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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자까 Sep 25. 2022

아부지에게 구석구석 물어보는 일

"아버님이 양이 적은 게 아니라니까?"


치킨을 세 마리나 시키는 뚱목이에게 뭘 그렇게 많이 시키느냐고 핀잔을 주니 바로 저렇게 맞받아친다. 지가 먹고 싶어서 저런다니까 뚱목이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아버님이 모인 사람에 비해 음식량이 적다 싶으면 잘 안 드신다고. 나는 처음엔 아버님 양이 적은 줄 알았는데, 몇 번인가 우리끼리만 모여서 먹을 땐 꽤 많이 드시길래 그때 알아봤지. 아, 아버님께서 양이 절대 적은 게 아니구나! 그러니까 치킨은 세 마리에 소떡소떡까지 시켜야 돼." 뚱목이 말마따나 아부지는 그날 마지막까지 자리에 앉아 남은 치킨과 소떡을 야무지게 해치웠다.


"아버님이 말이 없는 게 아니라니까?"


엄마와 이모들 거기다 나와 사촌 언니들까지 껴버리면 아부지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었고, 아부지야 원체 굳리스너로 우리 사이에서 자리 잡았었기에 적절한 호응과 웃음으로 자리를 지키면 모두가 만족하는 채로 술자리는 무르익어갔다. 다음날 투머치토커들 앞에서 조신했던 아부지를 모시고, 나와 뚱목이는 경북 영천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아버님 서울 올라가는 내내 주무시지도 않고 얘기하시는 거 봤지? 뒷좌석에선 불편하실 거 같아서 아예 앞 좌석으로 모시자고 한 거야." 말인즉슨, 장거리 운전이라 우리는 편안하게 주무시라고 아부지를 뒷좌석에 앉혔는데, 아부지가 잠은 안 자고 뒷좌석 중앙에 앉아 얼굴을 앞으로 쑥 내밀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는 소리다. 아부지 안 불편해? 편안하게 좀 앉아,라고 말해도 잠시 좌석에 몸을 기댈 뿐 다시금 아부지의 얼굴은 나와 뚱목이의 좌석 사이로 동동 떠다녔다.


휴게소에 들려 나는 라면을 뚱목이는 육개장을 아부지는 돈가스 카레를 먹었는데, 라면과 육개장 그릇이 다 비워질 때까지 아부지의 돈가스 카레는 반 이상이 남아있었다. 아부지가 말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 다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부지가 말하는 모습을 TV 시청하듯 바라보며. 테이블에 놓인 돈가스의 튀김 옷은 카레 소스에 축축하게 젖어 무르게 보였다. 아부지 빨리 먹어~ 다 식겠다,라고 말하면 아부지는 하던 말을 마저 내뱉은 뒤 물컹한 돈가스를 카레 위에 얹어 먹었다.

눈치껏 휴게소에서 자리를 바꿔 아부지를 앞 좌석에 앉혔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뒷좌석에 드러누웠고, 아부지와 뚱목이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를 들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두어시간 뒤 아부지를 집 앞에 내려드리고 우리 집으로 향하는 조용해진 차 안에서 뚱목이는 나직하게 말했다. "아버님... 귀여우시다. 되게 말하고 싶으셨나 봐."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부모님의 평소 생각 또는 부모님이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 제작된 질문 카드라는 게 있다. 언젠가 인스타그램 광고에서 본 기억이 난다. 질문 카드에는 좋아하는 음식이나 가수부터 시작해 젊은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되는 일 또는 20살로 돌아간다면 꼭 해보고 싶은 일 등이 적혀있었다. 대뜸 물어보기 어려운 질문을 카드 게임 형식을 빌려 물어보고 부모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감동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광고에서 강조했던 것 같다. 직접 사보거나 해본 적은 없다. 이미 쓰인 질문에 대한 답을 듣는 게 부모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측면으로 나는 내 부모를 더 잘 알기 위한 노력을 했던 것 같지도 않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자리 잡은 역할이 있었기에 그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게 행동하고 딱 그만큼만 서로를 내비쳤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이제 가족이 된 뚱목이가 제대로 바라보고 물어보는 듯했다. 이모들과 엄마와 나는 몇 시간이고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아부지에게 뭔가를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본다 하더라도 아부지는 언제나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관심을 다른 누군가에게로 돌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뚱목이는 아부지만 모시고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아부지에 대해 지레짐작하지 않고 직접 물어보았다. 뚱목이가 아부지에게 자꾸만 무언가를 물어볼 때, 아부지의 말이 끝나고 나서도 다시 또 질문을 할 때, 아부지는 천천히 말을 고르며 정성스레 답했다. 그 모습은 내게 생소하면서도 꽤나 귀여워서 나도 아부지에게 뭔가를 자꾸자꾸 물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막연했다. 물어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편집자님을 집으로 모셔 식사를 한 날, 거나하게 취한 뚱목이는 역시나 대취한 편집자님에게 또 물었다. "모범적인 편집자님이 살면서 해봤던 역대급 일탈은?!?" 편집자님은 답할 생각은 않고 그 질문에 크~ 크~ 소리를 내뱉으며 감탄했다. 이런 질문은 정말 오랜만에 받아본다며 기분이 심히 좋다고 했다. 대취한 사람이 한 말이었기에 대수롭잖게 넘기며 빨리 편집자님의 일탈이나 고백하라고 재촉했다. 대답할 생각은 없다는 듯 편집자님은 계속해서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타인을 궁금해하는 태도는 굉장히 귀한 거라고, 우린 다른 사람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역대급 일탈을 물어본 뚱목이는 갑자기 귀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고,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편집자님의 술잔을 채우며 사람을 잘 알아보신다는 농이나 던졌다.  


여태껏 나는 내가 그저 말이 많은 줄로만 알았다. 뚱목이 앞에서 끝없는 수다쟁이가 될 수 있었던 건, 내가 말을 하기 이전에 앞서 뚱목이가 구석구석 물어보았기 때문인 줄도 모르고. 아부지와 다음에 만나면 아부지가 했던 역대급 일탈이 무엇인지부터 물어봐야겠다. 아부지를 더 잘 알아가는 대화의 시작이 될 질문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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