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승무원으로 비행을 하다 보면 봤어도 보지 못한 척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소등해 어두워진 기내에서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은밀히 코를 후벼 파고 있는 승객을 봤을 때 얼른 고개를 돌려야 하는 경우가 그렇다. 다시 슬쩍 봤는데 그 승객이 코딱지를 손끝에서 돌돌 굴리고 있으면 과연 그것이 어디로 튕겨나갈지 차마 보지 못하겠기에라도 고개를 돌린다. 발이나 머리를 긁적이다가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는 승객을 보면 혹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무섭다. 뭐 아무도 잘못한 건 아닌데, 승객 입장에서는 본인의 내밀한 순간을 승무원이 잡아내 보고 있었다면 남부끄러워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봤어도, 보지 못한 척을 해야 한다.
이와 달리 승무원에게는 보이지 않는 부분도 알아서 눈치채고 발견해야 할 때가 있다. 아기를 돌보느라 잠시 쉴 틈도 없어 보였던 엄마 승객이 있으면 먼저 나선다. 잠시 아이를 봐드릴 테니 화장실을 다녀오시거나 갤리에서 한숨 돌리며 음료라도 시원하게 드시고 오라는 제안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장면을 본 척해야 하고, 보지 못한 척해야 할지는 비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터득하게 된다.
그럼 이번 비행에서는 누구를 내가 먼저 알아봐 주고, 누구는 못 본 척해야 할까. 비즈니스 클래스 담당을 맡은 만큼 더욱 섬세한 서비스가 필요할 테니, 그간 쌓아온 눈칫밥이 제대로 발휘되기를 바라며 비행을 시작했다.
비행기에 오르면 모든 승무원은 각자 맡은 업무에 따라 굉장히 분주하다. 비상 장비와 기내 시설 이상 유무를 먼저 파악하고, 기내식 수량과 상태 또한 확인한다. 서비스에 필요한 물품은 알맞게 탑재되어 있는지 기내 면세품 판매를 위한 기기 작동에는 이상이 없는지를 살피고 마지막으로 승객 탑승 전 기내 청결상태를 점검한다. 승객들을 3분이라도 빨리 탑승시키기 위해 이 시간 동안만큼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느라 동료들과 눈 한 번 잘 마주치지 않는다.
정신없는 승객 탑승 준비를 마치고 보딩 사인이 떨어지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유롭고 사근사근한 미소를 얼굴 만연에 띠고 승객들을 맞이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풍경이다. 가족 단위 승객, 연인으로 보이는 승객,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탑승하는 친구 승객, 그런 그들에 비해 혼자서 여행인지 출장인지를 떠나는 나 홀로 승객까지. 나는 무난해 보이는 승객들에게 아침 인사를 활기차게 건넨다.
탑승 막바지에 이를 때였다. 쉰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남성 승객이 펭귄 인형을 꼬옥 안고 기내 안쪽으로 걸어왔다. 딸 인형인가. 승객은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이었고 주변에 딸로 보이는 아이는 없었다. 그는 자리에 앉더니 펭귄을 그의 무릎에 조심스레 앉혔다. 무릎 위에 앉은 펭귄은 무척이나 커서 승객 머리 위로 한 뼘은 족히 솟아있었다. 그는 펭귄 등을 쓰다듬었는데 그 손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잠시 멈칫하고 바라보다가 그가 내 구역의 승객이었기에 탑승 환영 인사를 하러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손님. 오늘도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비행 동안 함께할 날으는 돼지입니다. 비행 중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내 인사를 낚아채듯이 그는 곧바로 이어 말했다.
“네, 고맙습니다. 아! 여기 제 친구 펭귄에게도 인사하세요. 지난번 아시아나 항공에서는 인사드렸는데, 오늘 이 항공사는 얘가 처음이거든요. 인사해요!”
나는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잠시 상황 파악을 하느라 입이 벌어졌다. 뭐지, 이건. 나 놀리는 건가? 펭귄한테 인사를 하라니. 반려견이나 반려묘한테 인사한 적은 있어도 이건 인형인데. 그래도 인사를 하긴 해야겠지? 경험상 이건 맞장구를 쳐야 한다.
“아, 네네. 안녕하세요...? 펭귄상? 반갑습니다.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펭귄의 머리를 뒤쪽에서 살짝 눌러 숙이게 했고, 펭귄과 나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는 흡족한 표정이었고, 이내 펭귄을 옆 좌석에 앉혔다. 그리고 두 장의 탑승권을 보여주었다. 그는 펭귄상을 위해 비즈니스 좌석을 나란히 두 좌석이나 산 것이다. 오마이갇. 나도 아직 한 번도 못 타본 장거리 비즈니스 좌석을 이 펭귄 인형이 탄다니. 어쨌거나 마무리는 지어야 했다. 네, 손님...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승객이 펭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죄송한데요.. 얘한테도 안전벨트 매 주셔야죠."
아, 나는 계속해서 이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건가. 누가 옆에서 손끝으로 톡, 하고 치기라도 하면 웃음이 터져 나올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묵직한 얼굴을 보는 순간, 그가 진심으로 펭귄상의 안전을 염려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에라, 나는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펭귄 배 위로 안전벨트를 매면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자, 이제 안전벨트도 꽉 매어 드렸습니다. 안전합니다!"
