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내 뜻과 반대로

by 우자까

'스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박막례 할머니의 손녀 김유라 피디처럼 우리 엄마를 스타로 만들겠다고 야심찬 마음을 품었지만, 대사를 읊는 엄마의 모습을 마주하자마자 아차 싶었다. 사진이야 어찌어찌 작가의 지시를 따라가며 수백 장 찍다 보면 그중에 한두 장쯤 폼 나게 나온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면, 영상은 또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표정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대사까지 구사해야 한다면 안정적인 발성과 발음에 자연스러움을 넘어선 능청맞음까지 갖춰져야 한 편의 작품 같은 광고 영상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강하게 살아있고, 발성이나 발음도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걸 쑥스러워하기까지 하니 발음은 더 크게 뭉개질 수밖에 없었다. 청소기 업체에서 준 대사 중에는 굉장히 시크한 표정으로 소화해야 할 것만 같은 대사도 있었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좀 살자? (이후 제품명을 당당하게 말하기)"


이 대사를 엄마가 읊으면 이렇게 되었다.

"복좝한 세~상~~, 편하궤 좀~ 살~자~~? (이후 제품명이 영어라 발음이 다 샘)"


듣고 있자니 편하게 청소기를 돌리긴 개뿔, 청소기 따위 구석에 치워두고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급한 마음으로 엄마에게 주문을 재차 넣기 시작했다.


"다시! 다시!!! 엄마, 그렇게 끌면서 말하지 말고오~! 스타카토 식으로 끊어주면서 말하라니까?"

엄마도 슬슬 뿔이 나는지 신경질적으로 받아쳤다. "그럼 그냥 니가 해, 이년아!"


바깥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영상을 찍고, 다음 날 아침에도 보완할 부분을 다시 찍었지만 이건 안 될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서울로 돌아와 편집한 영상을 보냈고, 청소기 업체는 내부 협의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역시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몇 건을 더 놓친 후에야 포토 광고를 노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델 에이전시 여러 곳에 엄마 사진을 뿌렸고, 엄마 계정의 인스타그램에도 엄마인 척하며 간간이 사진을 올렸다. 10년 넘게 요가를 한 엄마는 연체동물처럼 유연했기에 모델이라고 세팅한 계정에 요가하는 모습의 사진은 꽤 어울렸다. 소소한 성과는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요가복 협찬이 들어왔고, TV 프로그램에도 요가하는 할머니로 섭외를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약 8개월 만에 우리는 광고 계약을 따내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대기업 화장품 회사의 광고를!


모델로 발탁된 건 엄마였지만 내가 더 신이 났다. 나 자신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한다면 하는구나 너? 나 좀 쩐다...' 광고 계약서를 쓰게 되자, 내가 엄마를 진짜 시니어모델로 만들었단 승리감에 도취되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주어진 광고는 아땡땡 퍼땡땡의 한 브랜드인 염색 샴푸 광고였다. 샴푸를 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검게 변하는 염색 샴푸여서 흰머리인 엄마가 광고모델로 발탁되기 유리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엄마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고, 그 사진들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모델 에이전시 문까지 톡톡 두드려댄 나 아닌가!


그러니 그렇게 해서 따온 첫 광고 촬영 현장에 어찌 안 갈 수 있으랴. 촬영 스튜디오는 아땡땡 퍼땡땡 회사 내부에 있다고 했다. 아땡땡 퍼땡땡 회사 건물은 용산을 지나가면서만 봐도 멋들어졌기에 꼭 따라가고 싶었다. 회사 내부도 근사한지, 과연 광고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최근 은행으로 이직해 지점으로 발령받은 지 2주밖에 안 되었었고, 하필이면 광고 촬영 날이 25일로 공과금 마감이나 월급 날로 지점에서는 가장 바쁘다고 꼽히는 날이었다. 그래도 내겐 앞으로의 회사 생활보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더 중요했다. 회사야 주 5일 출근하는 건 앞으로도 변함없겠지만, 엄마의 광고 촬영은 또 언제 있을지 몰랐고, 우리 모녀에겐 뜻깊을 시간이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넌씨눈 컨셉으로 부지점장님에게 휴가를 신청했다.


25일 아침, 전날 미리 생각한 코디대로 옷을 입고 엄마와 용산으로 향했다. 엄마는 크게 당당한 태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기죽지는 않은 모습으로, 우아하게 촬영에 임했다. 나는 역사적인 순간을 남기겠다고 계속 사진과 영상을 찍어대며 방방 뛰어다녔다. 촬영장의 모든 스태프가 분주했고, 그들의 머리는 모두 새까맸는데 그 가운데 흰머리의 엄마가 가만히 앉아 조명을 받으며 미소 짓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짓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생경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딸이 엄마 시니어모델 한번 시켜보겠다고 들쑤실 때, 엄마는 기대를 했을까. 엄마는 엄마 인생의 앞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고요하기만 한 엄마의 미소를 보자 마음이 일순 차분해졌다. 나는 핸드폰 카메라를 닫았다. 그리고 어두운 스튜디오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엄마를 그저 바라보았다.



KakaoTalk_20221023_105459119.jpg
KakaoTalk_20221023_105458190.jpg
KakaoTalk_20221023_105454994.jpg
KakaoTalk_20221023_105453541.jpg


이후 어떤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진 않았다. 사실 우리 엄마가 스타가 되는 길은 요원하게만 보인다. 엄마는 박막례 할머니처럼 웃기거나 능청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밀라논나처럼 스타일리시하거나 매력적인 화법으로 MZ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할머니도 아니다. 결정적으로 내겐 김유라 PD처럼 타고난 기획력이 없다. 촬영하는 날 유튜브 영상을 찍겠다고 설치며 남긴 영상은 아직 편집도 못한 채 그대로다. 요즘 아이폰 용량이 없다고 계속 알림이 뜨는데 용량을 잡아먹는 영상부터 삭제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기 이곳에서 우리 모녀는 여전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위대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살아내는 일 자체가 위대한 일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건 그저 살아가는,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듯이 사랑하는 일이다. 20대 시절 가장 좋아했던 소설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엄마의 앞날을 반짝이게 밝히며 부지런히 상상해 보는 일. 내가 나의 부모를 사랑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빠의 상견례나 친척 결혼식을 갈 때 오래간만에 꾸민 엄마의 모습이 아까워 인스타그램 감성 돋는 카페로 굳이 끌고 가, 엄마에게 각종 포즈를 요구한 뒤 사진으로 담아 인스타그램에 한 장씩 올리며 또 상상이나 해보는 것이다. 기깔나는 광고나 협찬이 들어와 엄마의 시니어모델 도전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돈도 좀 만지작 하면 좋겠고, 무엇보다 엄마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엄마 삶에 자꾸 끼어들어와, 노령 연금을 받는 65세면 인생 다 살았지가 아니라 인생 아직도 참 재미지다고 느낄 수 있기를. 엄마의 남은 삶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보다 더욱 다채롭고 풍요롭기를, 바라며 나부터 엄마의 앞으로를 상상하는 여전한 오늘이다.


KakaoTalk_20221023_105034814.jpg
KakaoTalk_20221023_105034814_01.jpg


KakaoTalk_20221023_170746641.jpg
KakaoTalk_20221023_170751646.jpg
TV조선 방송 프로그램에 영천의 할머니 이효리로 촬영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