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현관들

아빠와 딸이 주고 받은 첫 번째 편지

by 우자까


딸이 아빠에게_


어렸을 적 웬만한 떼쟁이였다는 건 이모들한테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지. 서너 살 아이가 으레 그러듯이 마트에서 갖고 싶은 거 안 사주면 바로 바닥에 드러누운 다음 바퀴벌레가 뒤집힌 것처럼 발을 동동 굴렸다고 말이야. 그러면 우리 엄마 눈이 뒤집혔는데, 나는 아랑곳 않은 채 울지도 않으면서 소리만 우는소리를 빽! 내지르기 시작했다고 했어. 그런 나를 엄마가 팔 잡고 끌고 가려다가 가지 않으려는 나와 힘이 상충되면서 팔이 툭하니 빠졌대. 어깨가 빠져 덜렁거리는 팔에 악쓰는 나를 병원에 끌고 가면서 엄마는 너무 힘이 들어 아부지한테 전화도 했었다는데, 혹시 기억이 날까?


하루는 막내 이모가 집에 놀러 온 날에 내가 두 시간이나 넘게 찡찡대면서 울었대. 처음에는 달래주는 척하다가 학을 떼고 그냥 나를 내버려 둔 채 수다를 떨었다지. 막내 이모가 애 우는 걸 질색하잖아. 하여간 그 모습이 나는 또 못마땅했을 거야. 내가 우는데, 도통 나를 신경 쓰지 않다니! 그래서 아마 계속 우는 척했을 거고. 우는 척도 지쳤을 즈음 아부지가 퇴근하고 집에 왔대. 아부지는 팬티만 입고 바닥에서 뒹굴며 질질 짜고 있는 나를 보더니, "나가자!"라고 했다며? 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에 그대로 서서. 양복 바람 그대로.


막내 이모가 형부 그냥 들어와서 쉬라고, 이 시간에 퇴근했는데 피곤하지 않냐고 했는데도 아부지는 괜찮다고 했대.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났을까. 아부지 손을 잡고 집에 들어오는 내가 방긋방긋 웃고 있었대. 막내 이모에게 사탕도 선심 쓰듯이 주었다고 해. 이모가 이 장면을 여러 번 이야기했어서 지금은 이렇게 내가 기억하는 것처럼 말할 수도 있어.


그때 아부지는 나를 어디로 데려갔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어. 퇴근하고 자취집에 들어왔는데 현관에서 신을 벗을 때부터 한숨이 푹푹 나오던 날이었어. 씻기도 귀찮고 배는 고픈데 요리해 먹을 힘도 없어서, 구두만 겨우 벗고 들어왔거든. 비행하느라 종일 구두 신고 일해서, 벗는 순간에는 발가락이랑 발바닥 아픈 구석이 더 잘 느껴지더라. 현관 신발장에 주저앉은 상태에서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풀어주는데, 새삼스럽게 집이 참 조용하단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오피스텔의 현관이 으레 그렇듯 밝은 잿빛의 신발장과 현관이 그날따라 유독 냉랭하게 느껴졌던 것도 같고. 그러다 문득, 몇 번이고 아부지 손을 잡고 드나들었을 현관이 떠올랐어. 어린 시절 내게 현관은 퇴근하고 들어서는 아부지의 모습을 기다리던 반가운 현관이었던 것 같은데.


아부지는 어떤 마음으로 현관을 드나들었을까. 우리 이사도 참 많이 했잖아. 서울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다시 서울로. 서울 안에서도 이 동네, 저 동네로 이사를 다니면서 초등학교 시절 내내 전학만 6번 넘게 할 정도로. 친구 한 명 진득하게 사귀진 못했지만, 크게 외롭진 않았어.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로 가든 나와 잘 놀아주던 아부지가 있었어서 그런 것도 같네. 눈이 많이 온 날, 썰매 타자며 박스 쪼가리를 들고 현관에서 아부지의 퇴근을 기다린 날도 있었지. 동네 골목길에서 잘 끌리지도 않는 박스 썰매를 태워주려고 아부지가 앞뒤로 열심히 밀어줬던 기억이 나.


