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승객들과 함께 한 비즈니스 클래스

by 우자까

습기 차고 텁텁한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지는 계절이 왔다. 가을이었다. 여름휴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공항이 조금은 한가로워 보이고, 캐리어를 끄는 발걸음에도 한껏 여유로움이 묻어 나온다.


사무실에 도착해 브리핑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비즈니스 클래스 담당 승무원으로 그날은 인천에서 오사카로 가는 비행이었다. 비즈니스 클래스는 소수의 승객이 탑승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비즈니스 담당 승무원은 비행 전 승객의 모든 정보를 확인한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정보로 이름과 성별, 나이 같은 기본적인 정보도 있고 이전에 승객과 함께 비행했던 승무원이 기록해둔 세세한 정보도 있다. 승객이 선호하는 음료나 와인 취향 및 그 승객만의 특이 사항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비즈니스 클래스를 배정받아 서비스하는 날에는 기억하고 체크해두어야 할 게 많아 부담스럽다. 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나는 브리핑 데스크에 앉아 승객 정보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일 먼저 확인하는 이름에서부터 구수함이 느껴졌다. [강자, 끝조, 순태, 순례, 복희...] 열 명 남짓의 이름이 이런 식이었다. 지긋한 연세가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나이를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일흔에 가까운 할머니들이었다. 아마도 단체 여행이나 효도 관광이지 싶었다. 우리 항공사에서는 기내 서비스를 할 때,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 것이 서비스 원칙이다. 특별해서 외우기 쉬운 할머니들의 이름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으로 비행 준비를 마무리했다.


브리핑을 마치고 다 같이 공항으로 향했다. 인천 공항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배경으로 나오는 장소다. 주인공들 옆으로 꼭 승무원들이 지나가는데, 그 승무원들은 공항을 모델 워킹으로 멋들어지게 누비며 걷는다. 화면 속 그녀들은 하나같이 쭉 뻗은 다리와 곧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캐리어를 한 손으로 끌며 시원시원하게 걷는 모습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행 가기 전에는 가기 싫어서 발걸음이 무겁고, 다녀와서는 녹초가 돼버려 피곤에 전 모습이다. 한 번은 미국으로 출발할 때, 미국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기와 공항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동기 언니는 어깨가 축 처진 내 꼬락서니를 보고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멀리서 걸어오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나는 동기 언니야말로 화장도 다 무너지고 다크서클이 한껏 내려와 주온이 따로 없다고 놀렸다. 아무래도 이런 게 현실 모습인 것 같다.


어느덧 공항에 도착해 들떠 보이는 여행객 사이를 비집고 곧장 게이트로 향한다. 기내에 탑승하자마자 부랴부랴 승객 탑승 준비를 끝내고 지상직 직원에게 탑승 허가 사인을 준다. 살짝 흐트러진 머리를 가다듬고 립스틱을 다시 덧바르면, 비로소 기내를 밝혀줄 만큼 환한 미소로 승객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날 비즈니스 클래스에는 브리핑에서 살펴본 승객 정보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할머니들이 대거 탑승했다. 빨강, 주황, 자줏빛의 화려한 등산복을 입으신 할머니들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파란 좌석과 회색빛의 벽으로 둘러싸인 건조한 색감을 띤 기내가 할머니들의 강렬한 옷으로 활력마저 되찾은 느낌이 들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1월에 출간되는 저의 책에서 이어집니다.

책에 싣게 된 글이라 생략한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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