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교회를 찾는 이들을 위해

For Those . Are Seeking the True Church

by 지누리즘

오래 교회를 다닌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정말 믿음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익숙함과 습관 속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질문을 교회 안에서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교회를 떠난 시간 속에서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 질문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모태신앙으로 40년 넘게 교회를 다니며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습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가는 것이 당연했고, 신앙은 선택이라기보다 생활에 가까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벽기도도 몆년동안 쉬지않고 새벽 4시~5시에 일어나 나가 보았고, 수요예배와 금요예배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주일예배만 드리는 것보다 더 많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 좋은 신앙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사를 하게되면서 교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또 두세 곳의 또 다른 교회를 경험하게 되었고, 새로운 지역에 가서 여러 교회를 찾아다니며 예배를 드려 보기도 했습니다. 정착할 교회를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다녀보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찾아다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쉽게 정착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마음속에 남아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교회를 찾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마음이 머물지 않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의 관계 속에서 지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교회의 분위기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찾고 싶지만 쉽게 찾지 못해 방황하는 시간도 생기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 교회를 찾아다니다가 지쳐 잠시 교회를 떠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사람에게는 그 시간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쉬고 있는 시간 자체가 죄책감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잠시 멈추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시야가 열리기도 합니다.

물속에 들어가 있으면 밖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가까이 있는 것도 또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 밖으로 나오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삶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 안에 오래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거리를 두는 순간 보이기도 합니다.
신앙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신앙의 깊이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잠시 거리를 두는 시간을 지나며 신앙을 다시 바라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교회의 장점뿐 아니라 교회의 한계도 보이게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따뜻한 공동체도 있고 좋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적인 모습들도 함께 존재합니다. 율법적인 분위기나 기복적인 신앙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특정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모인 공동체라면 어디에서든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이 가득한 교회를 책망하며 꾸짖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경험을 통해 신앙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저도 교회를 떠나있는 동안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 시간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심리학, 철학, 종교, 기독교 서적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생각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습니다

교회에서 멀어지니 그 교회에 종속된 하나님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없어졌습니다

사람이 감히 글로 표현한 '하 나 님' 이라는 글씨와 형상화된 모든것들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위치 모든게 없어지는 순간 이세상에 충만한 진정한 God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성경 구절을 읽어도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의미가 보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익숙하게 지나갔던 말씀이 어느 날 깊이 마음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성경의 문장은 같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이 깊어질수록 성경을 이해하는 시야도 함께 넓어지게 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등 뒤로 던져 버리신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이미 지나간 죄를 붙잡고 계속 정죄하는 존재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종종 그와 반대로 행동하기도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넘어졌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린아이는 걷다가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때 부모나 어른이 “괜찮아, 일어나면 돼”라고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실수할 수 있어, 다시 해보자”라고 말해 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일어납니다. “네, 다시 해볼게요” 하며 다시 걸어가기도 합니다. 그 모습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아이는 계속 넘어졌다는 사실만 붙잡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 “나는 왜 또 넘어질까” 하며 계속 자책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괜찮다고 말해 주었는데도 계속 그 실수만 붙잡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 속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이미 용서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죄를 뒤로 던져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계속 과거의 실수를 붙잡고 죄책감 속에 머무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모습은 겸손이라기보다 또 다른 형태의 교만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괜찮다고 말해 주는 존재가 있는데도 계속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신앙을 죄책감 속에서가 아니라 자유 속에서 이해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거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중심은 두려움보다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랑이 거한 자체가 우리이고 우리가 God에 한 형체로 살아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교회는 여전히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교회는 위로와 힘이 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느냐 다니지 않느냐가 신앙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너무 우리의 감정에 치우쳐 있는지도 되돌아봐야 할것같습니다

물론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잠시 떠나 있는 사람도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이 평안하고 사랑이 있는 상태가 하나님 나라의 한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의 길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길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 시간을 지나며 길을 찾게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통해 생각이 넓어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삶의 경험 속에서 신앙을 다시 바라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각자의 속도로 걸어가게 됩니다.
혹시 지금 교회를 찾고 있지만 마음이 지쳐 있다면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잠시 멈추어 있는 시간도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야가 열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의 길은 누군가와 비교하는 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천천히 걸어가게 되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어느 순간 마음이 평안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진짜 God가 용납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너는 너의 그대로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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