아부지는 어떻게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나랑 그렇게 바로, 또 놀아줄 수가 있었을까? 나는 오늘도 내 한 몸 챙기기가 이렇게 피로한데, 그날 아부지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내 손부터 잡고 데려간 곳은 어디였을까. 비행으로 퉁퉁 부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궁금했는데도 아부지에게 바로 묻지는 못했어. 너무 피곤해서 대충 씻은 다음에 냉동만두나 데워서 먹고 뻗어 자버렸거든. 다음날에도 바쁘고 힘들어서... 그 다음날에는 또 비행이어서.. 나는 번번이 아부지에게 피곤하다고 생색내는 딸이었지, 뭐.


그래도 오늘은 이렇게 묻게 되네. 아부지는 그날 기억이 나?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데리고 다시 나갔던 그날 말이야.




아빠가 딸에게_


그렇지 않아도 네가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궁금한 게 많았다. 새벽 비행에 서두르다가 또 뭘 빼놓고 나가서 현관으로 1분 만에 다시 들어서진 않을지, 비행을 마치고 오면 구두부터 벗어던지며 널브러질지, 캐리어 정리는 여전히 뒷전일지 말이다.

네겐 미안하지만, 퇴근하자마자 양복도 벗지 않은 채 종일 울던 너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는 날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구나. 서운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현관을 드나들었을지 묻는 말에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그동안 숱하게 드나들었던 현관들이 생각나는구나.


우리가 처음 살림을 차린 곳은 할머니 집의 샛방이었다. 덕분에 너네 엄마가 시집살이 호되게 했다고 하지. 퇴근하고 오면 나는 현관에서부터 옷매무새를 다듬기 시작했는데, 그건 바로 캔맥주를 양복 가슴 주머니에 숨겨서 들어오느라 그런 거였다. 너네 엄마가 캔맥주를 좀 좋아해야지. 종일 할머니와 육아에 시달렸을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캔맥주를 두 캔씩 꼭 사가곤 했다.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샛방으로 들어가면 어김없이 너네 엄마는 책상다리로 앉아 아이를 안고 어르고 있었어. 캔맥주를 슬쩍 꺼내 보이자 네 오빠를 안은 상태에서 환하게 웃던 엄마가 생각나는구나. 웃으면 특히 예쁘게 빛나는 사람이었지. 그 얼굴이 보고 싶어 할머니 집 현관 앞에서 나는 매번 시원한 캔맥주를 꽁꽁 숨기면서도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다음 날 출근할 때에 빈 캔맥주를 챙겨 나가는 일도 까먹으면 안 되었다.


너가 세상에 태어났을 땐, 샛방에서 나와 작은 아파트로 터전을 옮긴 뒤였다. 엄마는 매번 현관 앞에서 너의 보드라운 손을 잡고 흔들어 보이며 내게 인사를 시켰어. '아바! 아봐!' 같은 소리를 웅얼거리기라도 하면 가슴이 벅차올라 뒷발꿈치에 용수철이라도 단 것처럼 출근길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너는 초등학교 저학년, 오빠는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쯤 아빠는 최연소 은행 지점장으로 승진해 연일 이어지는 회식으로 정신이 없었다. 고맙게도 은행에서 차와 운전기사를 제공해 주어 아침마다 편안하게 출근할 순 있었지. 내가 현관에서 구두를 신는 동안 너와 네 오빠는 창문 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는 운전기사를 매번 훔쳐보더구나. 하루는 네 오빠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지.

"아빠, 짱 멋있다! 나도 운전기사!!!"

너는 오빠에게 물었지. "운전기사가 멋있는 거야?"

