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달라도, 마음은 흐른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

by 이서언


우리가 같은 장면에서 웃고 울 수 있다는 건


언어가 달라도 우리는 함께 웃고, 울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자막의 세계에서도,

드라마 속 인물의 말투나

눈빛에 마음이 젖어드는 순간은

언어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온다.


처음 ‘일드(일본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을 때,

그 낯선 억양과 말투가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며 나는 점점 대사의 뉘앙스를,

그들이 멈칫하는 ‘間(마)’의 의미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런 감정, 이런 표현도 있구나’ 하며

언어 너머의 문화를 배워나갔다.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다 보니

익숙한 대사들이 어느새 입에 붙고,

‘이 말은 꼭 써보고 싶다’는 문장이 생겼다.

발음을 따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말의 감정도 익히게 된다.


처음엔 영어 대사를 놓칠까

자막을 따라가기에 바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배우의

표정과 어조에서 의미를 읽기 시작했다.

“아, 저건 화난 게 아니라 슬픈 거였구나.”

“이런 뉘앙스는 우리말엔 잘 없는데…”


그렇게 언어는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장면에서 웃고 울고,

감정의 흐름을 공유하게 된다.


결국 언어를 배우게 만드는 힘은

시험 점수나 스펙이 아니라

‘이 감정을 알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되곤 한다.

그래서 드라마 한 편, 예능 하나가

한 사람의 언어 여정을 시작하게도 한다.



콘텐츠는 그래서 마법 같다.

누군가에겐 그저 ‘드라마’지만,

누군가에겐 외국어를 배우는 계기가 되고,

누군가에겐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를 향한 그리움이 된다.



음악은 가장 가까운 언어다


가사를 전부 알아듣지 못해도

좋아하는 외국 노래를 따라 부르며

위로를 받았던 날들이 있다.

딱히 이유 없이 울고 싶을 때

플레이리스트 하나로 하루를 버텨냈던 밤도 있다.


프랑스어 가사는 도통 모르겠는데,

그 선율이 주는 애틋함과

멜랑콜리는 왜 이리 마음을 건드릴까.

가끔은 내가 어떤 나라의

노래를 듣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 감정의 파도에 몸을 실은 채 하루를 지나온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 속에 가장 밀접하게

녹아 있는 언어는

어쩌면 음악인지도 모른다.



외국어, 꾸준함의 비밀은 좋아하는 마음


누군가는 말한다.

외국어는 재능보다 꾸준함의 싸움이라고.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 얹고 싶다.

좋아하는 마음이 결국 그 꾸준함을 만든다고.


한참 영화들에 빠져 있을 때,

자막 없이 내용을 조금이라도

먼저 이해하고 싶어서

단어장을 만들고, 혼잣말을 따라 하고,

발음을 흉내 내던 시절이 있었다.

재미와 호기심, 그리고 ‘더 알고 싶다’는 그 마음이

나를 책상 앞으로 데려다 놓았고,

결국 ‘언어’라는 끈을 쉽게 놓지 않게 했다.


그게 공부든, 일이든, 관계든

붙들게 만드는 건 늘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언어가 다르면,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진다


문화가 다르면, 오해는 더 자주 찾아온다.

하지만 그 낯섦 속에서 우리는

더 정성스럽게 설명하고, 더 천천히 듣는다.

무언가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표정, 몸짓, 말투까지도 전보다 신중해진다.


일본어에서 느꼈던 것처럼,

어떤 단어 하나에도 예의를 담으려는

문화 앞에서는

나도 덩달아 조심스러워졌고,

배려라는 감각이 말 안에 스며들었다.

한마디를 꺼내기 전,

이 표현이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스스로 되묻곤 했다.


비슷한 조심스러움은

영어를 사용할 때도 있었다.

솔직한 표현이 자연스러운 그곳에서는

내 말투가 너무 돌려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적도 많았다.

그래서 조금씩 배워야 했다.

‘Yes’와 ‘No’를 명확하게 말하는 법,

하지만 그 안에 예의를 담는 방식.


중국어에서는 또 달랐다.

가끔은 너무 직설적인 말투에 놀란 적이 있었고,

내가 쓴 표현이 오히려 너무 간접적이라

의도를 잘못 전달한 적도 있었다.

‘괜찮아요’라고 말했는데

정말 괜찮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서운함이 생겼던 적도 있다.


언어는 단어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나라의 방식으로 감정을 전하는 법’을

함께 배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엔,

이 낯섦과 거리감이

서로를 더 배려하게 만들었다.

쉽게 말하지 않고, 쉽게 판단하지 않고,

다시 한번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는 마음.


언어가 다르면, 오히려 더 신중해진다.

그리고 그 신중함은 종종

더 깊은 신뢰로 이어졌다.


언어와 감정은 연결되어 있다


나는 좋아하는 드라마로 계절을 버텼고,

좋아하는 노래로 감정을 숨겼고,

좋아하는 언어로 세계를 확장했다.


어쩌면 이 모든 건

‘말이 통해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보다,

‘마음이 닿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앞으로도

좋아하는 것을 통해 언어를 배우고,

언어를 통해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고,

그 사람들 안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노트


말이 다르지만, 마음이 같다면

우리는 충분히 통할 수 있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내가 외국어를 배우고 싶었던 순간은 어떤 장면이었나요?

•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이 통했던 기억이 있나요?

• 좋아하는 콘텐츠가 당신의 세계를 어떻게 넓혀주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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