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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내일도맑음 Jun 18. 2020

어디까지 포기해야 할까?

짧은 생각


오늘도 여지없다. 벌써 3주째다.

출근하면 매일 같은 하소연을 듣는다.   

  

“나랑 남편은 정말 안 맞어, 내 얘기를 도대체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니깐!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니가 뭘 알아? 아까 설명했잖아! 이래.”     


흔한 중년 부부의 갈등과 하소연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2절로 이어진다.    

  

“글쎄, 남편이 우리 집을 자꾸 팔자고 하는 거야, 6개월 동안 한 명도 집 보러 안 오다 요새 몇 명 오기 시작했거든 그러니 지금이 팔 때라는 거지, 근데 나는 팔기 싫어 죽겠어 내가 거기서 얼마나 살았는데 말이야 근데 남편은 또 내 말을 죽어도 만들어요.”     


오랜 추억이 있는 동네를 떠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이사할 때 나도 마음이 참 싱숭생숭했다. 하소연은 그칠 줄 모르고 3절까지 이어진다.     


“어쩔 수 없이 집을 팔아야 할까 봐, 근데 내가 알아보니 우리 집 가격이 상승세인 거 있지? 지금이 7억인데, 더 팔기 싫어지는 거야.”     


남편 헐뜯기로 시작된 이 이야기의 끝은 하소연일까? 자랑일까? 기어이 4절까지 이어진다.  

   

“근데 그 돈으로 이사를 하려고 해도 갈 데가 없어, 난 어디로 가야 하지? 이러다가 집 없는 난민이 되는 거 아니야?”     


기가 찬다.

그런데 애국가만큼 긴 하소연이 돌림노래가 되고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마이크를 이어받는다.   

  

“그러게요. 집들이 왜 그렇게 비싼지 저랑 친구가 비슷한 시기에 집을 샀는데 송도 우리 집은 겨우 2억 올랐거든요. 근데 서울 친구 집은 두 배가 됐다고 하잖아요. 아오! 얼마나 부럽던지!!!.”  

   

이 정도면 그 자리에 있던 내가 잘못한 거다.     


  사회에 나오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던 집은 원룸밖에 없었다. 처음 집은 허름하고 오래된 원룸이었다. 어찌나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져서 지어졌는지 창문을 열면 옆 건물 같은 층의 창문이 코 앞이었다. 천장과 벽의 곰팡이는 동거인이었다. 그마저 월세였다. 적은 월급에 매달 35만 원의 큰돈을 냈었다. 돈 모으기는 참 어려웠다. 


  그래도 어찌어찌 돈을 모아 전세 원룸으로 옮길 수 있었다. 훨씬 신축 건물이었고 지하철역과 가까워 예전과 비교하면 호텔이었다. 하지만 5평이었다. 누워서 양팔과 양발을 펼치면 사방의 벽을 만질 수 있었다. 침대도 못 넣을 공간이니 말 다 했다. 집에 들어가면 내가 텐트에 들어가는지 트렁크에 들어가는 건지 헷갈렸다. 최소한의 공간에 최소한의 것들만 갖추어져 있는 딱 그 정도의 공간이었다. 거기서는 6년을 버텼다. 책상과 의자를 놓고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집으로 옮긴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다. 곰처럼 미련하게 견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오래되고 작은 아파트로 옮겼다. 지금 집은 침실에 침대를 넣어도 공간이 남고, 빨래 건조대를 바로바로 접지 않아도 공간을 쓸 수 있다. 거실에는 책상과 의자를 놓을 수 있었고 거기에 앉아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얻은 건 꼬박 10년을 버티고 나서다.     


  이런 내가 그런 하소연을 들으니 마음이 너무 답답하였다. 답답하다 못해 속상했다. 답답한 마음에 위를 보지 말고 나 같은 사람을 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분은 “아이고 우리 엄마랑 똑같은 소리를 하네 라며 깔깔깔 웃는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좋은 날이 올 거야. 시간이 재산이니 나를 믿어라.”라고 한다. 그런 분이 왜 당신 어머니 말씀은 귓등으로 듣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나마 친구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친구들보다 돈을 빨리 벌었고 그만큼 돈을 모을 수 있는 기간도 길었다. 그리고 연애, 결혼, 내 집 마련의 꿈 등 당찬 포부를 갖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포기와 오기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마음 편하게 살 것인가?

오기를 갖고 아등바등이라도 높은 곳을 향해 살 것인가?  


  삼포라는 말은 벌써 한참 옛말이다. N포다. 포기가 아메바도 아니고 3에서 끝을 알 수 없는 N으로 늘어났다. 무엇을 또 얼마만큼 더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혼자 사는 집을 고민하고 있지만 출산과 육아, 그리고 살아가야 할 미래 등 포기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 산더미이다.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포기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사회 현실이다.      


  2020 예상 출산율이 0.8 정도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너무나 복합적이라 딱 집어 얘기할 수 없지만 젊은 세대의 포기가 늘어나면 오를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희망이 없는 나라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      


  며칠 사이 6.17 부동산 대책이 나오면서 모든 사람이 시끌시끌하다. 내가 사는 지역도 조정대상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모든 지역을 다 규제하면 어떻게 하냐며 사회주의 나라냐고 하고, 어떤 이는 정부보다 먼저 움직여 선점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또 어떤 이는 이번에는 꼭 성공하길 바라고 있다. 나는 솔직히 어떤 자세로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쪽도 저쪽도 나의 자리는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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