 여행하시는 거예요?" 순간 당황해서 그냥 네,라고 답했다. 그가 혼자서는 쓸쓸할 텐데 같이 식사하는 건 어떻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사양하는데 덩달아 옆에 있는 아주머니들도 같이 자리하자며 거들었다. 사실 바로 옆 테이블이라 테이블만 살짝 가깝게 붙이면 바로 합석이 될 터였다. 계속 거절하기도 민망하고 아주머니들 기세에 눌려버린 나는 얼떨결에 나란히 앉아 함께 먹기 시작했다.
그 옛날 처녀 시절, 혼자서 하는 해외여행은 꿈도 못 꿔 본 아주머니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나홀로 여행'은 어떻냐고 물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승무원이라 비행으로 온 거라 말했다. 그러자 한 아주머니가 당신 딸도 승무원 학과에 재학 중이라며 반가워했다. 핸드폰 배경화면에 설정된 따님의 사진도 보여주셨다.
다른 한쪽에서는 가이드가 볶음밥을 먹으며 다음 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오전에 방문했던 베트남 사찰이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뻤다는 말을 쏟아냈다. 가이드는 본인이 가이드 했으니까 당연한 걸 굳이 말씀하신다고 아주머니들을 나무랐다. 꺄르르, 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저야 여기서 살고 있지만, 손님들은 언제 또 오시겠어요. 다른 데도 가보셔야죠. 물론 이곳에서의 시간이 좋았으면 한 번 더 오실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저는 제가 가이드 한 나라를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로 기억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짧은 말이었지만 그의 내공이 느껴졌다. 나는 반 쎄오를 우적대며 가이드에게 여행 가이드 일을 얼마나 오래 하고 있는지 물었다. "오늘이 532번째 가이드 하는 날이에요. 내일 맞이할 고객들은 533번째 맞이하는 분들이고요." 경력을 1년, 3년 같은 기간이 아닌 횟수로 말해 놀란 나는 다시 물었다. "그걸 다 세면서 이어오신 거예요?" 그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싱겁게 웃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할 때는 안 셌어요. 우연히 횟수를 세보다가 '오늘은 내 가이드 경력에서 100번째로 만나는 고객이다'라고 생각하며 나가니까 마음가짐이 그렇게 달라지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쭉 손님들을 임명하기 시작했죠. 나의 500번째 손님, 501번째 손님, 이렇게요." 그 말이 너무 멋있어서 나도 나중에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3년간 몇 번의 비행을 했는지 대강 헤아려보다가 이내 그만두었지만.
직업의식을 고취하는 방법을 아는 이와 모르는 이의 차이는 컸다.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달인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저 단순노동의 반복일 수 있는 일에서도 그들은 남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 그 일을 자기가 가장 즐겁고 잘 할 수 있는 일로 만드는 비결을 알았던 것이다. 내 앞에 있는 그는 가이드의 달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 딸의 꿈이 승무원이라는 아주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따님이 승무원 되면 직원 티켓으로 여행 더 많이 다니실 거예요." 아주머니는 그러면 너무 좋겠다고 소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그들과 헤어졌다.
비행기에서 나는 승객들 여행길의 든든한 배경으로 존재했다. 때로는 반복되는 비행으로 그저 무미건조하게 비행기에 탑승해 몸이 움직이는 대로 안전 체크를 하고 승객을 응대한다. 컴플레인 받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의 서비스를 하며 승객 눈치를 살핀다. 그 속에 즐거운 모습은 없었다. '비행을' 하는 게 아닌 '비행이나' 하는 꼴이었다.
'최고의 서비스는 고객에게 미소 짓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당신에게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비행이나 한다는 마음가짐으로는 아무리 어여쁘게 미소 지어봤자 소용없었다. 본인이 제공하는 서비스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찾고 스스로가 먼저 즐거울 수 있다면, 그 마음은 고스란히 승객에게도 전달될 테니 억지로 웃을 필요도 없었다. 하노이에서 만났던 가이드는 자신의 가이드 생활에 자아도취되어 즐거워 보였다. 무엇보다 그와 함께하는 아주머니들도 즐겁게만 보였다.
그들과 헤어진 나는 하노이의 중심지인 호안끼엠 호숫가를 걷다 마사지 숍으로 향했다. 기내에서 열심히 걸어 다니기 위해서는 뭉친 다리를 풀어줘야 했다. 돌아가는 비행은 내일 오전이었다. 오래간만에 비행이나 한 기분이 아닌, 제대로 된 비행을 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