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니 다들 내 결혼 생활보다는 시댁에 관심이 많았다. 주위에서 시댁 분위기는 어떤지부터 시작해 시어머니에 대해 물어왔다. 결혼한 언니들은 같이 시어머니 욕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은 행복에 겨운 결혼 생활 이야기보다 결혼 이후 딸려오는 불평불만이 내심 듣기 좋을 터였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런 그들을 번번이 실망시킬 수밖에 없었다. 시댁이, 좋았기 때문이다. 먼저 시아버지는 내가 연하 남편과 결혼하는 데 있어서 등을 팍팍 밀어주는 일등공신이었다. 처음 인사드리던 날 아버님은 까탈스럽게 이것저것 묻지 않으시고 날부터 잡자고 하셨다. 오죽하면 내가 아버님 저에 대해 뭘 아신다고 그러느냐고 말했다. 아버님은 아들 놈이 좋다는 여자라면 믿고 맡기려 했는데, 실제로 보니 당신도 맘에 쏙 든다며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치셨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아버님은 나를 볼 때마다 좋아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시어머니는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지 못해 안달인 사람이다. 시댁에 가면 냉장고부터 열어젖히시곤 신김치부터 시작해 각종 반찬, 직접 구운 김, 훈제 계란, 과일을 봉투에 한 아름 담아주신다. 다진 마늘과 다진 고추는 지퍼백에 넣어 네모나게 각진 모양으로 만들어 주시고, 잘게 다진 각종 채소 역시 지퍼백에 넣어 볶음밥을 해먹기 간편하게 주신다.
지난번에는 그것들을 양손 가득 들고 현관으로 나서는 데 뭔가가 봉투 안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뒤따라 나오시던 어머니가 부족하다고 느끼셨는지 먹을 걸 더 넣으셨던 거다. 김치통 위에는 낱개로 포장된 마이쭈가 여러 개 놓여있었다. 김치통 위에 흩뿌려진 마이쭈를 보는데 마음이 물렁거렸다. 마이쭈라니... 마이쭈까지 챙겨주고 싶은 혹은 챙겨줘야 하는 그 마음이라니. 나는 나보다 작은 시어머니를 내려다보며 그저 웃었다.
든든한 지원군인 시아버지와 살뜰히 챙겨주는 시어머니에게 나도 드릴 게 있다. 그것도 무제한으로! 물론 용돈은 아니다. 용돈을 많이 드리면 좋겠지만 전세 탈출을 꿈꾸는 신혼부부라 그건 당분간 좀 힘들겠다(부디 오랫동안이 아니라 당분간이길 바라며). 돈도 들지 않고 별 힘도 들지 않는데 무제한으로 드릴 수 있는 그것은! 바로 말이다 말.
나는 낯간지러운 말을 유독 잘 한다. 어머님 아버님을 처음 신혼집에 모신 날에도 두 분을 거실 소파에 앉힌 다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 저 요즘 정말 행복해요. 뚱목이 같이 유쾌한 남자랑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즐거워서요... 자식이라는 게 키우기 반, 저 혼자 크는 게 반이라지만 어머님 아버님이 뚱목이 잘 키워주시고, 저랑 결혼하는 것까지 밀어주셔서 감사해요. 뚱목이는 어머님 아버님께 귀한 아들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제게도 귀한 남푠이랍니다..."
