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프로필 사진을 찍고 난 뒤의 일

by 우자까

2년 전 결혼식을 치른 날에는 신부인 나에 대한 이야기보다 엄마의 미모 이야기가 한껏 쏟아졌다. 흰머리에 볼륨을 한껏 살리고 은은한 혼주 메이크업을 한 엄마가 참 우아하고 곱더라는 말이었다. 엄마는 결혼식 전에 아주 잠깐 염색을 고민했다. 애초에 할 생각이 없었는데 옆에서 이모들이 그래도 혼주인데 염색은 좀 해야 되지 않겠냐고 부추겼던 탓에 잠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꼭 해야 되냐? 어차피 나는 계속 시골에서 지낼 텐데?" 내게 그렇게 물어본 엄마의 속내는 뻔했다. "그치. 안 해도 되지." 이 말을 듣고 싶은 내색이었고, 나는 엄마가 듣고 싶은 말을 고대로 해주었다.


몇 달 뒤 결혼식 날 찍힌 사진을 받아볼 수 있었다. 시골로 내려간 나는 아빠와 엄마를 노트북 앞에 앉히고 사진을 한 장씩 보여주었다. 이미 다 훑어본 터라 별다른 감흥 없이 사진을 보여주곤 샤워나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다 씻고 머리까지 말리고 나왔는데 엄마는 여전히 돋보기를 낀 채로 노트북 앞에 앉아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었나 보다. 끙차, 소리를 내며 무릎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난 엄마가 한 마디 했다. "주름이 너무 많다!"

주름이, 많긴 했다. 피부가 하얀 편인 데다가 얇기까지 해서 엄마 얼굴엔 일찍부터 주름이 많이, 깊게도 생겼다. 그래도 평소 잘 웃고 표정이 풍부한 편인지라 얼굴 여기저기 자리 잡은 주름은 엄마가 웃을 때마다 깊게 패며 웃는 얼굴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줬다. 그러니 내 결혼식 날 주변 지인들 모두가 엄마 얘기를 했겠지.


자리를 뜬 엄마 대신 내가 다시 자리에 앉아 사진을 넘겨보았다. 하객들을 맞이하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다리가 아픈데도 굳이 와준 친한 언니의 손을 잡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표정을 한 번 더 보았다. 내가 신부대기실에 있을 때 엄마는 이렇게 밖에서 웃고 울고 있었구나. 사진에 찍힌 엄마의 모습은 이렇구나. 그러고 보니 엄마에겐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이 없구나. 내가 고등학생 때, 그러니까 15년 전에 군복을 입은 오빠와 정장을 빼입은 아빠와 POLO 티셔츠를 입은 나와 찍었던 가족사진이 엄마가 사진관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었구나. 나는 승무원 동기들과 유니폼을 입고 몇 번씩이나 프로필 사진을 찍었는데, 인스타 속 내 친구들은 바디 프로필부터 데이트 스냅 사진까지 별별 컨셉과 이유를 앞세워 사진을 찍어댔는데, 엄마는 없구나.


그럼 지금이라도 만들면 되지? 그렇게 나는 엄마의 제대로 된 사진을 찍어드리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엄마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어보자는 말에 엄마는 코웃음을 쳤고, 늙고 주름진 얼굴에 무슨 사진이냐며 가볍게 내 말을 무시했다. 시골집에서 정원 손질, 데크 관리, 텃밭 가꾸기로 바빠 어디로 움직일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는 엄마는 내가 결혼하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다. 사진은 일찌감치 물 건너간 얘기였다. 잠시 의욕적이었던 나도 서울로 올라온 다음에는 곧 잊어버렸다.


그리고 며칠 전, 2년 만에 엄마가 서울로 올라왔다. 그것도 친척 결혼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올라온 것이지만. 올라온 김에 며칠 더 있으라고 말해도 김장을 하기 위해 배추 심어놓은 것만 180포기라고 바로 내려간다고 했다. 겨우 말리고 말려 하루를 더 붙잡아 놓을 수 있었다.

서울로 올라온 엄마를 붙잡아야 했던 이유는 단 하나. 2년 전 무산되었던 엄마의 프로필 사진 찍기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꼭 찍어야 한다고 고집부리는 내게 엄마는 "하긴, 나중에 영정 사진도 필요하니까"라는 말로 맞받아쳤다. 엄마에겐 프로필 사진이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동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 찍는 모양새로만 짐작하는 듯했다. 나는 아빠에게 부탁해 괜찮은 정장 한 벌을 우편으로 부쳐달라 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엄마를 데리고 바로 지하상가로 가 목폴라 티도 하나씩 샀다. 청바지는 엄마가 입고 왔으니 그걸로 됐고, 검은색 정장 원피스는 내 것을 입히면 될 터였다. 다행히도 엄마는 운동을 좋아해 에어로빅부터 수영, 골프, 헬스, 요가, 달리기 등 평생 운동을 끼고 살아서 자세가 곧고 군살이 없어 내 옷을 말끔하게 소화하고도 남을 터였다.


