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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자까 May 16. 2020

신입 승무원의 패기

                                                                                                   

 신입 승무원에게는 OJT 비행 첫날이었고 나에게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그냥... 비행하는 날이었다. 늦은 오후 비행이었고 딱히 할 것도 없어 회사로 일찍 출근했다. 파우더룸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신입 승무원은 파우더룸에 들어와 나를 보자마자 허리를 꾸벅 숙이며 대차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사무장님! 오늘 OJT 비행 승무원 황주현입니다!”


 앳된 얼굴에 생기가 가득했다. 살구빛 반짝이는 섀도와 핑크빛 블러셔가 매끈한 피부에 차르르 감기듯 표현되어 혈색을 더했다. 스프레이는 얼마나 뿌려댔는지 몰라도 잔머리 하나 없이 묶은 쪽머리에서 윤이 반지르르하게 났다. 유니폼도 빳빳하게 다려 입어 구김이 없었다(그에 비해 내 유니폼은 쭈글, 얼굴 눈가는 쪼글). 누가 봐도 각이 제대로 잡힌 신입 승무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합니다. 오늘 첫 OJT 비행이죠?”

 “네, 사무장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너무 각 잡힌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슬며시 새어 나왔다.

 “네... 브리핑까지 시간 여유가 좀 있으니까, 브리핑 준비하도록 해요.”

 “네! 사무장님!”


 신입 승무원은 나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매뉴얼을 펼쳐 들었다. 머리 드라이를 마치고 뒤돌아보자 고개를 매뉴얼에 처박을 기세로 읽기에 한창인 모습이었다. 저 때쯤에는 브리핑 때 사무장이 던질 질문이 무서울 테고, 기내 시설과 장비가 아직 낯설기만 할 테지. 비행기를, 비행을 글로 열심히 배우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저러다 목이랑 어깨에 담이나 오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론에 빠삭한 신입은 브리핑 때 내가 묻는 말에 곧잘 대답했다. 회사에서 나와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도 내내 긴장한 모습이었다. 허리는 곧추세우고 고개를 빳빳이 들었지만, 기장님과 선배 승무원을 따라 맨 뒤에서 재바른 걸음으로 쭈뼛쭈뼛 걸어오는 모양새가 퍽 귀여웠다. 발갛게 달아오른 양 볼이라도 꼬집어 주고 싶었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사무장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 무게 잡느라 참았다.


 비행기에 올라 비상 장비 확인과 기내 보안 점검을 했다. 신입 승무원은 선임 승무원 옆에 찰싹 달라붙어 선임 승무원의 동선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렇게 우리는 기내에서 승객을 맞이할 준비를 모두 끝내고 지상 직원에게 보딩 사인을 보냈다. 승객들이 탑승하기 전에 신입 승무원을 불러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주현 씨. 승객 보딩 중에 해야 할 일들 우선순위 숙지하고 계시죠? 비상구열 좌석 브리핑은 따로 제게 보고해 주시고요. 승객 짐 케어 잘 해주시고... 혹시 좌석 이동 원하는 승객 있으면 지상 직원에게 빨리 말해야 하니까 바로 보고하세요.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한 징후나 낌새 같은 게 있으면 정보 공유해 주시고요.”


 그녀는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사무장님! 알겠습니다!” 어후, 당차다 당차! 오히려 내가 신입의 패기에 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예, 그래요... 오늘 즐겁게 비행해요, 우리. 그럼 이만 주현 씨 구역으로 가서 준비하세요.”

 “네! 사무장님!!”


 말끝마다 사무장님, 사무장님... 이라고 하는 것도 귀여웠다. 내가 신입 때도 저랬을까. 신입 승무원이던 시절의 나를 바라보던 선배들의 눈빛과 오늘 신입 승무원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이 같은 결로 느껴졌다(그래, 선배들도 나를 귀엽게 봤을 거라고 확신할 순 없다). 


 곧 승객들이 몰려왔고 나는 비행기 문 앞에서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탑승권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안쪽 창가 쪽 좌석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썰렁하던 기내가 어느새 가득 들어찬 승객들로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탑승이 마무리될 즈음 한두 명의 승객들만이 뜨문뜨문 비행기에 올라탔다. 나는 기내를 살피기 위해 살짝 고개를 틀었고, 기내 뒤쪽에서부터 불안한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신입 승무원을 볼 수 있었다. 눈썹을 한껏 찡그려 눈꼬리마저 처져 보였다. 그녀의 동그란 눈과 마주친 나는 순간 가슴이 쿵, 하며 무슨 일이 났구나 싶은 생각에 두려웠다. 뭐지? 무슨 일이 난 거지. 쟤가 뭘 잘못했나? 이상한 승객이라도 있나? 잠깐이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신입 승무원은 내 눈을 피하지 않은 채로 똑바로 걸어오더니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다급하게 입을 뗐다.


 “사무장님! 비상구열 좌석 브리핑 안내 마쳤습니다!!!”

 나는 맥이 풀려 무어라 할 말이 없어 어리숙하게 대답해버렸다. “아, 예... 그래요. 감사해요.”

 “네! 사무장님!”


 신입은 다시 한번 심각한 표정을 굳건히 하며 그놈의 사무장님을 외치더니 돌아서서 기내로 향했다. 그렇게 그녀는 비행 중에도, 비행이 끝나고 다시 회사를 향할 때도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일관하며 내게 모든 보고를 성실히 했다.


 “사무장님! 커피 팟 준비했습니다!”

 “사무장님! 주무시던 승객이 깨어났습니다!”

 “사무장님! 화장실 청소를 한 번 했습니다!”

 “사무장님! 17A 승객이 내리실 때, 오늘 비행 굉장히 좋았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사무장님! 사무장님! 사무장님!"


 나는 그럴 때마다 흠칫하면서 그녀의 성실한 보고를 들었고, 그녀는 매번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한 얼굴이었다. 함께 사무실에 돌아와 OJT 비행 평가표를 작성하고, 피드백을 준 다음 회사에서 나왔다. 집 방향이 달라 길모퉁이에서 헤어지기 직전, 나는 신입에게 오늘 비행 수고했다며 악수를 청했다. 신입 승무원의 손이 헐겁게 내 손바닥에 겹쳐졌다. 그렇게 헐거운 악수를 하니 그녀는 드디어 그녀 나이다워 보이는 배시시 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는 다음 비행을 기약하며 돌아섰고, 그녀와 나의 캐리어 끄는 소리가 길가에 울려 퍼졌다. 돌돌돌, 돌돌돌.


 해가 지자 급격히 쌀쌀해진 바깥 날씨였지만, 나는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살살 달구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얼굴에 와닿는 알싸한 바람이 시원하게만 느껴졌다.


인스타그램 승무원 웹툰  @flyingwoopig


 집에 돌아와 그녀에게 카톡을 했습니다. 

 "근데 오늘 살구빛 섀도우랑 블러셔 뭔지 좀 알려줄 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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