어머님은 이 소릴 듣고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흘리셨다. 시부모님이 돌아간 뒤 뚱목이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가 말로 하는 표현엔 못 당한다고 했다. 미혼인 친구들은 이 얘길 듣더니 그런 소릴 육성으로 할 줄 알아야 하는 게 결혼이라면 결혼은 절대 못 하겠다고 기겁을 했다. 내 딴에는 딱히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라던가 이쁨이라도 받자고 한 소리가 아닌데 말이다. 나는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감사하면 감사하다고 말해야 속이 시원하고 또 그렇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는 짓이었다.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우리 아부지가 있다. 아부지는 무뚝뚝함의 상징인 경상도 남자임에도 걸쭉하니 된 말을 잘 하신다. 가장 최근 들은 되직한 말은 전화 통화에서였다. 비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전화를 했더니 아부지는 마침 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전화하려다가 꾹 참았다고 했다. 나는 참지 말고 하고 싶을 때 하라고 말했다. 아부지는 그것 참 큰일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매 순간, 매 초 딸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참지 않고 맨날 그냥 전화할 수 있겠느냐고] 되받아쳤다. 결혼식 올리기 전날에는 딸 보내는 심정이 어떻냐고 물었더니 [내 심장 한 점을 떼어주는 것 같지]라고 내뱉은 아부지니까 말 다 했다. 아부지 앞에선 아무리 표현 잘하는 나도 두 손 들기 마련이었다.
그런 아부지 덕분인지 탓인지 나는 웬만한 사랑 표현에는 끄떡 않는 여자가 되었다. 밍밍하거나 시시한 표현만을 해대는 남자들에게 이별을 고했고, 귀찮아질 만큼 표현해 주는 남자와 결혼했다. 그 남자와 나는 작은 전셋집에서 아부지 말마따나 시도 때도 없이, 매 순간, 매 초 표현을 하며 살아간다. 방심한 사이 튼 방귀 소리에 키득거리고, 씻지 않은 모습에도 귀엽다고 볼에 뽀뽀를 퍼붓고, 부드러운 뱃살을 만져야 마음의 안정이 찾아온다며 서로의 배를 자꾸만 쓰다듬는다.
'사랑은 표현하면 할수록 부피가 팽창하고 그 질량도 늘어난다. 삶을 향한 몇 안 되는 믿음이다. 자꾸 안고 말하고 바라보는 게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자 사랑이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따온 구절이다. 사랑과 그 표현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쓰인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며느리 사랑으로 빚지고 있는 시부모님에게 표현하는 수밖에 없다. 어머님표 김치와 반찬이 맛있어서 덕분에 오늘 저녁상도 가뿐하게 차려냈다고 말하고, 상사 욕을 함께 해주셔서 속이 다 시원했다고 말한다. 비행하다 당 떨어졌을 때는 어머님이 챙겨주신 마이쭈를 먹으면서 버텼다고 덧붙인다. 어제 비행에서도 서비스를 마치고 갤리에서 승무원들과 마이쭈를 나눠먹었다. 질겅질겅 씹을 때마다 어금니 사이로 배어 나오는 달큰함이 새벽 비행에서 쏟아지는 졸림을 물리쳐주었다. 어머님이 주신 마이쭈가 오늘 제 비행을 살렸다는 메시지를 퇴근길에 보냈다. 지금 이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들을 나는 지금 이때 하고야 만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기 마련이고, 말이라는 것도 그 타이밍이 중요하니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들을 고이 담아두고 그러다 까먹어 버리고 그러다 익숙하지 않아 입 밖으로 차마 내놓지 못하는 이들을 너무 많이 봤다. 제때 꺼내놓지 않으면 그 말들은 모두 가슴속에 얹혀있다가 곰팡이가 슬고 부패해 원래 성질을 잃어버린다. 용기 있는 자가 사랑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제때 제대로 말할 줄 아는 자가 사랑을 차지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는 오후 다섯 시다.
'사랑은 표현하면 할수록 부피가 팽창하고 그 질량도 늘어난다. 삶을 향한 몇 안 되는 믿음이다. 자꾸 안고 말하고 바라보는 게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자 사랑이다.'
본문에 나온 이 구절은 이서희 작가의 『이혼 일기』에서 따온 거예요. 원래는 출처를 표시했었는데, 제 글을 읽은 친구가 이 글의 흐름과 인용한 책의 제목이 잘 맞지 않는다며 생략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언젠가 읽은 책에서 따온 구절'이라고 쓰긴 썼는데...
그런데요, 그게 그렇게 안 어울리나요? 오히려 상처받고 깨지며 이혼까지 해본 사람이 사랑에 대해 더 잘 깨우치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