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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자까 Jun 04. 2020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

핸드폰 좀 꺼주세요

                                                                                                                                     


 습기를 가득 머금은 눅진한 침대에서 잠을 설쳤다. 비릿한 기운과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침대보였다. 일어나 호텔 방 창문을 비스듬히 열어젖히자 후덥지근한 바람이 무겁게 밀려왔다. 처음 방문해본 땅에서 맞는 바람의 촉감과 석양의 질감을 느끼며 새삼 헛헛해 했다. 체류 시간이 짧은 탓에 잠만 자기에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아쉽다거나 서운한 건 아니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비행과 공항과 호텔 사이에서 감상적이기는 쉽지 않았다. 권태는 느리지만 뚜벅뚜벅 다가온다.*


 나는 차창 밖으로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을 얼마간 바라보다 낮은 한숨과 함께 창을 닫았다. 다시 돌아갈 시간이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화장을 하고 유니폼을 재빨리 다리고는 깔끔하게 차려입었다. 이제는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길 만큼 지겹도록 끌고 다닌 캐리어를 잡고 방에서 나섰다. 캄보디아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이었다.


 다시 모인 동료들은 각자 피로함을 가린 채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돌아가는 이번 비행을 마치면 이틀간 주어질 오프만이 내겐 위안이 되었다. 호텔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사이, 버스에서 내려 공항에 들어서는 사이, 공항 브릿지에서 비행기로 올라타는 그 사이사이에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코와 입으로 들이차는 텁텁한 공기에 숨이 턱, 막혔다. 동남아 특유의 묵직하고도 권태로운 바람이었다.



 

승객들이 하나둘씩 탑승하기 시작했다. 승객들의 몸에 바깥공기의 비릿한 활기와 열기가 묻어 있었다. 나는 오늘 비행도 무탈하기를 바라며 나와 함께 인천공항으로 돌아갈 승객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모든 승객의 탑승이 완료되고 비행기 문이 닫혔다. 안전한 이륙 준비를 위해 모든 승객이 좌석에 착석하였는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는지. 승객들이 좌석벨트를 몸에 맞게 단단히 매었는지. 혹시나 발생할 비상 탈출 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테이블이나 좌석 등받이, 발받침이 모두 원위치에 있는지. 좌석 하단에 놓인 짐이 잘 정리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륙 직전 가장 중요한 단계인, 전자기기 사용 금지 안내를 승객에게 알려야 했다. 전자기기 사용은 기장과 관제탑과의 소통에 잘못된 신호나 잡음을 일으켜 방해가 될 수 있다. 항공 사고는 이착륙 시에 가장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착륙할 때 조종실과 관제탑의 원활한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승무원들이 이륙 전 전자기기 사용 금지 안내를 몇 번씩이고 승객에게 주지시키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기내를 둘러보기 위해 몇 발자국 옮기지 않아 나는 평소와 다른 기내 풍경과 맞닥뜨렸다. 내 구역의 승객 모두가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보통 이륙 직전에는 몇 명의 승객만이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거나 테이블을 펼쳐 입국 서류를 작성하기에 바쁘다. 얌전히 앉아만 있는 승객들 속에서 몇 안 되는 이런 승객들의 행동은 쉽게 보이기에 주의를 바로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승객 대부분은 승무원의 지시 사항에 곧바로 따른다. 그날도 나는 몇 명의 승객만을 골라낼 요량으로 기내를 살펴보려 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이 전화하느라 바빴고, 몇몇은 손가락을 빠르게 놀리며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내 구역의 기내 안전 점검을 마치고 사무장에게 이륙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야 했기에 당황했다. 두세 명의 승객에게 간단히 안내하고 안전 점검을 마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 대다수 승객이 캄보디아인이었기에 나는 목소리를 높여 승객들을 향해 영어로 외치기 시작했다.


 “Please turn off your cell phone to take off soon!"


 그들은 내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을 귀에 더 가깝게 대며 통화를 계속했다. 메시지를 작성하는 손놀림은 더욱 바빠 보였다. 나는 의아했다.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몇몇은 아무 대답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이 모든 일이 지겹고도 피로하게 느껴졌다. 느리지만 권태는 뚜벅뚜벅 다가온다.* 가만히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이번에는 신경질적으로 힘껏 외치려는 순간, 동료 승무원이 다가와 나를 갤리 구석으로 끌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천천히 입을 뗐다.


 “이 노선 처음이라고 했죠? 저는 팀 비행이라서 많이 했거든요. 저기 핸드폰 붙들고 계신 분들…… 종종 있어요. 한국으로 장기간 일하러 가시는 분들일 거예요. 이륙하기 직전까지 가족들과 통화하느라 그래요. 저도 처음엔 몰랐는데 사정을 알고 나니까 이해하겠더라고요. 한국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고, 가족들의 생계는 저들의 손에 달려 있는데 타지에서 어떤 험한 일을 하게 될지 자신들도 막연하고 막막하기만 할 테고. 게다가 한국에 도착하면 그땐 전화비도 비싸니까 마음껏 통화도 못 할 테니……. 그래서 저렇게 마지막까지 핸드폰을 손에서 못 놓더라고요. 하여튼 이 노선 특징이 그래요. 그러니 조금 어렵더라도, 다정하게 안내해 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웃음이 나오지 않았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기내로 다시 나가니 여전히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와 계속해서 통화하고 있었고,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안전한 이륙 환경을 만들기 위해 모든 전자기기를 꺼달라고 말하려는데, 그렇게 해달라고 말하려는데,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시간으로부터 놓여난 것처럼 그들에게 가까이 서지도 못한 채로 말을 잇지 못했다. 심장에서 서늘하고도 먹먹한 통증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비행기는 소리 없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 장면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비행 하나를 끝내면 마냥 후련하기만 할 것 같았던 마음이 어떤 망설임 또는 주저함으로 바뀌던 순간을. 많은 순간이 희미해졌지만 이렇게 조금은 분명하게 남겨진 장면이 있다.


*박형서, 『권태』 인용



 [날돼 사전]

 비행기 모드 :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깥세상과의 연락을 차단하는 행위.

 또는 휴식은 개뿔, 비행기에서 일하느라 바깥세상과 연결이 끊어지고 마는 상태. 당연히 전자를 선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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