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농담하지 말고 진짜로.

by 우자까

얼마 전 65번째 생일을 맞은 엄마에게 20만 원을 용돈 겸 생일선물로 건넸다. 그러자 엄마가 이런 거 필요 없다는 듯 말했다.

"엄마 돈 많아~!"

나는 시큰둥한 톤으로 되물었다. "돈이 어디서 났는데."

"아빠가 요즘 마트에서 일하는 돈 꼬박꼬박 가져오고, 며칠 전에 김장 수고했다고 김형부가 몇 십만 원 주고 가고, 또 엄마 매달 받는 지원금도 있잖아~." 이어지는 말은 "그거 모아서 지금 통장에 960만 원 있어." 이윽고 엄마는 아쉽다는 듯 서둘러 덧붙여 말했다. "천만 원 만들 수 있었는데, 이번 달에 둘째 이모에게 빌린 돈 좀 갚느라."


과연, 돈이 많기도 했다. 몇 개월 전 나는 돈이 없다는 부모에게 670만 원을 한 번에 보내드리기도 했으니까.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960만 원이나 통장에 있다지 않은가.

아부지는 연이은 사업 실패 후 학교 교대 경비와 인천의 마트를 전전하다 마트까지 망해버리고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자 시골로 내려가 마트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마트 사장이 또 개떡 같다고 한다. 빨리빨리를 시도 때도 없이 외치고, 채소나 과일이 상하는 것보다 직원 몸이 상하는 게 백 배 낫다고 생각하기에 아부지는 어딘가에 찧고 박히며 새까맣게 멍든 발톱들을 얻었다. 마트 사장 욕을 할 때마다 아부지는 여러 번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일하니까 별것도 아닌 것 같나 보지." 꽤 억울해하는 모양새였는데, 아부지가 과거에 은행 지점장으로 잘나가는 시절이 있었든 사업으로 연 몇 억씩 벌었든 어쨌거나 지금은 시골 마트에서 하루 11시간씩 주 6일을 일하며 250만 원씩을 겨우 벌고 있으니, 사장은 아부지의 과거 따윈 궁금하지도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엄마는 시골로 내려가기 전에 호텔 청소 일을 하다 욕조에서 미끄러져 갈비뼈가 부러져 얼마간 쉬어야 했지만, 산재 처리로 쉬면서 돈도 받는다고 좋아했다. 내 부모는 일하고 또 일하는 데도 이상하게 돈이 없다. 나도 돈이 없다. 돈 없는 부모에게 돈을 드리느라 매달 꽤 많이 받는 월급이었음에도 남아나질 않았다.


그래도 우리 집에 많이 있는 것도 있다. 그건 바로 각별하고 유별난 정, 걸쭉한 끈끈함이었다. 나는 돈이 없는 부모를 미워하지 않았다. 가세가 특히 어려웠던 때 승무원으로 근무하며 삼사백만 원씩 받는 월급으로 부모의 월세와 내 월세를 감당하면서도, 다른 동료 승무원들이 해외에서 쇼핑하러 다닐 때 관심 없는 시늉을 할 때도, 다들 편안하게 룸서비스를 시켜 먹을 때 한국에서부터 챙겨온 컵라면과 햇반을 끓여 먹을 때도 그랬다.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지금에서야 생각해 본다.


그래도 계속해서 이러다가는 부모의 노후는 물론 나의 앞날까지 어둡기만 할 것 같아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이 돈을 벌 수 있을까 고심했다. 내 앞에 있는 엄마와 아부지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 엄마의 얼굴에 계속 시선이 머물렀다. '뭐, 흰머리에 다 늙긴 했지만서도... 운동은 꾸준히 해서 늘씬하고 군살도 없고. 울 엄마가 그래도 소싯적에 한 미모 했는데, 늙었어도 그게 어디 안 가지.' 우리 가족에게 있는 게 하나 더 있었다. 65번째 생일을 맞은 흰머리 엄마의 고운 얼굴이었다. 마침 얼마 전 찍은 엄마의 프로필 사진이 꽤나 근사해 인스타에 올렸을 때도 지인과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니어모델을 해야 한다며 성화였다.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인스타계정을 하나 팠다. "모델 쑨이, 56년생 시니어 모델. 특기로는 요가, 물구나무 서기. 이제 공중부양만 남았어요" 인스타 프로필까지 완벽하게 만든 뒤 사진을 한 장씩 다 올리고, 모델 에이전시 세 군데에도 사진을 돌렸다.


며칠이 지나고 나도 먹고살기 바빠지자 열정이 슬쩍 사그라드는 데다가, 어떤 메일이나 연락도 오지 않아 심드렁해졌을 때쯤, 혹시나 하고 엄마 계정으로 들어가 DM을 확인했다. 웬 할아버지들의 DM 속에서, 한 무선청소기 브랜드의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모델 제안으로 연락드립니다"


벌렁거리는 콧구멍으로 DM을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는데, DM이 2주 전에 온 것이었다. 아뿔싸, 벌써 다른 모델로 발탁되었으면 어떡하지. 나는 급한 마음에 오타까지 내며 부랴부랴 답장을 했고, 매니저라고 둘러댄 다음 절차에 필요한 사항을 안내받았다. 담당자는 하게 될 촬영이 유튜브 광고이기 때문에 대사를 보내줄 테니, 영상으로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사진이야 끌고 가서 찍었지만, 서울에서 KTX도 없어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 반이나 가야 하는 거리에 있는 엄마에게 대사를 읊게 한 다음 영상까지 찍어야 한다고? 이건 아무래도 무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찰나 담당자가 말을 이었다. "광고료는 100만 원으로 생각 중입니다만" 두말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네, 이번주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일 당장 아침 7시 반 버스를 타고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다는 말이다. 100만 원, 100만 원. 우리 엄마가 시니어모델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 이 기회를 발판으로 삼아 더 많은 모델 일을 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럼 박막례를 스타로 만든 손녀 김유라 PD처럼 우리 엄마를 모델로 만든 딸이 되는 거 아닌가? 65세 엄마에게 나도 새 길을 열어주는 효녀? 생각지도 못한 모델 일이 엄마의 적성일 수도?


이토록 간절한 마음이 되는 까닭은 아무래도 나는 엄마가 마치 농담처럼 돈 많다고 하면서 960만 원 있다고 말하는 진실이,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어서 무섭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사 연습 좀 하고 있으라고 보낸 카톡에 엄마는 이모티콘 하나로 답변이 왔다. "뭐라카노"라는 음성지원이 되는 이모티콘이었다. 이 할미가 진짜 뭐라카노, 진짜... 본인도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는 엄마의 새로운 미래를 내가 열어주리라. 아직 새해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내 새해 목표가 얼떨결에 세워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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