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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내일도맑음 May 08. 2020

짧은생각(나의 따뜻한 음식)

나의 따뜻한 음식

  새벽 즈음, 구석에 내팽개쳐있던 이불을 잠결에 더듬게 되는 요즘이다. 산머리 언저리에 걸쳐있던 구름도 어느덧 훨씬 위로 올라가 있다. 날씨가 변하는 만큼 날짜도 흘러 추석이 코앞이다.(2019년 추석 즈음에 쓴 글이다)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스트레스로 명절을 맞는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이다. 명절이 기대된다. 명절이 기대되는 이유가 명절 음식인 걸로 보아 확실히 나는 아직이다.


  어려서부터 먼 길을 가 도착한 할머니 댁은 먹을 것으로 넘쳤다. 전기 프라이팬 위에서는 전들이 쉴 틈 없이 부쳐지고 있었다. 복도부터 기름 냄새가 가득하였다.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여러 음식이 요리되어 딱 하나를 짚을 수 없는 음식냄새가 집안을 메웠다. ‘항상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수많은 음식 중 내가 최고로 생각하는 명절 음식은 양념게장이었다. 명절 음식으로 양념게장이 웬 말인가 싶지만 명절 때 할머니 댁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최고의 명절 음식이었다.


  맛은 더 귀했다. 양념게장 하나만 있으면 다른 명절 음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선 젓가락으로 양념을 한번 찍어 먹는다. 살짝 맵다고 느끼면서도 계속 찍어먹게 되는 맛이다. 어쩜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매운지 모른다. 살짝 양념 맛을 봤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먹을 차례이다. 큼지막한 몸통 한 덩이를 밥 위에 얹는다. 밥에 양념을 살짝 덜어낸 뒤 한입에 콱 문다. 흐물하면서도 부드러운 게살이 입안으로 흘러넘친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게살과 아슬아슬한 양념의 맛이 섞이면서 환상의 맛을 낸다. 양념게장 만의 맛을 충분히 즐겼다면 양념이 살짝 묻어있는 밥 한 숟갈을 입에 넣는다. 점점 달달해지는 밥과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씹을수록 깊은 맛을 낸다. 밥도둑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표현으로 부족하다. 밥까지 먹었는데 아직 입안이 맵다면 물김치 한 숟가락을 떠먹거나 손에 집히는 대로 전을 먹으면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할머니께선 맛있게 먹는 내가 대견하셨는지 항상 양념게장을 먼저 챙겨주셨다. 그런데 양념게장은 참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재료 준비부터 만만치 않다. 싱싱한 게를 사기 위해서는 포구나 어시장을 가야하는데 할머니 댁이 있는 부천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이 소래포구이다. 그나마지 결코 가깝지 않은 길이다. 게 수확이 좋지 못한 경우는 소래포구를 가더라도 싱싱한 게를 구하기 어렵다.


  요리는 게 다듬기부터다. 게를 다듬는 일은 정말 성가시다. 우선 게의 배딱지를 뒤집어서 깨끗이 씻는다. 먹지 못하는 부분을 잘라내고 먹기 좋게 조각내야한다. 게 껍데기가 여간 단단한 것이 아니라 자르는 것이 쉽지 않다. 딱딱한 집게발은 먹기 좋게 두드려서 금을 낸다. 힘이 많이 들어간다. 무치는 것도 힘이 필요하다. 양념을 꼼꼼히 잘 발라서 섞어 잘 숙성시킨다. 며칠간의 숙성이 끝나면 맛있게 상 위에 오를 수 있다. 게를 준비하는 것부터 상에 오르기까지 많은 손이 간다.

  내가 할머니 양념게장을 더욱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사실 우리 할머니께서는 생선을 전혀 못 드신다. 비린내가 나는 음식은 전혀 입에 대시지 않는다. 생선을 다듬은 칼과 하수구, 싱크대를 식초로 닦아서 완전히 비린내를 없앨 정도이다. 이런 듯 비린내를 싫어하시는 할머니께서 비린내를 참으시면서 만드는 것이  양념게장이다. 정작 당신은 못 드실 게장을 만드는데 이런 큰 힘을 쓰시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과 정성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양념게장을 제일의 명절음식으로 생각하는 이유이다.


