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승객들

by 우자까


조명을 끄니 기내가 금세 어두워졌다. 기내식 제공과 면세품 판매가 끝나고 대다수의 승객들은 잠을 청했다. 몇몇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었기에 기내는 조용했다. 웅웅대는 엔진 소리의 울림만이 가득하게 느껴질 만큼.


고요하고 어두운 기내에서 한 아주머니 승객이 새삼 눈에 띄었다. 조금 전까지는 식사 서비스에만 집중하느라 무심히 지나쳤는데, 조명을 다 꺼버린 기내에서 아직까지도 계속 시선을 창밖에 두고 있는 그녀가 그제서야 새삼 보였다.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에 부스스한 검은 단발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언뜻 보기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다. 창밖으로는 캄캄한 밤하늘만이 펼쳐져 있었는데 말이다. 멍하니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 그녀가 실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그녀의 초점은 어느 한곳을 응시하고 있지 않았다.


다들 쪽잠을 자려고 좁은 좌석에서 애써 몸을 쭈그리거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때우고, 평소 못다 한 독서를 여행길에 길동무 삼아 각자가 조용하지만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기내에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여자. 나는 승객 리스트를 살펴보고는 그 아주머니가 한국인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창가 쪽 좌석이었고 옆 좌석들은 마침 빈 좌석이었기에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좋았다. 오지랖퍼인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안녕하세요. 한국인 맞으시죠? 저도 한국인 승무원이에요. 10시간이나 넘는 긴 비행인데, 영화도 보지 않고 책도 읽지 않으시길래요... 지루하지 않으세요? 제가 재미있는 영화 좀 추천해드릴까요?”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힘없고 피로한 얼굴이었다.

“괜찮아요.”

조금 쌀쌀맞은 말투였다. 무안해진 나는 괜히 말을 덧붙였다.

“아, 네... 아직 도착지까지는 몇 시간이나 더 남아서... 심심할 것 같아서요.”

“정말 괜찮아요. 아, 혹시 괜찮다면 와인이나 한 잔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나는 갤리로 돌아가 와인과 함께 몇 개의 스낵을 챙겼다. 기내식 서비스 때에 그녀가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걸 기억했기 때문이다.

“여기 와인 준비해 드릴게요. 그럼, 언제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세요.”


평소와 같으면 이렇게 말하고는 돌아섰을 나인데, 차갑지만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그녀에게는 무슨 말이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기내에서 만난 한국인 승객이기도 했다.


“이 비행에서 한국인 승무원은 저 혼자뿐이거든요. 그래서 가끔 좀 답답하고 외롭고 그래요. 아직은 일본어를 잘하지도 못하는데... 다 일본인 승무원에 일본인 승객들이니까요. 그러니까 필요한 게 있거나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저 좀 불러주세요. 오히려 제가 대환영이거든요.”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려 했는데 갑자기 아주머니께서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서 그녀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왜 우시냐고, 울지 마시라고 섣부르게 말하기도 애매해서 자켓 안쪽 주머니의 티슈를 건넸다. 그리고 그녀가 숨을 고르며 뜨문뜨문 이어가는 말을 들었다.


"실은 지금 이 비행에... 내 남편이 함께... 하고 있어요."

"남편분이 계셨어요? 몰랐어요. 다른 좌석에 앉아계신가 보네요."

"아뇨. 남편은... 화물칸에 있어요."


그녀는 며칠 전, 은퇴를 앞두고 일본으로 마지막 출장을 간 남편의 갑작스러운 비보를 들었다. 곧바로 남편을 데리러 일본으로 왔고, 지금은 그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일본 출장을 마지막으로 남편이 은퇴하면, 함께 멕시코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도.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친절하게 말 거는 승무원에게 무례하려던 것은 아니라며, 자신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아니라고밖에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준 스낵은 끝내 뜯지도 않고 와인 한 잔만을 마신 채 비행기에서 내렸다.


우리는 승무원이기에 승객들에게 친절함과 정중함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밝은 미소로 응대해야 함은 물론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우리의 서비스에 더욱 환한 미소로 화답해주는 승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승객들도 많다. 때때로 나는 그렇지 않은 승객을 대할 때에, '같이 좀 웃어주면 어디 덧나나', '꼭 저렇게 싸가지 없게 말해야 하나' 하고 곧바로 심통이 났다.


그런데, 남편이 관에 실려 화물칸에 있다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간 내가 얼마나 좁은 시야로 비행했는지를 새삼스레 알았다. 수십, 수백 명의 승객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비행길에 오른다. 어떤 이는 오랜만의 여행으로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어떤 이는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해외 출장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러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한평생 함께한 남편의 비보를 듣고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가는 비행일 수도, 그의 주검과 함께 기나긴 비행길에 오른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내 직업적 자질 중 하나인 서비스와 미소에 똑같이 친절하게 응대해주길 바란 마음이 지금에서야 부끄럽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나의 환한 미소와 웃음이 사치로 느껴질 수도 있다. 오히려 그들에게 괴리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많은 국적과 인종의 승객이 모인 비행기에서, 너무나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비행기를 탄 승객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게 객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이다. 그 후로도 승무원으로 일하며 비행기에서 넋 놓고 있는 승객을 보게 되면 때때로 그녀를 생각했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승객인지, 어떤 상황에 처한 승객인지도 모른 채 편협한 시각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일은 내가 최대한 지양해야 할 일이 되었다. 언뜻 보기에는 그 승객이 과민반응하며 우리 승무원들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하늘 위의 기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그가 해소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감정 표현일 수 있다는 것도 되새겼다. 그런 승객들에겐 때로 미소보다는 그저 묵묵하게 그만의 비행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도.




저는 낯선 도시에 착륙할 때마다 생각했는데요.

모르는 도시, 처음 보는 집들에 수많은 낯선 사람까지.

이렇게 막막하리만치 넓은 세상에 나와 함께하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라니.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동떨어져 있으면 그게 진짜 몸으로 와닿거든요.

그래서 빨리 한국에 가면 내가 더 잘해야지 생각했어요.

그걸 비행 때마다 반복 또 반복... 무한 반복하면서 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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