나는 펭귄상을 안전하게 앉힌 후에야 삐질삐질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누르며 그에게서 돌아설 수 있었다. 갤리로 돌아가자마자 동료들에게 이 난감한 상황을 알렸다. 비즈니즈 클래스 사무장은 일단 승객이 좌석도 두 좌석이나 샀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승객 요구에 맞춰 응대하라고 지시했다. 오노... 그 응대를 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를 지칭하는 소리였다.
이륙 후 이어지는 비행에서도 나는 펭귄상을 하나의 인격을 가진 존재로 대해야 했다. 승객이 펭귄상에게 시원한 얼음물(펭귄이니까 얼음)을 가져다 달라고 해서, 얼음물을 펭귄상 앞에 놓아드리며 시원하게 드십시오,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행히 펭귄상이 기내식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기내식사 이후 대부분 승객이 잠을 청할 때, 펭귄상의 좌석 또한 180도로 눕혀 담요도 덮어드렸다. 그는 옆에서 내가 펭귄상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시각각 살펴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별도의 주문을 더했다. 나는 승객의 눈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펭귄상을 대했다.
이번 비행에서 내가 알아봐야 하는 승객은 바로 이 펭귄상이었다. 보이지 않는 펭귄상의 표정을 잘 읽어내고, 펭귄인데도 서늘한 기내 온도가 춥게 느껴질 수 있으니 담요도 덮어드리고, 뭐 그렇게 알아서 눈치껏 서비스해야 하는 승객이 얘였다. 먹고살기 힘들다더니, 그 말이 꼭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그렇게 펭귄상에게 서비스를 이어나가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보이지만 못 본 척해야 할 승객이 있었다. 그는 팔 한쪽이 없는 승객이었다. 펭귄상과 인사를 나눈 후에 얼떨떨한 상태가 되어 그에게 인사를 건넬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에게서 재킷을 건네받으며 펄럭거리는 팔자락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는 파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왼쪽 팔의 셔츠 아랫부분이 상당히 헐거워 보였다. 팔꿈치 아래로 팔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그에게 비장애인과는 다른 서비스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펭귄상과의 만남으로 잠시 정신이 나갔지만, 이내 나는 그를 틈틈이 살펴보았다. 그는 정장을 멀끔하게 갖춰 입은 성인 남자였다. 가방에서 책과 노트북을 꺼내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한 손으로 생활하는 게 그에게는 편안한 일상처럼 몸에 익어 보였다. 그런 그에게 오히려 지나친 도움이나 관심은 불편할 수 있다. 나는 그의 팔이 없는 게 보이더라도, 팔이 있는 것처럼 바라보고 서비스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그에게 노골적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그가 눈치챌 수 없는 선에서 힘을 보탰다. 그에게 기내식 메뉴 설명과 함께 메뉴 선택 사항을 물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좌석 옆 테이블에 위치한 헤드폰을 집어 꼬인 줄을 풀면서 대화를 나눴다. 메뉴 선택 사항을 모두 듣고 나면 기내 영화로 재밌는 것이 많으니 한 번 살펴보라고 말하면서 헤드폰을 건넸다. 왠지 한 손으로는 짜증스러울 만큼 엉킨 헤드폰 줄을 풀기 버거울 것 같아서 한 행동이었다.
그가 페트병 물이나 음료를 요구하면 뚜껑을 살짝 한 번 비튼 후 제공해서 한 손으로도 쉽게 페트병 뚜껑을 돌릴 수 있도록 했다. 스낵 서비스로 라멘을 드리기 전에는 간장 소스와 고춧가루 소스 가장자리를 살짝 뜯어서 그가 짜내기만 하면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승객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할 수 있게끔 최소한으로 도움 줘야 하는 것을 매번 생각했다. 그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불필요하거나 과한 도움을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열두 시간 비행 내내 도와달라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과연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일을 해결해서인지, 나의 모호한 도움이 뒷받침돼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그에게서 도와달라는 말이 나오게 하고 싶지 않았던 내 비행 목표가 달성된 듯 보였다.
보이더라도 보이지 않는 척, 보이지 않더라도 보이는 척. 그 모호한 경계선에서 한쪽으로 휘청거리지 않으려 애쓴 비행이었다. 승객의 한 쪽 팔이 없는 게 보이더라도 섣부른 도움을 먼저 묻지 않으면서 두 팔 멀쩡히 있는 사람처럼 그를 대해야 했고, 펭귄상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무언의 요구를 얼척없게도 알아채서 내주어야 했다. 펭귄상은 내 서비스에 만족했을지 모르겠지만, 펭귄상 옆에 앉은 승객은 그럭저럭 넘어가주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비행과 승객과 승무원인 내가 있었다. 나는 놓치지 않고 보았어야 할 장면과 기꺼이 눈 감았어야 할 장면들을 헤아릴 수조차 없지만, 그래도 잘 해보겠다고 약속을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미더운 승무원이 되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그날 비행은 펭귄에게도 서비스 할 수 있는 나의 역량을 엿보았기에 흐뭇했다고 말하고 싶다.
동기 언니는 인형 동호회 사람들이 단체로 사람만 한 인형을 들고 탄 적이 있다고 해요. 니키짱, 유코짱 무슨 무슨 짱의 인형들. 그들은 여자 사람이었기에 기내식도 먹는다고 했대요. 이렇게 우리도 먹고 살자고 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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