결혼식 이후에는 친척들과 거나하게 술판을 벌일 거라 생각해서 촬영은 다음날 오후 5시로 잡았다. 애주가인 엄마는 신나게 소주잔을 비워댔고, 다음날 우리는 느지막이 일어나 짬뽕으로 해장을 하고 강남의 스튜디오로 향했다. 내가 예약한 스튜디오는 메이크업과 헤어를 함께해 주는 곳이었다. 덕분에 한 컨셉의 촬영이 끝나고 다른 컨셉으로 찍을 때 현장에서 메이크업을 수정할 수도 있었다.


엄마는 첫 번째 컨셉으로 브라운 톤의 니트와 재킷을 입고, 겨자색 정장 바지를 입어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내가 미리 아빠에게 소포로 받은 옷이었다. 두 번째 컨셉으로는 검은색 정장 원피스를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흰머리에 빨간 립이 유독 돋보였다. 스튜디오 관계자들도 흰머리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연신 감탄하며 엄마의 메이크업과 머리를 만지고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중년 여성이 사진을 찍으러 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엄마는 부끄러운 듯 말했다. "저도 안 찍겠다고 했는데... 하도 쟤가 찍으러 가자고 해서요..." 쑥스럽다는 듯 말했지만 자랑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말하며 웃는 엄마의 얼굴이 지나치게 환했기 때문이다. 수십 개의 화장품이 놓인 화장대 앞에서 엄마는 근육을 풀려는 건지, 주름을 펴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기도 했다. 나는 이따금씩 핸드폰 카메라로 엄마의 모습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바로 다음날 시골로 내려간 엄마는 내려가자마자 배추를 뽑고 절이고 김장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수백 장의 사진 중에서 보정할 사진 11장만을 골라야 하는데, 엄마는 들여다볼 생각도, 시간도 없어 보였다.

"바쁘니까 네가 알아서 대충 골라줘"

"그래도 엄마가 꼭 하고 싶은 사진이 있을 수도 있잖아!"

"없어, 없어. 그런 거 없어."


나 또한 책 작업과 강의 일정으로 시간이 없었다. 개인적인 약속은 하나도 잡지 못하고 있는 요즘이었다.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기한일인 어젯밤 12시에 사진 셀렉을 시작했다. 약 오백 장의 사진을 기계적으로 넘기며 보는데 피로가 몰려왔다. 책상의 스탠드 조명 하나만을 켜두고 모니터를 응시하니 눈이 침침하게도 느껴졌다. 그래도 사진 속 엄마의 모습이 근사하고 멋있어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역시 피곤하기는 해서 괜히 눈을 세차게 비비던 차에 얼굴이 클로즈업된 사진이 연속으로 나왔다. 엄마가 그토록 싫어하던 주름이 잘 보일 만큼 가까이에서 찍힌 사진들이었다. 엄마의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 예쁘네... 예뻐..." 어두운 방에서 혼자 조용히 말해보았다. 나를 보며 웃던 엄마의 수많은 얼굴이 모두 모니터의 사진 위로 겹쳐지는 기분이었다. 더 많이 웃게 하고 싶었는데, 나는 너무 바빴다. 자랑스러운 딸이 되겠단 명분을 앞세워 정작 엄마를 그 먼 시골에 홀로 두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자주 보지 못했다. 같이 밥상에 앉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여행 한번 가자고, 가자고 말만 하고 정작 가까운 곳으로 놀러 가지도 않았다. 엄마의 웃는 모습을 잡아두고 싶은 마음에 의욕적으로 찍은 프로필 사진이었는데, 더 늙기 전에 우리 엄마도 그럴싸한 사진 한 장 남겨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사진 속 엄마의 웃음 앞에서 나는 되려 무력함을 느꼈다. 다른 모든 중요한 일 앞에서 항상 쉬운 존재인 엄마는 매번 뒷전이었고, 뒤로 뒤로 밀리기만 했던 엄마는 그래도 매번 내게 웃어주었으니, 엄마의 웃는 얼굴 사진을 연속해서 보는 일은 필연적으로 가슴 아플 수밖에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반전신8.jpg
전신3.jpg
반전신7.jpg
이날만큼은 몸빼 바지를 입은 시골 할머니가 아니라 참 멋스러운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