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 싶은 책 세상
#인문사회과학 #연대 #책읽기모임 #책똥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인문사회과학 책방이다. 은종복이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1993년 4월 1일부터 2019년 6월 12일까지 26년 두 달 11일 동안 일하고 한 달 13일을 쉰 후에 문을 열었다. 첫직장도 책방이고 죽어도 책 무덤에서 죽겠다는 책방 일꾼 은종복은 책을 좋아한다.
명륜동 책방 이름을 이어받은 이유가 있나요?
서울 풀무질은 1986년 2월에 처음 생겼어요. 제가 네 번째 일꾼이고요. 풀무질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요. 대장간에서 담금질할 때 낫이나 망치를 만들기 위해서 바람을 일으키잖아요. 그게 우리말로 풀무질이에요. 근데 속뜻은 따로 있어요.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회지 이름이 풀무질이었어요. 당시 대학 학과마다 학회지가 있었는데 태양, 횃불, 들불 같은 센 이름을 붙였어요. 풀무질도 그 연장선에서 잘못된 군사정권에 불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이름 지은 거지요. 그런 책방을 인문사회과학 책방이라고 했고 서울에만 100개, 전국에는 300개가 넘었어요. 그런데 지금 다 없어지고 서울대학교 앞에 ‘그날이 오면’ 하고 성균관대학교 풀무질이 남았는데, 제가 서울살이가 힘들고 일할수록 은행 빚을 져서 그만두려고 했어요. 근데 젊은 분들이 하겠다고 해서 후임들에게 모두 주고 왔어요. 서울 풀무질은 제주 풀무질 두 배가 넘는 40평 규모에 책이 많을 때는 5만 권이 넘었고요. 우리나라 인문학책이 제일 많은 곳이었어요. 그때 출판사 빚이 일억이 넘었는데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얻은 서울 아파트를 팔아서 갚았어요. 풀무질 정신을 잇고 싶어서 후임들 허락하에 여기를 제주 풀무질로 이름 지었어요.
명륜동에서 일할 때는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겼나요?
어린이 인권. 하나는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일, 그리고 농사꾼, 노동자 도시 빈민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 이렇게 3가지 방점을 두고 일했어요. 후임이자 이제 그곳 대표 세 분은 이것에 보태어서 여성 인권과 동물권 그리고 채식 운동과 기후변화 운동에 방점을 두고 열심히 하더라고요. 내가 못 하는 일을 해서 자랑스럽고 고마워요. 이제 저는 이곳에 와서 인문사회과학 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서가에 3천권의 책을 채웠어요. 뒤쪽 서가에 1,500권이 있는데, 꼭 읽었으면 하는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모아뒀어요. 특히 (한 편을 가리키며) 이쪽 서가는 서울 후임들이 보내 달라고 해서 제가 100서를 뽑아 놓은 거예요.
제주 풀무질은 명륜동 풀무질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네요.
제대로 잇진 못 해요. 왜냐하면 제주 나들이 오는 분들이 세상을 맑고 밝게 바꾸는 데 다 뜻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풍경 좋은 곳에 몸과 마음을 쉬러 와서 이런 책을 많이 사진 않거든요. 안에 있는 이 책들을 병풍이라 그래요. 실제 매출의 8할이 앞쪽에 있는 시, 소설 산문… 그런 책들에서 생겨요. 그렇다고 그런 책이 가볍단 것이 아니에요.
책방으로서는 매출을 내는 서적을 들여야 할 텐데, 왜 인문사회책방에 비중을 더 두는지요?
책방이 단지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동네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문화를 만드는 오아시스 역할을 하기 위해서예요. 저는 책방을 열자마자 바로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시작했고 지금은 고전 읽기 모임, 동네 농사하는 분과 함께 하는 제주 주경야독 모임 등 다섯 개 책 읽기 모임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 아들이 20대만 참석하는 풀무질 독서 모임 풀독을, 아내는 바느질, 타로 모임 들을 간간히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동네 사람들과 많이 가까워졌어요.
책방을 운영하는 굉장히 중요한 이유는 책 모임을 하면서 서로 연대하는 거군요?
맞아요. 사실 제가 좀 쉬려고 내려왔거든요. 26년 책방을 하다 보니까 몸도 마음도 약해져서 책은 좀 덜 팔고 조용히 살려고 그랬어요. 근데 책방을 오래 했다는 이유로 요구받는 일이 있더라고요. 제가 그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책방 일도 해야 하고 몸은 지친 상태라 자괴감이 들어요. 서울에 있을 때는 후원금 연대나 서명만 하면 되는데, 여기 제주도는 난개발 문제가 있잖아요. 그런 일을 막는 데 열심히 하지 못할 때 힘들어요. 그래도 책 읽기 모임은 좋아해요. 사람을 통해서 그런 논의를 활성화할 수 있어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책 읽기 모임 사람들이 그곳에서 할 수 있게끔 연결하는 역할을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근데 대표님은 어디에 가나 쉬지 못하는 에너지를 가지셨어요.
책방에서 그냥 삶을 마감해야죠(웃음).
제주 풀무질이 어떤 역할을 하기를 원하나요?
제주 풀무질의 역할 이전에 지역이 활성화되고 로컬브랜드가 힘이 생기려면 세 가지가 이뤄져야 해요. 하나는 노동 시간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노동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기본생활 임금이 보장돼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짚을 것은 오랫동안 압축 성장을 하다 보니까 우리는 돈이 있고 시간이 있어도 놀 수 있는 문화가 없다는 거예요. 옛날 알타미라 고대 사람들은 노동을 하루에 3시간도 안 했대요. 나머지 시간은 그림 그리고 춤을 췄대요. 우리가 그렇게 되려면 마을에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해요. 그러니까 마을 사람이 지은 것을 그 마을에서 소비하고 그것이 또 다시 생산하는 데 힘이 되어야 해요. 그렇게 되었을 때 화학비료나 어떤 돈을 벌기 위한 살충제를 쓰지 않고도 유기농법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갈 수 있어요. 그러면 책방 제주 풀무질에서 책방에 오는 사람에게 얘기하고 싶은 건 딱 하나예요. 저는 책이 똥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밥을 먹으면 누구나 똥을 누잖아요. 지난날에는 그 똥이 거름이 돼서 먹을거리를 만드는 가장 좋은 영양분이었어요. 언제부턴가 똥은 빨리 치워야 할 쓰레기가 돼버렸잖아요. 근데 그 똥이 지난날처럼 농작물을 살리는 좋은 거름이 된다면 어떨까요? 책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어떤 책이 좋고 어떤 책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글 밥이건 간에 독자에게는 생각의 똥이 나와요. 그 똥이 자기도 모르게 마음 깊숙한 곳에 전해지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맑고 밝은 빛으로 나갈 때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책을 사건 안 사건 책방에 이렇게 나들이를 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