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짐의 기쁨[The Joy of Humility]

by 지누리즘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려는 힘에 이끌립니다. 더 나은 삶, 더 큰 성취, 더 높은 자리를 향해 나아가고 싶어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지금보다 더 좋은 곳을 향해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인간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움직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장과 발전을 삶의 중요한 방향처럼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길을 오래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질문이 생깁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지, 아니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어온 길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순간입니다. 사람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끊임없이 영향을 받습니다. 더 좋은 것을 경험할수록 기준은 높아지고, 더 높은 곳을 경험할수록 이전의 삶은 점점 평범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는 인간 마음의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적응’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어떤 환경에도 금세 익숙해집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마음이 다시 디폴트 값(default)으로 돌아가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디폴트 값(default)이란 기본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기본값, 다시 말해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다시 돌아가게 되는 기본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큰 성공을 이루거나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면 처음에는 큰 기쁨을 느낍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상태에 점점 익숙해집니다. 처음에는 특별했던 것이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되고, 마음은 다시 자신의 디폴트 값(default), 즉 기본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더 많은 것을 가져도 영원히 더 행복해지지는 않습니다. 잠시 올라갔다가 다시 마음의 기준선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한 번 올라간 기준은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더 높은 것을 경험할수록 이전의 상태는 만족스럽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더 높은 것을 바라보고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위로만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어느 순간 멈추기도 하고, 때로는 내려오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그때 사람은 이전보다 더 큰 허탈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미 마음의 기준이 높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망이 커질수록 마음은 오히려 더 불안해질 때가 많습니다.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압박,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기대 속에서 마음은 끊임없이 긴장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삶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끝없이 무언가를 쫓는 상태가 계속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삶에는 또 다른 길이 있습니다. 더 올라가려 애쓰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한 걸음 낮아지는 길입니다. 더 많이 가지려 하기보다 조금 덜어내고, 더 크게 보이려 하기보다 조용히 작아지는 삶입니다. 겉으로 보면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뜻밖의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삶의 방향을 단순한 말로 표현했습니다. 두 벌의 옷이 있다면 한 벌이면 충분하다고 말했고, 누가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도덕적 권유가 아니라 욕망에서 벗어나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말이었습니다. 더 많이 가지려 하기보다 기꺼이 나눌 수 있는 마음속에서 인간은 소유에 묶이지 않는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불교에서도 비슷한 통찰이 나타납니다. 불교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행위를 보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보시 중에서도 특별히 강조되는 것이 무주상보시입니다. 이는 베풀면서도 그 행위에 마음을 붙잡히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내가 준다는 생각에도 머물지 않고, 상대가 받는다는 생각에도 머물지 않으며, 베풀었다는 공로조차 마음에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나누는 마음입니다.


심리적으로 보면 이런 태도는 인간을 비교와 경쟁의 세계에서 한 걸음 물러나게 합니다. 우리는 늘 누가 더 앞서 있는지, 누가 더 많은 것을 가졌는지를 바라보며 자신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욕망을 조금 내려놓기 시작하면 그 기준 자체가 서서히 힘을 잃습니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긴장이 줄어들수록 삶은 훨씬 가벼워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이 스스로 낮아질수록 주변의 시선도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오히려 신뢰를 느끼고, 자신을 높이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존중을 보내게 됩니다. 높아지려고 애쓸 때보다 낮아질 때 관계는 더 부드러워지고 사람 사이의 거리는 더 가까워집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마음 안에서 일어납니다. 더 올라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사라지고,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욕망이 잦아듭니다. 그 자리에 대신 찾아오는 것은 비교에서 벗어난 평온입니다. 더 높이 올라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감각이 삶을 훨씬 부드럽게 만듭니다.


어쩌면 인간이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행복은 바로 이런 자리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더 높아지려 애쓰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낮아질 수 있는 마음, 더 많이 가지려 하기보다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삶. 욕망의 무게를 조금 내려놓을 때 마음은 오히려 더 가벼워집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됩니다. 낮아진다는 것은 잃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그것이 바로 삶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낮아짐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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