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바로 진상 승무원

by 우자까

"승무원으로 비행하며 받는 스트레스요? 많죠... 유니폼은 하도 타이트하게 나와서 불편한데 비행 내내 구두 신고 서서 일하느라 발은 불어 터지죠... 잦은 기압차로 항공성 중이염과 이명 현상은 달고 살지, 불규칙한 식사 때문에 소화 불량은 계속 이어지지.. 거기다 시차로 잠 못 들 때의 괴로움은 어떻고요.."

승무원마다 비행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천지차이다. 하지만 모든 승무원들이 공감하는 비행 스트레스 요인으로는 '진상 승객'을 결코 빼놓을 수 없겠다.


큰 캐리어를 발 언저리에 내려놓고는 승무원한테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며 좌석 위 수납함에 넣으라는 제스처를 보이는 승객은 부지기수다. 뭣 모르던 시절에는 짐을 혼자서 확 들었다가 진짜 너무 무거워서 욕하고 싶었다(아오씨 이걸 나 혼자서 들라고? 이런 양심도 없는 우라질!). 실제로 많은 승무원들이 승객들의 짐을 수납함에 넣어주다가 손목이나 허리에 무리가 가서 통증을 얻는다. 노인이나 어린이 승객 또는 나와 비슷한 체격의 여성 승객분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드린다. 정말로 얄미운 승객은 '너는 짐이나 올려'라는 식으로 무거운 가방을 우리에게 무작정 맡겨버리는 키도 크고 몸도 건장해 보이는 남성 승객이다. 지금은 요령이 생겨 이런 태도의 승객에게는 어금니 꽉 깨물고 "같이 들어주시겠습니까 손니이임~?"이라고 말하면서 말 끝을 한껏 올린다.


한 번은 그런 식으로 내게 맡겨진 캐리어를 살짝 들어 올렸다가 혼자 힘으론 부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짐 주인에게 함께 들어 올리자고 권했고 승객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같이 짐을 들어 올려 주는가 싶더니 이내 손을 떼버렸다. 나는 끙끙대며 캐리어를 수납함에 넣으려다가 갑자기 묵직해져 버린 캐리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고, 짐이 손아귀에서 빗겨져 나와 떨어졌다. 혹여나 수납함 바로 밑에 앉은 다른 승객의 머리 위로 짐이 떨어지는 일은 막아야 했기에 잽싸게 손끝으로 캐리어가 떨어지는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짐은 정통으로 내 얼굴을 향해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캐리어의 바퀴가 얼굴 광대와 볼을 날카롭게 할퀴었고, 얼굴에서는 선명하고도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짐 주인 승객은 내 얼굴에 맺힌 핏방울을 똑똑히 보았을 텐데도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끝까지 캐리어는 알아서 넣어달라고 말하더니 유유히 그의 좌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도리어 다른 승객들이 얼굴에서 피가 난다며 걱정해 주었고, 보다 못한 몇몇 분들이 벌떡 일어나 짐을 수납함까지 올려주었다. 나는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갤리로 돌아가 그제서야 얼굴에 난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심하게 팬 것은 아니었기에 급한 대로 연고를 바른 다음 반창고를 붙였다.


그날은 얼굴 한쪽 가득 반창고를 붙인 채 기내 서비스를 이어나갔다. 날라리 승무원 컨셉 한 번 잘 잡았다며 동료들과 농담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도 그 승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비행을 마치고 호텔에서 샤워를 하는데 방수 밴드가 아니어서 그런지 상처 부위가 따끔거렸다. 어쩌면 얼굴에 흉이 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기를 통해 쏟아지는 따뜻한 물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나는 샴푸나 비누가 상처에 닿지 않게 조심하며 씻었다.

이제는 일일이 분노하고 상처받기 이전에 먼저 속으로 조용히, 가만가만히 외친다.

'참 수고가 많으십니다.'

갑과 을이기 이전에, 돈을 내는 사람과 돈을 받는 사람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으로서 적어도 그렇게는 하면 안 된다는 본보기를 내게 몸소 보여주시느라 '아주 수고하십니다'를 마음속으로 외치는 셈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기내에서는 방긋방긋 잘 웃는 승무원들이 비행기만 벗어나면 화를 더 잘 낸다는 소리가 있다. 레스토랑이나 카페 또는 상점에서 받는 서비스에 신경을 곤두세운다는 말인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우리가 기내에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되게 노력하는 만큼, 성의 없이 서비스하는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이 더 잘 보이고 그래서 더 화가 나기도 한다. 나도 가끔 가다 이렇게까지 무례할 수 있나? 생각이 드는 직원을 보면 울컥하니까 말이다. 그러다 부친상을 당한 선배님과 함께 비행한 후에는 그럴 일도 아니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버지의 암 투병 기간 동안 비행 나가기가 무서웠다는 선배님은 결국 비행으로 한국을 떠나있을 때, 아버지를 보내야 했다. 장례식 며칠 후 선배님을 기내에서 다시 만났는데 선배님은 비행 내내 동료들과 승객들에게 밝게 웃으며 일했다. 나는 선배님에게 감히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환하게 웃지 않으셔도 된다고, 승객들도 분명 이해할 거라고.

공과 사는 구별되어야 하고, 직장에서는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고 임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이 직장에 나오기까지 어제 또는 오늘 어떤 절망을 맞이했는지도 알 수 없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니 작은 일 하나하나에 못마땅해 하고 곧바로 핏대를 바득바득 세우기보다는 잠깐 멈춰 서야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부처나 보살이어서가 아니고, 상대를 위함도 결코 아니다. 나 자신을 지저분한 과정으로 이끌고 가 종국에는 내가 스트레스 받지 않기 위해서다. 잘못은 상대방이 먼저 시작했더라도 잘잘못을 따지는 과정에서는 내가 피해자가 되기 십상이다. 타인을 향한 분노와 미움이라는 감정을 품고 있는 곳은 내 마음이기 때문에 결국 내가 치졸해지고, 내가 불행해진다.

그리고 나는 바로 다음 소개하는 비행에서 이런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심어준 천사 승객을 만나고야 말았다.


이후의 이야기는 1월에 출간되는 저의 책에서 이어집니다.

책에 싣게 된 글이라 생략한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