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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자까 May 04. 2020

시어머니 울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다 제가 울어버렸습니다만

 결국 어머님만 울었고, 아쉽지만 적어도 한 명은 울게 만들었으니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치르던 날, 식 막바지에 이르러 양가 부모님 몰래 준비한 [부모님 감사영상]을 빔프로젝터에 띄웠다. 영상 구성은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부터 시작해 연애할 때 사진, 부모님 결혼식 사진, 자식들이 어렸을 때 함께 찍은 사진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부모님의 한 생애가 보이고 그 생애를 이어받은 자식이 결혼하기까지의 모습을 시간순으로 구성했다. 거기다 우리 목소리로 내레이션까지 덧입혔다. 나와 남편은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일부러 자지 않고 버티다가 새벽 두 시에 녹음을 했다. 역시나, 목소리가 잔잔하면서도 가냘프게 잘 흘러나왔다. 영상을 미리 본 친구들에게 결혼식 날 부모님 펑펑 울릴 일 있느냐고 한 소리까지 들었다. 바로 내가 바라는 바였다. 부모님을 울리고 싶었다.


 사회자가 운을 뗐다.

 "신랑 신부가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을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아마 부모님도 모르고 계셨을 겁니다."

 나는 시작됐구나 싶어 고개를 슬쩍 돌려 엄마랑 아부지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뭐가 좋다는 건지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서 내게 내밀었다. 엄마를 울리긴 글렀구나 싶어 시부모님이 앉아계신 쪽을 살폈다. 어머님이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댄 모습에서 희망을 엿보았다. 영상은 신랑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했다. 이윽고 '어머니, 아들 둘이 클수록 더 무뚝뚝해져 내심 서운하고 심심하셨을 거 다 알아요. 그런데도 형과 저를 살뜰하게 챙겨주시고...' 부분에 이르자 어머님은 눈물을 빠르게 훔쳐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후 신혼 생활을 이어가다 하루는 어머님과 카페에서 만나 차를 마셨다. 나는 당근 케이크를 떠먹다가 며칠 전에 남편이 한 말이 생각나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그날 제가 비행 착륙이 늦어졌거든요. 뚱목이가 집에서 저녁 준비 중이었는데, 몇 번이나 연락이 왔었어요. 언제 오냐고, 빨리 오라고요. 집에 들어가니까 김치볶음밥을 다 만들어놨길래 유니폼도 안 갈아입고 숟가락부터 들었죠. 제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면서 말하더라고요. 요리하면서 어머님 생각이 그렇게 났다고요.

 요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맛있게 딱 만들어졌을 때 먹어주면 좋겠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언제 오냐고 재촉했던 건데, 자기는 엄마한테 그냥 '늦어 늦어~'라고 얘기한 게 떠올랐대요. 그리고 또 뭐랬지... 어머님한테서 저녁 해놨다고 문자가 오면 '나 밥 먹고 들어갈 거야~'라고 했다면서."


 말 마치기가 무섭게 어머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울리려던 게 아니었는데 어쨌든 우셨다. 나는 어머님, 왜 우세요 하면서 티슈를 건네드렸고, 어머님은 걔가 장가가더니 철들었네...라며 읊조리듯 말했다. 그간 건조한 두 아들을 키우며 메말랐을 어머님의 마음 한구석이 느껴졌다. 내게는 애정표현을 과하게 해대는 남편도 어머님 앞에서는 여느 집 무뚝뚝한 아들내미로 돌아갔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답답했다. 나는 어머님에게 종종 남편의 속내를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님 생신에 시부모님과 아주버님까지 모시고 외식할 계획을 짰다. 무난하게 가려고 한정식집 리뷰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남편이 말했다. 울 엄마, 피자나 파스타 같은 거 좋아하는데. 남편은 이태리 레스토랑을 검색하고 있었다. 진작에 말할 것이지... 나는 그런 남편을 흘겨보며 어머님이 좋아하는 메뉴로 먹으러 가자고, 파스타 맛집으로 찾아보라 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며 외식할 적에도 이태리 레스토랑에 자주 갔다. 이태리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스페인, 태국, 인도 식당으로 엄마와 아부지를 데려가는 걸 좋아했다. 내가 굳이 데려가지 않으면 매번 가던 식당만 가서, 먹던 음식만 먹는 부모였기 때문이다. 와플이나 아포가토, 딸기 요거트 아이스크림도 나와 처음 먹어본 그들이었다. 엄마랑 아부지가 내 작은 손을 잡고 산과 바다, 놀이동산으로 데리고 나가 세상 구경을 시켜준 것처럼, 나는 부모에게 새로운 음식으로 그들이 가보지 못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까닭으로 시골 할머니 댁에 찾아갈 때마다 미스터 피자를 사갔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피자 이름을 몰랐지만 입안 가득 퍼지는 짭조름하면서도 새콤한 맛에 홀려 앉은 자리에서 두 조각을 거뜬히 먹었다. 그렇게 일 년에 딱 두세 번, 피자를 드셨다.


 검색 끝에 남편이 선정한 이태리 레스토랑에 모여 식사를 했다. 아버님 어머님 모두 맛있게 먹는 눈치였다. 나는 시부모님에게 남편이 고르고 골라낸 동네 맛집 레스토랑이라고 말했다.

 "뚱목이가 어머님은 피자나 파스타 좋아한다고 하면서 찾아보더라고요. 앞으로 저희랑은 갈비찜이나 감자탕같이 흔히 갈 수 있는 식당 말고, 다른 나라 음식들 먹어보러 다녀요. 세계 각지로 여행 가서 현지 음식까지는 못 먹어도 말이에요."

 어머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지만 눈물방울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울지 않으셔서 다행이었다.




 주말에는 어버이날을 맞아 우리 집으로 시부모님을 초대했다. 거실에 옹기종기 앉아 과일을 먹다가 TV로 싸이의 '아버지'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어버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뮤직비디오를 보여드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버지' 노래는 가사도 눈물 나지만 뮤직비디오에서 펼쳐지는 애니메이션 영상을 함께 보면 울지 않고는 못 배긴다. 노래가 미처 다 끝나기도 전부터 나는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어머님 아버님 얼굴을 살짝 훔쳐보니 말짱했다. 나는 뭔가 억울한 심정이 들어 왜 울지 않으시냐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런 나를 보며 시부모님은 네가 왜 우냐며 웃으셨다. 그렇게 이번에는 내가 울고야 말았다.





싸이, 『아버지』 가사 일부


'아이들은 친구들을 사귀고 많은 얘기 나누고

보고 듣고 더 많은 것을 해주는 남의 아빠와 비교

더 좋은 것을 사주는 남의 아빠와 나를 비교

갈수록 싸가지 없어지는 아이들과

바가지만 긁는 안사람의 등살에 외로워도 간다

여보 얘들아 아빠 출근한다


여보 어느새 세월이 많이 흘렀소

첫째는 사회로 둘째 놈은 대학로

이젠 온가족이 함께 하고 싶지만

아버지기 때문에 얘기하기 어렵구만

세월의 무상함에 눈물이 고이고

아이들은 바뻐보이고 아이고

산책이나 가야겠소 여보

함께가주시오'





 시댁 가기 전: "오늘은 어떻게 어머니를 감동하게 해 울게 하지?"

 시댁에서 나온 후: "어머님이 이제 내성이 생겼나. 안 우시네..."

 차에서 뚱목이는 왜 자꾸 엄마를 울리려고 하냐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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