  할머니께서 연세가 드시면서 입맛이 바뀌셨다. 전혀 드시지 못하시던 어패류와 생선을 조금씩 드시기 시작하였다. 그 중 고향에서 어머니가 가지고 오는 갈치는 비린내가 전혀 안 난다고 하시면서 잘 잡수신다. 어머니의 음식은 이렇듯 힘이 있었다. 살찌우는 힘, 감동시키는 힘, 위로하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어머니의 힘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손재주가 많으셔서 항상 여러 가지를 시도하셨다. 베이킹도 하나였다. 언제부턴가 우리 집에 오븐이 생기고 나서부터 어머니는 빵을 구우셨다. 배운 것을 바로 우리들에게 선보이셨다. 피자, 케이크, 상투과자, 초콜릿 쿠키, 식빵 등 종류가 엄청났다. 나와 내 동생은 집안에 풍기는 빵 냄새를 맡으며 하교를 했고 우리의 오후 간식은 꼭 빵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반장이었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내가 학생 때만 해도 ‘반장 엄마’는 신경 쓸게 참 많았다. 학교 행사에 동원도 많이 되었고 각종 지원도 많이 했어야 했다. 체육 대회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반장 엄마’로서 우리 반에 간식을 넣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때 어머니는 특기를 발휘하셨다. 바로 소보로빵이다.


  소보로빵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밀가루와 이스트 등을 넣고 반죽한다. 반죽 후엔 기다림의 시간이다. 발효가 되어 반죽이 부풀 때까지 기다린다. 이때, 빵 위에 올라갈 소보로를 만들거나 오븐을 예열해놓는다. 땅콩버터나 설탕, 계란 등을 넣고 섞어 보슬보슬한 소보로를 만든다. 동생이랑 옆에 있다 소보로만 주워 먹어도 그렇게 맛있을 수 가 없었다. 빵이 부풀고 소보로가 준비되면 빵 위에 소보로를 살포시 붙인다. 그리고 예열이 된 오븐에 굽는다.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바닥은 살짝 까맣고 위는 노르스름한 소보로빵 완성이다.


  어머니는 완성된 소보로빵을 일일이 비닐에 넣어서 포장까지 하셨다. 그리고 목이 메지 않도록 친구들이 먹을 우유도 준비하셨다. 간식은 행사 당일에 친구들 앞으로 갔다. 그런데 순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피자와 치킨, 햄버거에 익숙한 세대였던 친구들은 너무나 고전적인 간식을 보자 실망한 모습이 역력하였다. 포장된 빵을 보니 모양도 일정하지 않고 제각각이었다.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였다. 그래도 감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듯 어머니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라고 잘 먹으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감추고 ‘맛있겠다, 고맙다’고 하면서 포장을 뜯었다. 친구들은 맛있게 먹기 시작했지만 첫 반응을 본 나는 너무 창피하였다. 소보로빵과 우유가 초라하고 볼품없이 보였다. 햄버거를 사지 않으신 어머니가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그 후 난 소보로빵을 볼 때마다 그때 그 상황과 창피한 감정이 떠올랐다.

  최근 이 소보로빵이 나를 한 번 더 부끄럽게 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어느덧 서른이 넘어 그때 그 일은 가물가물하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나를 보더니 문득 그 때 어머니가 만드신 소보로빵이 참 맛있었다고 하였다. 순간 나는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부끄러움이 가장 컸다. 예전에 그 창피함과 달랐다. 어머니의 마음과 고생을 모르고 빵 모양과 친구들의 반응만 보고 창피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어머니께도 너무 죄송했다. 참으로 철이 없었다. 다른 누군가가 해준 음식도 아니고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고생을 하면서 만든 음식인데, 친구의 반응만으로 창피해하는 내가 정말 철이 없었다.


  소보로빵은 사소하고 흔한 빵이다. 쉽게 살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절대 사소하지 않다. 어머니의 사랑과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 담겨있다. 소보로빵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이미지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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