다섯 살 더 먹었다고 너 앞에서는 어른인 척 잘하는 오빠가 답했다.

"운전기사가 있는 아빠가 멋있는 거지! 나도 성공할래!"


엄마 말을 들어보니 그 말을 들은 너는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는 운전기사도 있다며, 성공한 사람이라며 자랑도 했다고 하더구나. 너네 눈에 비치는 아비의 삶이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지, 나 자신도 성공이란 말 앞에서 얼떨떨했지만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더구나. IMF가 닥쳤고, 내가 다니던 은행도 문을 닫아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네 엄마와 나는 청계천에서 청바지 장사를 했고, 이대 앞에서 오징어구이 장사도 했다. 정장에 구두를 신고 나서던 현관은 장사 준비를 할 물품들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늦은 밤, 그날따라 너는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먹을 거는 뭐 안 사 왔느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네게 팔다 남은 오징어를 건넸다. 오징어 구이다! 신나하며 다리부터 뜯어먹는 네 모습에 가슴이 저렸던 것도 같다.


세상의 모든 좋은 단어를 네 옆에 나란히 서게 해주고 싶었다. 유복함이나 여유도 그중 하나였지. 하지만 불안과 조급함이 내 옆에 나란히 서게 되었고, 가난이란 것마저 나를 삼키고 지나쳐 네게 모습을 드러낼까 나는 그게 정말로 두려웠다.


일이 없을 때에도 나는 매일같이 현관을 나섰다. 네가 뭔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알기 무서웠으나 어찌 됐건 너는 매번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 나와 예의 그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떤 날에는 현관문을 다시 열기 전에 숨을 고를 때도 있었다. 언제 용돈을 줬더라, 다음 달 학원비는 얼마라고 했지? 그런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져 문을 열기가 두렵다가도, TV를 보다 까르르 자지러지며 웃어대는 너의 소리가 현관 너머로 들려 정신을 바짝 차린 적도 있었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너는 아바도 아봐도 아닌, 아빠라고 똑똑하게 말했다. 바로 구두를 벗지 못하고 현관에 잠시 서 있었던 것 같다.


편지에 답장을 하며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살며 숱하게 드나들었던 현관은, 내게 이런 모습으로 남아있구나 하고. 네가 바랐던, 듣고 싶었던 모습이 아닐 수도 있겠다. 딸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슈퍼맨이 되어 힘차게 집을 나서고, 마음 넓은 자상한 아비로 집에 들어오는 그런 아비의 모습을, 마음을 바랐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들을 보며 웃음 짓고 힘을 내는 그런 아버지상 말이다. 나 역시 물론 너와 네 오빠를 보며 다시 일어서고, 두 다리가 후들거려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을 나는 너네를 보며 행복하다고, 사랑한다고, 지켜주고 싶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겁이 났던 게 사실이다. 현관에서 신을 신느라 앉았다 일어나는데, 뒤로 다가와 용돈 좀 달라고 주저하며 말하는 네 모습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 날도 있었다. 미리 충분한 용돈을 주지 못함에, 자식을 눈치 보게 만듦에 그날은 유독 현관문도, 발걸음도 무겁게 느껴지더구나.


그런데 어느샌가 너와 네 오빠는 빠르게, 정말이지 빠르게만 크더구나. 그새 알아서 다 컸더구나.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제 돈벌이를 하며 우리를 돕고 이젠 내게 용돈도 주더구나. 그제야 알았다. 내가 현관을 드나들며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내쉬었다고 생각한 한숨이 사실은 너무 크게 네게도 들렸음을. 그럼에도 너는 짐짓 모른 체하며 기죽어있는 아비에게 밝게 웃어주고, 아빠라고 다감하게 부르며 다시 숨을 불어넣어 줬음을. 그렇기에 우리가 현관 앞에서 나누던 수많은 인사와 웃음과 싱겁게 주고받던 말 한마디가 지나치게 소중한 것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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