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지 못했던 진짜 이유

조용한 아이가 된 이유

by 이서언


처음 미국 초등학교에

갔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하얗고 밝은 교실, 키가 크고 표정이

익숙하지 않았던 아이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앉아 있던 저.


누구도 저를 특별히 모른 척하거나,

적대적인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건 더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말이 트이지 않는다는 건,

그저 ‘소외’라기보단

아예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날 이후 저는 조용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무안하고 어려운 마음에

스스로를 감추는 데 익숙해졌고,

말을 아끼고, 대신 배시시 웃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덜 불편해 보일 수 있었으니까요.



가끔은 생각합니다.

왜 나는 그때,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단어는 알고 있었고, 문장도 떠올랐습니다.

말하고 싶다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고요.

그런데도 끝내, 입을 닫았습니다.

웃으며 넘기고, 고개를 끄덕이고,

그저 “괜찮아요”라는 말로

감정을 정리해 버렸습니다.


진심이 아니었으면서도요.



외국어를 배우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틀려도 괜찮아요.”였습니다.

실수해도 좋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하지만 저는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이 표현이 혹시 불편하게 들리진 않을까?’

‘내가 말하는 방식이 이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진 않을까?’


그 조심스러움은 어느새

‘질문’이 아니라 ‘침묵’을 선택하게 만들었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저는 조금씩 변했습니다.

하루에 단어 하나,

문장 하나씩 말하는 횟수가 늘어가고,

누구보다 조심스러웠던 그 아이는

어느새 의견을 갖고,

스스로의 생각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말을 배우면서 저는

제 마음을 이해하는 법부터 배웠습니다.

그다음엔 타인의 말도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고요.


그리고 저는,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건 단순히 문장을 잘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느낀 것을, 내가 느낀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날들의 저는,

충분히 말할 수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그 순간,

관계가 어긋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꺼내는 데 필요한 건

언어 실력보다

용기였다는 걸,

저는 그때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 역시, 조금씩 배워가는 중입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

상대의 언어로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법,

그리고 때로는

말을 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에게도

부드럽게 말 걸어주는 법을요.


“그때 말하지 못했던 너를, 나는 이해해.”



말이 트이면, 삶도 트인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

통할 때 가능한 일이겠지요.


앞으로 또 제게 새로운 언어,

새로운 삶, 세상들이 트인다면,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이번에는 그 말을 삼키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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