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하다 보면 종종 크고 작은 난기류와 맞닥뜨린다. 난기류 정보는 비행 전 사전 브리핑에서 기장이 승무원에게 알려준다. 우리는 난기류가 발생하는 때를 메모해 두었다가 그 시간대에는 뜨거운 음료 서비스를 삼가고 승객들이 안전벨트를 몸에 맞게 맸는지 다시 한번 점검한다.
문제는 기장도 운항 통제실도 잡아내지 못한 갑작스러운 난기류다. 항공 용어로 클리어 에어 터뷸런스라고 하는데, 레이더에도 잘 잡히지 않아 예측하기 어려운 터뷸런스다. 대부분 잠시 흔들리다 말지만 심한 난기류를 만나면 비행기가 고도를 잃어 훅! 하니 떨어지기도 한다. 승무원에게 이 난기류란 썩 유쾌하지 못한 손님이겠다. 난기류로 인해 기내가 아수라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커피는 거침없이 솟구쳐 천장을 적시고, 쏟아진 라면에 승객은 화상을 입는다. 기내식은 통로와 바닥에 떨어져 난장판이 되어버리고 혹시나 무거운 짐이 머리 위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상처 입는 일은 순식간이다. 그래서 승무원들은 잔잔하고 평온해 보이는 순간 갑작스레 찾아오는 난기류를 가장 경계한다. 딱딱하고 무거운 짐이 들어 있는 좌석 위 수납함은 잘 닫혀있는지 수시로 체크하고, 뜨거운 음료나 음식을 서비스할 때는 바싹 긴장한다. 놀이공원 자유낙하 기구를 탄 것 같이 균형을 잃고 떨어지며 흔들리는 기체는 승객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두려우니까.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 장거리 비행에서 고요하고 평화로운 비행이 몇 시간씩 이어지다 보면 설마 얼마나 큰 난기류를 만나겠냐는 생각이 들고 만다. 그 가벼운 방심이 얼마나 위험하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미국 서부 비행이었다. 나는 이코노미 클래스 담당 승무원이었고 첫 번째 기내식 서비스를 무난히 이어갔다. 이코노미 클래스는 좌석 간 간격도 가깝고 공간이 넉넉지 않아 식판 하나만 테이블에 놓아도 앉아있는 승객들이 느끼기에는 한없이 비좁다. 다 먹은 빈 접시를 빨리 치워버리고 조금 더 편안하고 싶은 승객의 마음을 알기에 승무원은 배식 때보다 회수 때 속도를 낸다. 그리고 식판을 회수하며 식후 음료로 따뜻한 음료를 제공하는 데 녹차, 커피, 홍차 같은 것들이다.
나는 빠르게 식판을 회수하는 동시에 식후 음료를 물어보고 다시 그것을 제공하기에 여념 없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난기류가 닥쳤다.
부웅!
순간 비행기가 밑으로 쑥 빨려들듯이 내려앉았다. 몇몇 승객은 비명을 질렀고 아직 회수하지 못한 접시들이 통로와 바닥으로 이리저리 떨어졌다. 음료 역시 무자비로 쏟아졌다.
다시 부웅!
기체가 고도를 잃고 내리 떨어지자, 벨트를 매라고 주의를 주어도 잘 안 매던 얄미운 승객들이 찰칵찰칵 버클 채우는 소리를 내며 모범적으로 벨트를 매었다.
나는 기내식 식판 회수를 하는 중이었어서 좌석 사이 통로에 덩그러니 놓인 채 한 손으로는 카트를 잡고 쭈그려 앉았다. 다른 한 손으로는 좌석 팔걸이에 내 팔을 단단히 걸었다. 카트는 100kg을 가뿐히 넘기에 기내에서 가장 위험한 물건이다. 난기류로 인해 기체가 흔들려 카트가 쓰러지거나 제멋대로 굴러가 버려 승객과 충돌하는 일이라도 발생한다면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카트는 승무원이 승객으로부터 꼭 사수해야 한다.
뒤늦게서야 안전벨트 사인 등이 켜짐과 동시에 안전벨트 착용 방송이 흘러나왔다. 기체 흔들림이 조금 덜한 것 같아 카트를 갤리로 돌리려는 순간 다시 한번, 기체가 요동쳤다. 나와 같은 자세로 한 손에는 카트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좌석 팔걸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던 동료 승무원과 카트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일단은 잠잠해질 때까지 이 상태로 기다리자고 눈짓만으로 소통했다.
그러나 터뷸런스는 쉬이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뻥 뚫린 카트 내부를 통해 동료 승무원 얼굴을 보고 있던 나는 이내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카트 위에는 뜨거운 음료로 녹차, 커피, 홍차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커피포트가 흔들려 동료 승무원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 것이다. 그녀의 정수리부터 턱 끝까지 까맣게 흘러내리는 커피 줄기를 보고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얼굴에 화상을 입을지도 몰랐다. 너무 뜨거워 눈도 뜨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리는 그녀에게 당장 응급처치를 해야 할 판인데, 야속하게도 기체는 여전히 곤두박질치듯이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내 눈앞이 깜깜해졌다. 누가 내 머리 위로 담요를 씌운 것이다. 한 겹도 아니고 몇 겹씩 씌워지는지 눈앞이 더욱더 깜깜해지며 담요가 겹쳐지는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아직 카트 위에는 나를 향해 가깝게 놓인 녹차와 홍차 포트가 있었다. 승객들이 커피 범벅이 된 동료 승무원을 보고 내게도 음료가 쏟아질까 봐 담요를 덮어준 거였다.
울컥, 하는 마음이 들었다. 승객을 위한 안전요원으로 존재하는 승무원이지만 승객 역시 승무원의 안전을 위해 주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감동만 받고 있기에는 커피를 뒤집어쓴 동료 승무원이 앞에 있었고 기내 상황도 살펴야 했기에 나는 담요를 빼꼼-히 들어 보았다. 동료 승무원은 물이 아닌 커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그녀는 카트를 잡은 채로 쪼그려 앉아 승객들이 던져준 담요로 눈과 얼굴을 닦고 있었다. 따끔거리는지 연신 눈을 찡긋거리며 내게 갤리로 돌아가자는 사인을 보내왔다. 우리는 카트를 천천히 움직여 갤리로 끌고 가는데, 다시 기체가 크게 흔들려 갤리까지는 가져가지 못하고 갤리 옆 화장실에 브레이크를 걸고 처박아버렸다.
그러고 나서 겨우 승무원 좌석에 착석해 안전벨트를 맸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동료 승무원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뜨거운 커피를 정통으로 맞은 탓에 한눈에 보기에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의 시뻘건 얼굴과 기내를 번갈아 들여다보니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기체 맨 뒷좌석에 앉아 바라본 기내는 통로와 바닥에 여기저기 버려진 식판과 쏟아진 음료로 아수라장이었다. 동료 승무원도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상처를 입었는데, 분명 많은 승객의 크고 작은 부상이 있을 터였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기내를 정리하는 것도 추가된 일이지만 상처 입은 승객들을 위한 치료 대처가 가장 걱정이 됐다.
이내 곧 안전벨트 착용 사인이 꺼졌고, 우리는 재빠르게 기내를 돌아다니며 승객들 상태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